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에 보도된 티벳 관련 소식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인도의 한 영화시상식에서 리처드 기어에게 ‘발리우드(봄베이+헐리우드: 약동하는 인도영화계를 일컫는 말)가 뽑은 양심인’이라는 특별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등 티벳의 자유를 신장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뉴스로는 성악가 루치아노 파파로티가 자선 공연장에서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성악가 파파로티도 티벳인의 자유 쟁취를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티벳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이지? 그럼 중국에 침략당한 상태란 말인가?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하다. 그리고 <컵>이란 영화가 일곱 번 환생환 키엔츠 노부(Khyentse Norbu)라는 스님이 감독을 했다는데 이건 또 무슨 오컬틱한 소리인가. 무슨 종교지도자가 세습직이란 말인가? 스님들이 축구 구경을 하는 속세적 취향보다는, 영화라는 예술매체를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이용한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지 않은가? 사실 영화 보기 전에는 이런 스포츠정치학적인 궁금증이 더했다. 일단 영화를 보자!
이 영화는 작년 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꽤나 인기를 끌었던 영화이다. 영화내용이 아기자기하게 재미있을 뿐 아니라, “원 세상에… 스님이 월드컵에 그렇게 야단법석을~” 이라는 이야기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영화가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된다.
영화는 인도의 어느 산에 위치한 티벳 사원의 스님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나이 지긋한 주지 스님도 있고, 똘똘하게 생겨서 땡땡이치는 걸 좋아하는 동자승도 있고, 저 멀리 진짜 티벳에서 정치적 망명을 해온 꾀죄죄한 스님도 있다. 이들의 일과는 물론 불공 드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월드컵에 빠져드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속세의 스포츠잡지 나부랑이가 사원으로 반입되어 스님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공시간에 “어제 브라질이 이겼어!” 혹은 “호나우도가 어제 한 골 넣었어!” “프랑스가 우승할 것 같애”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대사가 오가는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은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사원으로 위성 안테나와 소니 텔레비전을 반입하여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코미디 영화인가? 그런데 영화를 통해서 나오는 주제는 단 하나이다. “우리 티벳에게 자유를 달라”라는 것이다. 스님들이 전혀 연고권도 없는 프랑스가 이겨라고 응원하는 이유는 프랑스가 중국에 대해 ‘티벳 독립’ 주장의 소리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눈물 나는 호국불교란 말인가?
그럼, 여기서 잠깐 티벳으로 돌아가보자.
지난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 정권이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대륙을 통일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티벳까지 접수한다. 지금 이 지역의 중국행정구역은 ‘西藏(서장)자치구’이다. 문제는 티벳의 주민들이 끊임없이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어디까지나 서구적인 관점이다. <티벳에서의 7년>이나 <쿤둔>같은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티벳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라는 티벳 불교의 최고스님이다. 지금 달라이 라마는 14대 라마인데 현재 망명객 신세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북경정부에 티벳독립을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달라이 라마는 파파로티나 리처드 기어하고만 사진 찍은 게 아니다. 클린턴과도 사진 찍었다. 우리나라에도 불교계에서 방한을 요청했지만 외교부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단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국빈으로 대접하는 것은 외교차원에서 무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클린턴의 미국처럼 힘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과 이야기하자면 중국 심기를 건들릴 수만은 없는 입장에선 일견 이해할 만한 일이다.
어쨌든 정치외교적 상황은 그렇고, 달라이 라마가 어떤 사람인가? 달라이 라마는 티벳의 정교합일적 지배체제가 이루어놓은 지도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직책이지만 역사적으로 굉장히 정치적 세파에 시달려야했다. 중국 청나라 시절부터 청조 정부의 보호아래 있었고 20세기 초에는 강대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독립운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1950년에 중국이 티벳마저 집어삼킬 때 티벳주민들은 영국이나 강대국들이 자신들을 도와 독립국을 세워줄 것이라 믿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역사이래 꾸준히 티벳에 대한 자신들의 종주권을 주장하여 왔고, 지금과 같이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중국정부는 한때 달라이 라마만 잘 구슬리면 티벳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한때 달라이 라마를 세뇌시키거나 자신들에게 충성스런 인물을 앉히려고도 했다. 하지만 1959년 티벳의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이 있었고, 14대 달라이 라마는 추종자를 이끌고 인도로 망명한다. 중국은 이때를 노리고 판첸 라마라는 어용 지도자를 세우기도 했다. 국외의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눈엣 가시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비폭력적인 티베트 독립운동을 하였다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사전지식이다. 우표수집을 하다보면 세계사에 대해 공부할 때가 많은데 영화를 보다 이런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지난 월드컵 우승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필자로선 축구보단 티벳의 역사에 더 관심이 가니 말이다.
스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을 기원하며 이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음 한다. (박재환 20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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