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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와 존 보빗]

雜·念

by 내이름은★박재환 2011. 3. 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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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가 책을 한 권 내었다. 신정아의 누드라고 주장되어진 사진이 문화일보에 ‘진짜’ 실렸었다. 신정아가 미술/전람계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로비를 펼쳤단다. 신정아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단다.... 신정아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건물에 있다가 구조되었단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신정아가 누군지는 다 알 것이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어렴풋이 기억될 뿐이다. 많고많은 그렇고그런 사건과 사고 속에 등장하는 여자라고 넘겼을 테니. 그런데 꼼꼼히 뜯어보면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연과 문제를 안고 있다. 아마도 힘든 역경을 헤치고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 그녀의 노력과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고 훼방만 한 모양이다. 루저가 되기만을 강요하거나 법적으로 ‘을’의 지위만을 강요하거나, 태생적으로 ‘여자’임을 감수하도록 운명 지어졌는지 모르겠다.

신정아의 책이 나왔다는 뉴스를 듣고 내가 한 첫 생각은 ‘일단’ 책을 사봐야지하는 생각이었다. 와이프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방방 뛰는 거였다. 아니 어찌 그런 여자의 책을 사볼 생각을 하냐... 어쩌고.... 그러니까.. 신정아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투와 거짓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입장이냐. 라는 소시민적 정의감의 표현이리라. 아내의 말이 맞다.

난 그저 궁금해서, 호기심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가 관심사였다. (출판사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책을 내기로 했을 거다. 욕을 들을지언정 책은 팔릴 것이다! 라고.) 아마도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땅의 부정과 위선을 까발리고 정의사회구현을 목 놓아 외치려고 책을 출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약 정치적인 책이라면 이야기가 단순해진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저의를 갖고, 출판된 책들이 많았으니까. 무슨 목적? ‘이 땅의 정의를 구현하고, 과거의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 김영삼의 책도, 김대중의 자선전도, 그리고, 박철언의 자서전도 이런저런 이유로 읽히거나 팔렸다. 아, 그 유명한 김형욱 회고록도 있고. 물론 지금 벌어지는 신정아 책만큼 선정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아, 아주 옛날에 DJ의 경호원이란 사람이 쓴 책도 정치적으로 악용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워낙 동서대립/ 혹은 정치적 성향의 호불호가 뚜렷한 나라이기에 그다지 파괴력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 이런 이야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신정아가 법의 판결을 받고 감옥까지 갔다왔다. 죄는 있었고, 벌은 처해졌다. 그 이후는?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거나, 그녀를 올바른 사람으로 대하지 않아야 정상일 텐데..(이것은 전과자를 색안경 끼고 보는 문제랑은 다른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네는 신정아를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용서하거나, 아니면. 신정아가 피해자이며 희생양이라고 믿거나 믿고 싶어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런 건 관심 없다. 그녀는 그냥 구경거리이다!”라는 관음증 대상으로 볼 뿐이다.

신정아는 책을 통해 복수를 꿈꾸는 모양이다. 정운찬이 되었든 모 신문 모 기자(유력지 C일보의 C기자, 지금은 한나라당 국회의원)가 되었던 변 씨 성을 가진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든 그녀의 과거지사에 얽힌 남자들은 곤혹스런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든 없었든.

이전에 뉴스 보도를 보니 미국에선 범죄자의 자서전 집필이나 영화화를 불법화하는 법을 만드는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자신의 범죄행각으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희생자를 만들었기에 법의 단죄를 받았더라도 그것으로 돈벌이해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법 감정 때문이리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나왔던 영화 <빠삐용>은 앙리 샤리엘(Henri Charrière)이라는 사람이 쓴 파란만장한 탈옥기이다. 그런데 이 사람 앙리 샤리엘은 살인자이며 탈옥범이다. 게다가 자신의 탈옥방식을 자세히 서술하여 이후 전 세계 곳곳에 갇혀있는 ‘나쁜’ 사람들에게 아주 ‘나쁜’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이런 책을 써서는 안 되고, 팔려서도 안 된다는 법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그만큼 비난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쓰거나, 영화로 만들거나.. 우상화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강호순이나 뭐, 그런 나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지는 않겠지만 영화제작자나 감독이 감옥으로 찾아와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 당신의 성장과정부터, 범죄행각의 상세한 부분까지 다 알려 달라. 시나리오 만들 때 고문으로 위촉하고 대신 1억 원으로 주겠다. 대신 영화개봉 뒤 왜곡했니, 명예훼손이니 이런 소리하지 말라. 여기 도장 찍으면 현금 1억원 주겠다...”. 뭐..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여러분은 오케이 하시겠습니까?

