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미소] 천국의 향기, 천국의 색깔 (마지드 마지디 감독 The Color of Paradise,1999)

2008. 4. 5. 21:233세계영화 (아시아,아프리카,러시아,중남미)

반응형

(박재환 2001.7.7.) 작년(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흥미로운 다큐멘타리 한 편이 상영되었다. <우호적 설득 – 혁명 이후의 이란영화>라는 다큐멘터리였는데 1990년대 이후 세계 영화제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 이란영화 발전의 이면을 현재 활동 중인 이란 감독들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작품이다. 아마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부터 <천국의 아이들>까지 일련의 이란 영화를 한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헐리우드 영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케일에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비전문 연기자들의 생생한 연기 속에서 내뿜는 ‘이란인의 삶’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다큐를 보고 나면, 이런 ‘이란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혁명이후의 이란영화는 우리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검열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인 성향은 물론이며, 회교도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서방제국의 사악한 에로티시즘적 경향에 대한 검열의 칼날도 포함된다. 그런 창작 환경 속에서 이란 영화감독이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어린이 영화, 천사표 영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천국의 아이들>에서 운동화 한 켤레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공책 한 권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또 한 편의 이란産 천사표 영화가 상영된다. <천국의 향기>(원제는 The Color of Paradise 천국의 색깔)이다. 올해 우리나라 극장가에 겨우 개봉되어 (작년 초에 수입이 되었지만 흥행을 장담 못한 업자들에 의해 줄곧 개봉이 미루어지다가 올해 겨우 개봉되었다는 소리임!) 의외로 꽤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던 <천국의 아이들>의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신작이다. 이 영화도 이란영화답게 수많은 영화제에 출품되어, 수많은 평자로부터 격찬을 받은 영화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란 영화가 갖고 있는 어린이 등장 천사영화와는 달리 이란의 현실을 조금 유추해볼 수 있는 암울한 구석이 있는 영화이다. 만약에 이란 영화를 통해 왜 어린이들이 그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고, 가족들은 왜 그렇게 가난한지, 그리고, 여인들은 왜 또 그렇게나 순종적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줄거리 – 맹인소년과 아버지

영화가 시작되면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의 교실을 비춘다. 한 무리의 소년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점자를 익히고 있다. 이 학교는 곧 방학이라, 학부모들이 한 사람씩 학생들을 데려간다. 하지만 모하마드 소년은 마지막까지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소년의 보이지 않는 눈에서는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아닐까하는 근심의 눈빛이 보인다. 그 때 소년은 새의 지저귐을 듣게 된다. 어린 새가 나무 위 둥지에서 떨어져 땅바닥에서 파닥거리는 것이었다. 맹인 소년은 그 새를 잡아 나무를 기어타고 올라 손으로 더듬어 새의 둥지에 고이 놓는다. 소년의 손바닥을 쪼는 새의 부리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한 외로운 소년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어 소년의 아버지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소년을 데려간다. 제대 군인인 아버지는 새 장가를 가지 위해서라도 소년을 두고 가고 싶었다. 맹인인 아들은 자신의 삶에도 굴레가 되고 부담이 되는 것이다. 둘은 멀리 시골집으로 가서는 할머니에게 소년을 맡겨두고 막노동과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신부감을 찾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다른 맹인의 손에 넘겨준다. 그 사람은 맹인 목공이었고 8살 아들에게 목공일을 가르쳐주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반발과 재혼의 좌절 등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데려오기로 한다. 계곡물이 불어 넘치고 나무 다리를 위험스레 건너던 이들 부자에게 큰 위험이 닥친다. 아들이 물에 빠져 거센 물결에 휩쓸려간다. 아버지는 주저하다 강물에 뛰어든다. 둘은 한참이나 물에 떠밀려 내려간다. 한참 후에 아버지의 눈에 아들이 보인다. 하지만, 아들은 미동조차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한다. 햇빛이 보이며 소년의 하얀 손을 비춘다. 소년의 손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 아버지와 아들

이 영화에서는 ‘미 제국주의 꼭두각시 팔레비 국왕 정권을 몰아낸 이란 회교혁명(1979년)’ 후의 이란사회를 엿볼 수 있는 정치적인 내용은 전혀 없다. 그리고, 장애인의 복지에 신경 써 달라는 구호도 없다. 온통 푸른 산과 착한 심성의 사람들로 가득할 뿐이다. ‘5년’의 군복무를 마친 아버지는 뚜렷한 직업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고 맹인 아들의 미래 때문에 고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구적 복지정책이나 한국적(혹은 인류보편적인) 부성애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헐리우드식 해피엔드- 여기서는 아버지가 마음을 고쳐 잡고 아들을 전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이겠지만-도 아니다. 책망하는 할머니에게 아들이 하는 말, “내가 나이 들고 힘이 없으면 그때는 모하마드를 누가 보호한단 말인가요?” 이러한 굴레는 가족, 가정의 책임을 넘어 사회의 무거운 책무를 생각하게끔 한다. 영화 마지막에서 소년이 살아있든 죽었든 관객은 세속의 고뇌 속에서 건지는 종교적 장엄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소년이 버스를 타고 테헤란을 떠나 시골로 갈 때 소년은 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바람을 느낀다. 모하마드 역을 맡은 모흐센 라메자니는 실제 시각장애소년이란다. 물론, 이란 영화답게 비전문 배우이고 말이다. (박재환 2001/7/7)


[천국의 향기|The Color of Paradise,1999] 감독: 마지드 마지디 출연: 모센 라메자니, 호세인 마주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