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건달 깡패의 은밀한 심령생활

2012. 12. 31. 10:21한국영화리뷰

반응형

 

 

 

뚜렷한 자의식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어느 날 특별한 계기로 별안간 이중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번개를 맞아 슈퍼맨이 되었거나 교통사고로 그간의 기억을 잃고는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등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특이하게도 ‘신 내림’이란 돌발변수가 개입하기도 한다. 어느 날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신과 접촉하면서 신의 대리인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어시장을 주름잡던 조직폭력배 건달이 그런 신 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어야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진규 감독의 새 영화 <박수건달>은 그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조진규 감독은 10년 전에 <조폭마누라>란 작품으로 조폭영화의 소재를 한 단계 확장시켰던 인물이다.

 

깡패 박신양, 무당굿을 하다 

 

부산바닷가 어시장을 배경으로 한 폭력/깡패/건달 조직의 ‘넘버 투’ 광호(박신양 분)는 조직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보스의 신임도 두텁고 부하들로부터도 나름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넘버 쓰리’의 위치에 만족 못하고 넘버 투가 되고 싶어 하는 태주(김정태 분)가 기어이 덤벼든다. 한밤 중 부산의 부두 선착장에서 태주의 칼날이 광호의 배를 찌를 찰라, 태주는 얼떨결에 칼날을 손으로 감싸 쥔다. 운명의 황금시간이 경과한다! 광호는 겨우 살아나고 넘버 투의 위신을 지키지만 그의 손바닥엔 큰 상처가 남는다. 마치 손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기라도 하듯이 광호는 그날부터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당계의 지존인 박정자가 그에게 “너의 길은 깡패가 아니라 무당이다”고 말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광호는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나가야하는 입장에 처해진다. 깡패 부두목으로서는 수산물 유통시장을 장악하여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조직의 사업을 확장시켜야하고, 주체할 수 없는 신기(神氣)로 부산 최고의 박수무당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눈앞에 노랑 추리닝의 소녀(윤송이)가 나타나서 하는 일마다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호시탐탐 조직을 접수하려는 태주와도 싸워야하고, 구천을 떠돌며 해원(解寃)을 바라는 귀신들의 애틋한 목소리에서도 벗어나야한다. 박신양 연기생활 16년 만에 절체절명의 이중인생을 살게 된 셈이다.

 

한국형 조폭영화의 진화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조폭’ 등장영화의 기원은 알 카포네의 할리우드 무비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1980년대의 홍콩 느와르의 영향이 더 절대적이다. 밑바닥에서 착실히 실력을 쌓아온 정통 깡패들이 악덕 변호사의 법적 도움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는 방식은 유사하다. 하지만 건달의 윤리는 훨씬 복합적이며 위태롭다. ‘유교’의 영향으로 조직은 가부장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교육’과 ‘기회’의 덕분으로 부하들은 언제나 보스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홍콩 조폭영화들보다 한국 조폭영화가 훨씬 다양한 인생살이를 보여준다. <박수건달>에서는 깡패가 무당이 되는 케이스를 보여준다. 무당은 결국 종교인인 셈이다. 보스가 개과천선하여 목사가 되었다거나, 그 목사가 알고 보니 뒤에서는 보스 질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흔한 스토리이다. 그런 조폭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정신적인 긴장감을 유발하여 정상적 판단을 와해시키는 존재이다. 포장마차 앞에서 자해소동을 펼치는 등 필요이상으로 자신의 용감함을 내보이는 조폭 패거리 등의 행태가 그러하다. 그러니 이들은 기본적으로 언제나 ‘신과 함께’하는 마음가짐이 되어있기에 누구보다도 ‘신내림’의 좋은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박신양처럼.

 

한국 조폭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멜로가 강세라는 것이다. 조폭사회를 리얼하게 그린 영화는 결국 각종 흉기가 난무하여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신체훼손극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런 피투성이를 뚫고 곧잘 애절한 드라마가 피어난다. <박수건달>에서는 남녀의 로맨스보다는 ‘생과 사’의 애절함이 묻어난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고 사별해야한 경우, 결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혼령이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그것은 오래 전 할리우드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부터 한국관객을 사로잡아온 방식이다. 박신양이 김정태의 칼날을 맨손바닥으로 쥘 수 있었던 사연은 그런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진규 감독의 작품을 단순한 조폭영화이면서도 기막힌 코미디영화로 보아야하는 것은 장르 특성을 거스르는 장면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조진웅의 검사연기는 명장면이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조폭 캐릭터인 <넘버3>의 송강호를 흉내내는 듯하던 취조실의 조진웅의 연기를 보라! 그 순간만은 2012년 충무로가 탄생시킨 최고의 퀴어 혹은 코믹 명장면이다. 2013년 1월 10일 개봉예정. (박재환 2012.12.31.)

 

사족. 무녀 '박정자'가 나오는 순간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가 떠올랐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