‘어바웃 엘리’(09),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11),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13)로 해외 영화제에서 상찬을 받은 이란 영화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의 신작 <세일즈맨> 역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 작년 깐느에서 이 작품은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받았고, 트럼프가 막 취임할 때 열린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외국어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그때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반이민정책을 발표하며 이 이란 감독은 뉴스의 중심에 떠올랐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 있는’ 미국 아카데미는 보란 듯이 이 감독에게 외국어작품상을 안겨주었다.
<세일즈맨>은 이야기꾼 아쉬가르 파라디의 솜씨를 만끽할 수 있다. 이번에 던져진 상황은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의 걸작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극무대에 올리려는 이란의 연극배우가 맞닥친 절망적 상황이다. 남편은 연극 속 인물 윌리 역을, 아내는 린다 역을 연기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던 집이 붕괴위기에 처하게 되고 잠시 이사를 가게 생겼다. 그런데 새로 이사간 집의 전(前) 주인이 의심스럽다.(직업이 ‘프로스티튜트’였다!) 남편이 공연문제로 검열관과 미팅을 하는 날, 한 남자가 이 집을 찾아온다. 프로스티튜트는 이미 이사갔는데 말이다. 그날 밤 아내는 심한 폭력을 당한다. 남편은 딜레마에 빠진다. 집에는 도난당한 흔적은 없고, 정체불명의 돈이 놓여 있다. 아내는 경찰에 신고하길 꺼린다. 남편은 이런 불미스런 사건이 동료들에게, 이웃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수치스럽기도 하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속이 쓰리다. 그리고 남편은 인근에 주차된 트럭의 주인을 뒤쫓기 시작한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허겁지겁 도망간 범인의 차일 것이라고. 그리고, 남편은, 아내는 그 범인과 마주하면서 <세일즈맨의 죽음>에 버금가는 삶의 아이러니, 가족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남성우위의 권위적 사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성폭행에 관대하거나, 주저하거나, 일방적인 몇몇 문화권에서 말이다. <세일즈맨>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런 오랜 종교적 억압, 혹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에게 행해지는 많은 차별’ 중의 하나가 ‘피해자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과 인식’이란 것이다. 관객들은 그런 불편한 상황을 고통스레 지켜보다가 후반부에는 제어 못할 남성의 욕망의 종착역을 지켜보게 된다.
미국작가 아서 밀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에게 쏟아 부었던 기대가 무너지면서, 마지막으로 그런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희생이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니임을 보여주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나, 엉뚱하게도 이란에서 재현된 ‘세일즈맨’의 아이러니와 딜레마는 관객의 정서를 콕 찌른다. 영화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장면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그리고, 그런 무대와 현실의 삶이 교차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장인의 손길이 ‘연극 무대의 몰입’과 함께 ‘영화적 완성’의 순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이란의 작은 도시에 지진이 나고, 아파트에 남자가 침입하고,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고, 사위는 장인을 걱정하고, 다 늙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한다. <세일즈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930년대 대공황시기 아메리칸들이 겪었을 공황을 여전히 겪고 있다. 전혀 뜻밖에도 말이다. 2017년 5월 11일 개봉/ 15세관람가 (박재환 201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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