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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리뷰

[해피 엔드] 그들은 정말 사랑했는가 (정지우 감독 1999)

by 내이름은★박재환 201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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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환 1999/11/23)  일본영화 <우나기>에서 남자 주인공 야쿠쇼 코지가 아내를 죽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로부터-아니면 자신의 내부의 소리로부터- 아내의 불륜을 전해 들었고, 어느 날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이 남자는 칼로 아내를 난자한다. 조금 전까지 벌어졌던 질펀한 불륜의 현장은 피바다가 되어버리고 아내는 죽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유심히 본 사람은 남편이 부정을 저지른 아내를 칼로 무수히 찌를 때에도 아내는 두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남편을 쏘아본다. "그래도 당신은 결코 아냐!"라고 말하듯이.


이 영화에서 유부녀 최보라(전도연)와 그의 IMF실직자 남편 서민기(최민식)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 한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일상의 잔잔한 스케치장면에서가 아니라, 딱 한차례 보여준 부부의 의무적 섹스장면이다. 관객은 처음부터 전도연과 주진모의 러브 씬을 보았고, 또 지겹도록 들은 "자기 어때"라는 말의 공허함을 꿰뚫어 이해하고 있다. 서민기 자신은 모르지만 적어도 관객들은 이 여자의 마음이 콩밭에 떠나가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그럼 아내의 생각은? 전도연은 한번도 남편을 '진짜로' 버릴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일상이 지루하고, 느낌이 없고, 오르가즘이 없는 날들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김일범(주진모)에게 빠져들수록, 그리고 김일범이 자기에게 더욱 접근할수록 자신이 돌아갈 공간은 자신의 집이며, 남편의 공간이며, 아기의 집이란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치정극의 성격을 띠게 된다.


순간적인 욕망으로 넘겨버리기에도, 치기어린 사랑이라고 하기엔  전도연은 너무 세태에 시달린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비록 영화에서 보여준 섹스 씬만큼 심각한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 그래서 이 영화를 전도연 최고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그녀는 고뇌하고 갈등한다. 그녀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칫솔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에 빠져있을 때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인간적인 번민인 것이다.


아내의 불륜이란 것은 언제나 있었고, 남편의 무능이란 것도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의 극복이나 파멸이 절대 '해피'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부부가 살을 맞대고 사는 이면에는 그러한 과거와 부정을 덮어주고 녹여주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도연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선택을 하였던 것이다.


남편의 일상이 헌책방에서 연애소설이나 읽고, 아줌마 드라마나 보고, 카트 끌며 장 보고, 재활용 우유팩을 정리하는 것 등은 그 남편의 내면에 포함된 분노와 좌절, 배신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것을 감추고 있는 한 단면일 뿐이다.


전도연. 방금 주진모와의 불같은 섹스를 끝내고, 화장실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 회한의 한숨을 내뱉는다. 그녀는 자신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이 위험천만한 순간을 결코 벗어날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 그녀에겐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이 남자를 사랑하지도, 저 남자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족쇄로서 존재하는 아이 때문만도 아니다. 전도연의 갈등이 주가 되어야할 영화에서 최민식의 단죄로 끝나버리는 이야기 구조는 아마도 그러한 한국적 정서때문인지도 모른다. 치정에 얽힌 살인극으로 막을 내리고 남편은 결코 그 아파트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는 뒤늦게 아내의 공간을 지킬 힘만이 남았을 것이니 말이다.


눈에 띄는 단편영화로 주목받던 정지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의외로 진부한 주제를 다룬 셈이다. 하지만 작년 <정사>에서 이재용 감독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해피엔드>도 깔끔하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최민식의 연기는 고뇌하는 남편의 감정까지 읽어낼 만큼 좋았다. 영화 내내 수없이 반복되는 부감카메라는 이 영화의 불륜극과 캐럭터의 고뇌를 줄곧 내려다보는 힘을 살려주었다.


최민식은 과연 전도연을 사랑했는가?  (박재환 199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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