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영화리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기투합 도둑들 (김주호 감독 The Grand Heist, 2012)

by 내이름은★박재환 2012. 8. 19.
반응형

0123456789101112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불러 모아 최고의 팀을 만들어 마카오까지 원정 가서는 수백 억 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는 영화 <도둑들>이 천만관객을 돌파한 요즘, 또 다른 충무로 배우들이 무더기로 나와 도둑질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조선시대이다. 훔치는 대상이 독특하다. 조선시대에는 겨울 한철동안 꽁꽁 언 한강물을 고이 썰어 빙고에 잘 보관해 둔다. 이는 나중에 국상 등 국가차원의 행사나 문무백관과 관련된 나랏일, 하다못해 죄수에게도 지급되었단다. 그런데 이 (서/동)빙고의 얼음을 훔쳐내자는 것이다. 나라 물건을 훔치자는 것부터가 발칙한 생각인데 그 시절 어떤 전문가가 있어야 이 거사를 성공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도둑들은 무얼 훔치나

조선시대. 영조시대가 배경이다. 조정은 양반세력들의 권력쟁탈이 여전하고 일반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이 영화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신 ‘서얼(서자)‘들의 정치적 위상과 그들의 삶의 가치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청렴결백한 우의정의 서자 이덕무(차태현)는 저자거리에서 서적포로 그럭저럭 살아가던 중이다. <음란서생>의 그 양반처럼 시대가 은밀히 요구하는 콘텐츠를 유통시키면서 말이다. 그런데 ’포스트-영조‘ 시대를 노리는 조정의 패거리가 음모를 꾸미면서 우의정은 귀양길에 오르고 이덕무는 본의 아니게 복수의 길에 나서게 된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를 끌어 모아 크게 한 탕을 노리는 것이다. 당시 가진 자들의 권력을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되었던 얼음을 둘러싼 대결이다. 얼음저장고에 잠입, 운반, 탈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도둑들이 모인다. 서빙고의 별감으로 내부시설을 잘 아는 백동수(오지호)를 위시하여 ‘김윤석의 도둑들’에 버금가는 조선시대 팀이 꾸려지는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비상한 재주를 가졌는지, 쏟아지는 얼음벼락이 얼마만큼 멋지게 CG로 처리될지 꽤나 기대된다.

재미있고, 특이한 사극의 탄생

사시사철 사각얼음을 쏟아내는 냉장고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에선 얼음이 귀한 물건이리라. <소설 동의보감>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허준이 스승 류의태의 시신으로 인체해부를 실습할 수 있었던 장소가 바로 밀양 얼음골이었다. 그런 특정한 지리적 특성과 지하저장 방식의 빙고를 운영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란다. 그게 최고조로 과학화 내지는 체계화된 것이 조선시대일 것이다. 그런 조선시대 한양에서 펼쳐지는 얼음전쟁은 꽤나 흥미로운 소재이다. 물론 그 시절, 얼음이 없으면 얼음이 없는 대로 살면 될 일이었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얼음은 소금만큼이나 용처가 다양했다. 이를 영화로 만든다면 당시의 관납시스템을 둘러싼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홍길동 스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영조와 정조 시대를 이어가는 왕조드라마도 끼워 넣는다. 사도세자 이야기가 뜬금없이 등장하고 잘 생긴 ‘정약용’이 라스트 씬을 장식할 정도이니 역사 공부한 셈 치자. 그런데 감독도 출연배우들도 역사적 배경과 보여주는 정치적 파괴력에 대해서는 그다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특이한 재능을 가진 조선시대 도둑들이 어떻게 의기투합하여 목적을 이루는지를 오락영화의 정석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미 넘치는 연애담과 아기자기한 개그를 덧붙인다. 마지막에 그들이 서빙고를 통째로 훔치는 것이 성공하든 말든, 정조가 즉위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  조정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홍길동 버전인지 사도세자 한풀이인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다. 

<도둑들>이 속편이 만들어지면 더 대단한 배우들이 합류하여 더 값진 보석을 훔치겠지만 <바람과...>의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이 멤버 그대로 피라미드를 도굴하거나 루브르를 얼씬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을 만날지 파라오를 만날지는 상상력의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송중기의 깜짝 등장으로 영화적 잔재미를 안겨준 정군이 정약용이라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지만 차태현이 맡은 배역이 이덕무라는 것도 흥미롭다. 이덕무 역시 정조시대 실존했던, 규장각의 책벌레로 실학의 대가이다. 물론 서자출신이었고 말이다. ‘무사 백동수’도 실존인물이고 말이다. 재밌는 영화이다. 오 케이? (박재환 2012.8.19.)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