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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리뷰

[사탄의 태양아래] 주님의 이름으로 (모리스 피알라 감독 Under Satan’s Sun,1987)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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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11,1) 1999년 깐느 심사위원 대상 작품인 <휴머니티(위미니떼)>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그 영화와 관련하여 <시골 사제의 일기>라는 영화가 언급되었다. 호기심 발동! 프랑스 작가 죠르쥬 베르난노스(Georges Bernanos)의 1936년 작품 을 영화로 처음 옮긴 것은 1950년 로베르 브레송이었다. 물론 그 작품도 꽤나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대신 1986년에 모리스 피알라가 두 번 째로 영화화한 것은 우리나라에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전에 중앙일보가 팔리지도 않는 예술영화들을 비디오로 출시한 적이 있을 때 같이 출반된 것이다. 이제는 그런 돈 안 되는 비디오를 내는 업체도 없다. –;

이 영화는 그래도 <휴머니티>보다는 안 지루하지만, 무게만은 만만찮다. 시골사제 도니상 신부가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 사제로 부임한다. 도니상 신부는 제랄드 드빠르디유가 연기한다. 관객은 이제 칙칙한 프랑스의 한 농촌을 배경으로 주님에 대한 신념과 희생으로 가득한 한 시골 사제의 고행담을 보게 된다. 영화는 아주 신비롭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도니상 신부의 고뇌. 그것은 ‘聖’의 이야기이며 인간의 상층부적 갈등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惡으로 가득차 있고 그는 혼자서 이 모든 사악한 존재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은 산드린 보네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무세뜨의 이야기이다. Sandrine Bonnaire는 최근 <거짓말의 색깔>과 <이스트 웨스트>에 출연한 배우이다. 무세뜨는 영화에서 아주 어린 소녀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의 내부에는 정욕과 신분상승의 욕구로 가득차 있다. 다분히 ‘俗’의 현신이다. 그는 후작과 관계를 맺어 임신한 상태이지만, 그가 사랑하려고 하는 대상은 마을의 시장이다. 그는 파리로 나가고 싶어 하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켜줄 남자-유부남-를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 총으로 시장을 쏘아 죽인다. 그녀가 총을 쏘기까지의 과정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그것은 마치 <이방인>에서처럼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행동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특별한 죄의식을 갖지 못한다. 사람들은 남자의 죽음을 단지 자살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도니상 신부는 무세뜨를 보는 순간 그녀에게서 사악한 기운을 느꼈고, 그녀가 시장을 쏘아 죽였다는 사실을 마치 지켜본 듯이 알게 된다. 도니상 신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단순한 선의 의지인지 자신의 내부를 갉아먹는 악마의 힘인지는 관객들은 알 수 없다. 그는 중세 고행의 사도들처럼 밤이면 자신의 육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근엄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세뜨는 결국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긋고는 자살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인간의 배반인 셈이다. 그녀가 죽을 이유는 죄의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도니상 신부는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그녀가 곧 죽을 것임을 알고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죽은 후. 신부는 무세뜨를 성당의 신전으로 옮기고, 사람들은 신부의 그러한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항상 도니상 신부의 위태로운 상태를 지켜보던 주임신부(감독이 연기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도니상 신부를 시골마을로 전근을 권한다. 그리고 관객은 추운 날씨 황야를 방황하는 한 성인의 비틀대는 광경을 목격한다. 하지만 관객은 흔히 볼 수 있는 신의 도래나 마리아의 성호를 볼 수는 없다. 그가 칠흑같은 암흑의 밤을 지낼 동안 시골의 말 장수만을 만나게 되고, 지극히 이해 곤란한 상황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는 이제 이 더 작은 시골마을의 사제가 되어 생활하게 되지만 여전히 그의 영혼을 사로잡는 그 어떤 알 수 없는 힘과 싸워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니상 신부가 세수를 하려고 할 때 그의 눈앞에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바로 무세뜨의 환영이다. 도니상 신부로서는 자신이 회개시키고 살릴 수 있었던 한 소녀의 운명을 포기한 것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어느 날 그 마을의 한 사람이 찾아와서는 자신의 아들이 다 죽어간다면 기도를 청한다. 신부는 비틀대며 그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아들의 운명을 알고 있고,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의지와 내부적 싸움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미 싸늘하게 죽어있는 아이를 들고 알 수 없는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아이가 살아난다. 이른바 신의 기적! 할렐루야….

하지만, 도니상 신부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리고 다음날 신부는 고해성사를 받은 작은 방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피알라 신부가 그의 눈을 감겨준다.

영화는 온통 종교적, 혹은 철학적 의미로 채워진다. 책이라면 신부의 심적 갈등과 고뇌하는 대상이 명시적으로 묘사되어 나타나겠지만, 영화에서는 그러한 신부의 고뇌와 갈등을 오직 도니상 신부의 찌푸린 인상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 이른바 프랑스 예술영화가 다들 그러하듯이 이 영화도 보는 동안의 혼란과 보고난 후의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 영화는 1986년 깐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박재환 1999/11/1)

[사탄의 태양아래서|Under Satan’s Sun,1987] 감독: 모리스 피알라 출연: 제라르 드빠르디유, 상드린 보네르, 모리스 삐알라 원제: Sous Le Soleil De Satan 1987년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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