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김기덕 감독을 구원하소서 (김기덕 감독 Pieta 2012)

2012. 9. 17. 18:13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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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2.9.17.)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탄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피에타>는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그는 수많은 영화제로부터 콜을 받았고 수많은 평론가들로부터 한번쯤은 ‘물어 뜯김’을 당하였다. 그런데 상을 타고 나니 김기덕 감독을 더 이상 물어뜯기는 어렵게 된 모양이다. 상찬하기에 바쁘니 말이다. <피에타>는 이른바 ‘김기덕스런 영화’에서 가장 세련되고, 가장 유려하고, 가장 종교적인 해독이 가능한 영화이다. 물론, 나머지는 똑같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출연배우들은 여전히 감독의 설정과 가이드라인에 주눅이 들어 갇힌 연기와 제한된 몸짓으로 완벽하게 캐릭터에 빙의되었고 소재는 여전히 잔인하거나 충격적이다. 이야기하고자하는 바는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해석의 공간이 많다.

청계천에서 시작되어 도로에서 지다

지금 와서 청계천하면 MB의 위대한 유산인 ‘시멘트 물 흐름’이 생각나겠지만 김기덕 감독의 청계천은 청계상가 쪽의 어두운 기억과 맞닿아있다. 김기덕 감독은 여러 번 자신의 노동자시절 이야기를 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일을 하러 가야하는데 데모로 타고 있던 버스가 막혀 갈수 없어 화가 났다”는 것. 그 때가 그는 10대였고, 못 배웠고, 가난한 노동자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구상들,.주물공장에서 절삭기와 프레스기계 사이에서 청춘을 바친, 가끔 가다 사고로 손가락이나 다리 하나를 잃은 사람들이 속출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그런 청계천에 물이 흐르고 빌딩들이 새 단장을 하며 솟아오를 동안 청계천의 그 노동자들은 사지로 내몰린다. 김기덕 감독은 세계화나 경제민주화 같은 거창한 화두엔 관심이 없다.

현실적으로 사채에 허덕이는 청계천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조하게 화면에 담는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이골이 난, 먹고 살아야할 생활비 걱정을 단 하루도 안 한 적이 없는 그들 소상공인. 불쌍한 사장님은 사채에 손을 내밀고, 기한이 되면 어김없이 악마 같은 빚쟁이(이정진)가 찾아온다. 악마는 불쌍한 사장님의 한쪽 손을 프레스에 밀어 넣어 절단시킨다. 아니면 빌딩에 올라가 밀어버린다. 딱 죽지 않게, 딱 보험금 받아먹을 정도로만 ‘반병신’을 만드는 것이다. 사채에 자살하는 사람도 생기고. 그런 어느 날 악마 이정진 앞에 ‘엄마’라고 주장하는 조민수가 등장한다. 적어도 관객은 이정진이 어떤 과거를 거쳤는지를 짐작한다. 어릴 때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고 밑바닥 삶을 겪었을 것임을.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남의 아픔이나 비극이나 죽음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위인이란 것을 안다.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인에게서 가족애를, 아니 단 1도라도 인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기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악마는 엄마의 사랑을 통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악마가 영혼을 구제받기 위해서 치러야할 고통의 무게는 얼마일까. 김기덕 감독은 비주얼하게, 임팩트하게 그만의 답을 내놓는다.

김기덕의 악마성, 인간의 한계

1996년 11월 16일 개봉된 김기덕의 감독 데뷔작 <악어>에도 그런 악마가 등장했다. 당시 김기덕의 페르소나 조재현은 <악어>에서 한강에 기생하는 악마 ‘용패’를 연기했다.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를 건져 숨겨두고는 슬픔이 극에 처한 그들 가족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역할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하려던 한 여자를 살려내 자신의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이미 그때부터 김기덕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극단적 상황의 캐릭터뿐이었고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진짜 작정하고 만든 ‘최악의 드라마’ 그 자체였다. 평범하거나 행복한, 밝은 태양 아래 사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마주칠 수 없는 그런 어둡고, 절망적인 조건의 인간들이 펼치는 행위로 가득했다. 김기덕 감독은 매번 나쁜 상황과 악한 조건,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듯이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니 당연히 그의 영화는 제한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선한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는 회피하고 싶은 그림들이니 말이다. <피에타> 역시 그런 그의 영화세상에서 단 1센티미터도 더 나아가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기덕 감독으로선 자신의 영화가 1밀리미터라도 더 나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베니스는 그런 외골수 김기덕에게 경의를 표한 것인지 모르겠다.

악마를 위한 씻김굿

우리나라 사채업자들의 범죄적 실태는 <그것이 알고 싶다> 류에서 충분히 보았다. 자본주의, 아니 사람 사는 세상에서의 무거운 빚의 결말은 항상 비극적이다. 샤일록이 1파운드의 살덩어리를 요구했듯이 말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번엔 그런 사채업자를 둘러싼 인간비극에 눈길을 돌렸다.

이 영화에서도 김기덕의 악마적 상상력, 소설적 극한체험을 경험한다. ‘악마’가 ‘엄마’를 확인하려는 방법이나 계속되는 음식장만 신들이 관객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한다. 일찍이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존재감을 안겨주었던 영화 <섬>에서도 다양한 인체 훼손의 미학(?)이 등장했다. 자학과 소멸의 김기덕 미학은 끝없이 진화했다. 예전 같으면 ‘논란 많은 장면’이겠지만 이제는 학습효과가 된 김기덕 식 라스트신은 <피에타>를 끝까지 지켜본 관객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은 오래 전 사건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신문 사회면에 난 기사이다. 아마도 술에 취하여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 밑에 기어들어갔고, 새벽에 그런 사실을 모르고 운전자가 차를 몰고 시내를 질주한 끔찍한 일. 그 차가 지나간 서울의 아침 도로는 붉은 핏빛 공포였을 것이다. 그 끔찍한 기사를 김기덕 감독은 읽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그 영상이 구원과 속죄의 상징으로 읽혀진다.

베니스를 앞두고 김기덕 감독은 많은 매체, 게다가 TV예능프로에까지 나와 영화팬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김기덕 감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가 해외영화제에 참석하면 열심히 다른 감독의 최신작품을 꼼꼼히 본다는 사실이다. 아마 김기덕 감독만큼 해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들의 경향에 대해 ‘영화감독적 필’이 살아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그걸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아 오늘도 열심히 한국 사회의 밑바닥을 훑고 있을지 모른다. 종교적 구원은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자기 영화가 어느 정도 관객이 들어야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느니 말이다. 청계천에서 공구 들고 생존을 걱정하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김기덕인 셈이다. (박재환 2012.9.17.)

 

[피에타 2012] 감독: 김기덕 출연: 조민수, 이정진, 우기홍, 강은진,권율 (2012년 9월 6일 개봉)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Pietà (Michelangelo) - Wikipedia

The Pietà (Italian: [pjeˈta]; English: "The Pity"; 1498–1499) is a work of Renaissance sculpture by Michelangelo Buonarroti, housed in St. Peter's Basilica, Vatican City. It is the first of a number of works of the same theme by the artist. The statu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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