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간첩] 같은 핏줄, 다른 사람 (감독: 김현정 Double Agent 2003)

2008. 2. 18. 22:2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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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필요이상의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고, 한때는 국정원 요원이 무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도 신문에서 국정원을 해외정보처로 바꾸니 어쩌니 하는 기사나, 중국 동북 삼성에서 남과 북의 기관원들이 첩보전을 펼치고 있다는 류의 이야기를 보게 되면 귀가 솔깃해진다. 어렸을 적에 KBS-TV의 <시효인간>이라는 반공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효인간은 1981년 무렵에 방송되었었다!) … 남파간첩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원산에서 통통배를 타고 어둠을 틈타 공해를 지나 남한 땅 어딘가에 몰래 숨어드는 그 인간들. 발각되면 독약 앰플을 깨물어 자살한다는 비장한 혁명일꾼들 말이다. 이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극기훈련을 받은 인간병기들이다. (우리나라 북파공작원의 훈련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자, 그럼 우리는 영하의 날씨에 물구덩이에 빠져서 하룻밤을 꼴딱 세우고, 들쥐나 독사뱀을 잡아먹으며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무덤을 파서 들어가 숨어 지내고, 손에 쥐어지는 흉기라면 아무거나 휘둘러 상대를 순식간에 살상하는 가공할 실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모든 훈련을 거친 후 마지막 두 가지 테스트가 더 남아있다. 하나는 실제 상륙작전이라며 자기들 땅에 내려놓는다. (일단 살아남아서 남파되면 무조건 귀순하려는 일부 공작원은 함정인줄 도 모르고 “내래 북에서 자유를 찾아 왔시요!”라고 말하다 총알밥이 되는 과정도 있다. 또 하나는 훈련 도중 미모의 여자를 침투시켜 ‘미인계’에 혁명의식을 분쇄시키는 ‘자본주의적 인내력 검증’단계도 있었다.   

아마, 이 모든 상상가능한 훈련과 인간적 갈등을 이겨낸 우리의- 아니 북한 혁명동지 림병호가 1980년 어느 겨울날 동베를린에서 자유대한의 품으로 귀순한다. 당시 안기부 사람들은 림병호를 고문한다. “죽여도 좋다!” 림병호는 자신은 자유를 찾아 왔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중간첩’하면 당연히 이수근(李穗根)이라는 인물이 생각날 것이다. 1967년 3월 22일, 당시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 사람은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를 취재하다가 UN군 측 대표인 밴 클러프트 준장의 차에 뛰어올라 남한으로 귀순한다.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긴 그는 이후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북한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까발리는’ 순회강연을 갖는다. 그런데 이 남자, 알고 보니 위장 귀순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론 북한 때리기를 하며, 한편으로는 국가기밀을 모아 북으로 전달하려한 것이었다. 결국 중정(중앙정보부)에 의해 감시당하던 그는 외국으로 ‘튀었고’, 중정요원에 의해 홍콩에서 붙잡혀 돌아왔다. (69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와.. 이런 슬픈 역사를 가진 남북한 교류사를 염두에 둔다면 한석규가 연기하는 ‘림병호’가 실제 귀순자인지, 아니면 ‘이중간첩’인지, 아니면 위장귀순자인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영화를 보면 림병호는 위장귀순자였고, 특수임무를 띠고 남으로 온 것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중정 요원은 반신반의하며 ‘림병호’를 마구 고문한다. 하지만, 그는 고문을 이겨내며 결국 남한의 인정을 받고, 중정요원으로 특채되어 기밀보관소까지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한석규 (혹은 그의 형 한선규)는 시나리오를 손에 쥐고 무척 흥분했을 것이다.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남과 북이라는 찢겨진 조국이 있고, 삶과 죽음을 희롱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나열되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게다가 한석규가 고소영과 연애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혁명과업에 감정이 개입되면 만사가 무너진다. 그가 제임스 본드가 아닌 이상 말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보면, 6 25전쟁에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인텔리겐챠 북한군 주인공은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제 3의 나라-아마, 인도-를 자신의 정착지로 선택하고 배에 오른다.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혼란, 그리고 그것이 생활화되어 자신의 잔혹함을 잊을 수가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의 안식처를 최대한 한반도와 멀리 떨어진 나라를 찾는 모양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들’은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까지 도망가야 했다.   

영화는 재미있다. 물론, 더 재미있게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정간부 천호진이 고첩이라든가, 외교관이 끼어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텔미 썸딩>이 아닌 이상 너무 복잡한 스파이물은 지적이긴 하겠지만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내밀할 것 같은데 작품은 조금 TV드라마 수준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석규가 나왔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만들 수 있는 괜찮은 스릴러물이다.
 

아참, 최근 MBC-TV에서 방송된 <지금은 말할 수 있다>를 보면 “이수근이 진짜 이중간첩이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추가] 2018년 10월 12일, 서울중앙지법은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으로 몰려 1969년 사형된 고(故) 이수근(당시 46세)씨에 대해 법원이 재심(再審)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 집행 49년 만이다.

[위키]
[간첩 누명 쓰고 사형당한 귀순자 이수근]
[“중정, ‘이중간첩 이수근 사건’ 조작”… 38년 만에 드러난 진실 (오마이뉴스 2007.1.16.)]
[‘위장 간첩 이수근’ 死刑 49년만에 누명 벗었다  (조선일본 2018.10.13.)]


감독: 김현정 출연: 한석규,고소영,천호진,송재호 제작: 쿠앤필름 각본: 설준석 음악: 미하엘 슈타우다허 개봉: 200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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