몇 년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살인사건. 미식축구의 영웅이었던 O.J.심슨이 백인 아내와 아내의 애인(역시 백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변호사천국에 배심원단의 독단성이 돋보이는 미국법정드라마답게 O.J.심슨은 ‘인종차별’을 끌어들여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내가 만약 그 일을 저질렀다면’ (If I Did It)`이라는 자서전을 내고 TV프로그램까지 만들 생각이었다. 결국.. 쏟아지는 여론에 의해 좌절되었다. 책은 나오긴 했다. 그런데 미국의 건전한 사회상식으로는 용납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타블로이드 신문과, 저질 출판업계, 선정적 방송사에선 입맛을 계속 다실 것이고 말이다.

뭐.. 그런 이야기...

세상에 나쁜 기억과 나쁜 과거는 많다. 영화소재로 활용될 그럴 내용들 말이다.

아마 최악의 경우를 당한 사람으로 존 W. 보빗이라는 남자가 있다. W.은 웨인이다. 왕년의 총잡이 ‘존 웨인’ 보빗이다. 1967년 생의 버지니아의 이 남자는 1993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6살에 끔찍한 일을 당한다. 그가 술에 취해 잠 들어 있을 때 와이프 로레나 보빗이 그의 성기를 칼로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나중에 재판이 열렸는데.. 남편이 밤새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아내를 강간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등장하는 ‘배우자강간’이라는 용어를 그때 처음 시사적으로 접해보게 되었네....) 아내는 남편의 성기를 쓱싹 자른 뒤 집으로 나와 차를 몰고 집을 떠난다. 그러다가 그 반동가리 물건을 차장 밖으로 던져버리고. 아내는 그래도 남편이 불쌍했는지 119(미국에선 911)로 전화한다. 물건 수색이 시작되고 얼음 통에 담겨 병원으로 실려 간다. 그리고 9시간 30분동안 봉합수술이 진행된다. 성공적으로 끝마쳤단다.

재판이 열렸는데 여하튼 아내는 남편의 지속적 음주, 학대, 성적폭행을 받았었단다. 그래서 그날 밤 그런 돌발사태(정의의 나이프)가 일어난 것이란다. 결국 여자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둘은 당연히 이혼했다.

자,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자는 변호사 비용과 엄청난 의료비 때문에 돈을 벌어야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세상이 모두 아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쇼였다. 그는 포르노에 출연했다.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제목이 심상찮다.  <John Wayne Bobbitt: Uncut>와 <Frankenpenis>이다. 세상에!!!!

이후 그는 라스베이가스로 진출하여 공연도 하고, 바텐더도 하고, 운전기사도 하고..  재혼도 하고.. 재재혼도 하고.. 그 사이 이런저런 범죄로 체포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단다. 아마존(미국)을 찾아보니 Dottie Brewer라는 여자가 <난 존 웬 보빗과 결혼했다: 보통남자의 특별한 이야기>(This Week I Married John Wayne Bobbitt: Extraordinary Stories about an Ordinary Life)라는 책이 있다. 이건 또 뭐야? 그만큼 대중적인/관음증의 대상이 되었단 말인가.

‘나이프 와이프’ 로레나는 이후 오프라 쇼에도 출연하여 “다시 옛날로 돌아가도 그 놈이랑은 절대 결혼 안 할거다”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요즘은 가정폭력을 예방하자는 ‘Lorena's Red Wagon’이라는 사회단체를 운영하고 있단다.(▶여기) 이게 무슨 공익재단인지, 합법적인 기부단체인지는 모르겠다. 앗, 그런데 이 로레나라는 사람 베네수엘라 출신이란다. 미국 CBS에선 이 여자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여기)

신정아. 책 사 본 사람들. 재밌습니까? 흥미로웠습니까. 이 땅의 정의가 조금이라도 지켜졌습니까? 그래도 일단 책을 읽어보고 판단을 해야한다면... 누가 내게 저 책 좀 보내주세요....   (박재환, 2011.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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