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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리뷰

[늑대소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늑대

by 내이름은★박재환 201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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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제국 로마를 세운 영웅 로물루스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단다. 타잔은 태어나자마자 유인원에게 거두어져 정글에서 자랐다. 정글북의 모글리도 그러하고. 반면 <보물섬>을 보면 무인도에 수십 년을 혼자 산 해적은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언어구조가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2차 대전 당시 서남아시아의 정글에 낙오된 일본군이 수십 년 만에 극적으로 발견되었을 때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는 뉴스도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는 인류사회학적 케이스를 이야기할 때 항상 거론되는 캐릭터이다. 최근 그런 흥미로운 주제에 한 가지 예를 더 들 수 있는 동화 같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송중기가 주연을 맡은 <늑대소년>이다. 꽃미남 송중기는 이 영화에서 정체불명의 ‘늑대소년’ 철수 역을 맡았다. 야생의 늑대소년이 ‘인간사회’에 들어와서 어떻게 순화되는지, 어떻게 인간세계에 동화되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왜 야생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꽃미남 늑대소년을 본다는 것만도 황홀한데 이 이야기가 정말 순수하다.

 

반백년 전, 전쟁고아가 6만이나 되었단다

 

미국에 사는 반백의 할머니가 고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 옛날 어린 시절, 폐병 때문에 살았던 공기 좋고 물 좋은, 그리고 인심 좋은 시골마을에 남아있는 집을 팔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그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옛날 자기 나이 때의 손녀와 함께. 그 집에 서린 옛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제는 거의 폐가가 되어버린 그 목조건물. 그 집에 들어간 첫날밤 소녀는 꾀죄죄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소년을 발견한다. (1960년대 초의 강원도 산골마을이다!) 소녀의 엄마는 소년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먹을 것을 주며 며칠 동안만 우리가 데리고 있자고 그런다. 그렇게 늑대와 인간의 한집살이가 시작된다. 알고 보니 그 소년은 ‘늑대소년’이었다. 소녀는 그 늑대소년을 마치 야생견 훈련시키듯이 조금씩 조련을 시켜나간다. “기다려”, “먹어”, “기다려” “먹어”를 반복하고 “잘했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늑대소년은 길들여지고 소녀는 조금씩 이 야생의 소년이 마음에 든다. 글자공부도 시켜보고 함께 들판으로 놀려도 나간다. 미녀와 야수는 사회의 질시와 저주를 받을 수밖에. 늑대소년을 죽이려는 자가 있고 소녀는 그 늑대소년을 보호해주고 싶다. 아니 살리고 싶다. 세상은 그렇다.

 

인간이 만든 늑대소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평화로운 산골마을에 늑대소년이라니. 이 뜬금없는 설정은 의외로 간단하게 설명된다. 마치 심형래의 그 옛날 SF에나 어울릴 만큼 허술하게. “전쟁에서 강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 승냥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었다.” 그리고는 엑스맨의 울브린처럼 자기치료능력은 모르겠지만 웬만한 외부의 육체적 충격에는 끄떡없는 강인함을 가졌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분노하여 헐크가 되어버리는 늑대소년은 그렇게 태어난 모양이다. 미군의 음모 없이도 황우석의 연구 없이도 말이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그 연구에 관여했던 박사는 이런 설명도 덧붙인다. “늑대는 유일하게 무리생활을 하는 놈이고 평생 한 놈의 암컷만을....” 늑대는 의외로 1부1처제 포유류 동물이다. 영화는 유전학적 음모론이나 야생동물의 습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의도는 없다. 길 잃은 야생동물이 마음이 따듯한 주인을 만나 영적교류를 하고 결정적 순간에는 목숨까지 바친다는 그런 희생과 충절을 그린다. 단, 그 늑대가 ‘송중기’라는 미소년이라서 정서적 공감은 넓어진다. 애당초 말 못하는 짐승과 측은지심으로 다가선 소녀의 이야기는 소울 메이트의 러브 스토리로 진화한다. 늑대소년은 자신에게 먹을 양식과 비바람을 피할 거처를 제공한 인간에게서 본능적 충성심을 갖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성애이며 ‘순수한’ 사랑일 것이다.

 

늑대는 기다린다

 

 

 

 

잘 훈련받은 개는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끝까지 기다린단다. 그 기다림의 시간의 한계는 어디일까. 늑대소년은 얼마의 세월을 감내할까. 늑대소년은 여자의 마음을 이해 못한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인간의 모순도 모르고, “난 너가 싫어. 꺼져.”라는 말의 진심도 이해 못한다. 단지 종이 위에 남겨진 “기다려. 돌아올게”라는 말에 함몰된다. 그 강원도 산골마을에 도로가 나고 펜션이 생기고 동계올림픽이 열려도 아마 그 늑대는 기다릴 것이다. 아마도 그 늑대는 다른 늑대를 만나 보금자리를 꾸밀 것이다. 그 늑대가 새끼를 낳으면 그 늑대새끼도 하염없이 그 집 주위를 배회하며 누군가를, 뭔가를 기다릴 것이다. 세대가 바뀌고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 말이다. 한국식 로맨틱 늑대전설은 그렇게 생기는 것이다. 불쌍한 늑대! (박재환 20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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