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9.5.22.) 영화 <증오>(La haine,1995)에서는 굉장히 시끄러운 음악에, 굉장히 폭력적인 현실을, 굉장히 거친 카메라로, 굉장히 심각하게 다룬 프랑스의 젊음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인종, 연령, 국경, 직업 등 모든 계층을 불문하고 방황하는 프랑스 현대 젊은이들의 갈등을 쏟아낸다. 그 영화로 카쇼비츠 감독이 칸에서 감독상을 탔을 때가 27살이었다. 그리고 두 살 더 먹은 뒤 <암살자(들)>을 내놓았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방황하는 프랑스의 청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미디어의 폭력과 사라져가는 장인의 손길이다.
우선 폭력.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텔레비전의 소음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은 싫으나 좋으나 이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선 엄청나게 볼륨을 키워놓은 텔레비전을 쳐다봐야한다. 텔레비전은 채널이 한둘이 아닌 엄청난 현대식 텔레비전이다. 넘치는 채널과 쏟아지는 영상은 거의 대부분이 쓰레기이다. 죽고, 죽이고, 겁탈하고, 터지고, 불 타고, 내달리고. 이미 텔레비전의 폐해는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살아서 죽을 때까지 미국사람이 TV를 통해 보게 되는 살인장면은 수만 건이며, TV를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의 폭력의 성향에 대한 연구보고서만도 수천 건이다. 하지만, 이제 법률로 텔레비전 방송국을 없애자는 것은 고사하고, 보여주는 화면을 어떻게 제어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세 번 째 킬러인 13살짜리 메디는 엄청나게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집을 나가면 길거리는 온통 살인과 질주가 휩쓸고 있고, 집안에서 채널만 돌리면 총과 피가 쏟아진다. 그리고 그 이 꼬마가 맨날 하는 비디오 게임도 예외 없이 총으로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이다. 이건 꼭 YWCA어머니회나, 건모회(건전한 텔레비전 문화를 만들기 위한 열혈모니터모임^^)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은 TV와 전자오락실에서 쏟아지는 이러한 화면만 보고 자라면 누구나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쉽게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나이 70 넘은 노인의 후계자 계승 이야기이다. 어느 날 놈팽이로 지내던 젊은 막스가 한 아파트 앞을 서성거린다. 노인이 외출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아파트를 털 계획이다. 그런데, 맙소사 노인이 어느새 돌아와선 뒤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 노인은 다짜고짜 총을 뽑더니 청년을 향해 마구 쏜다. 청년은 혼쭐이 나서 창문 밖으로 떨어진다. 이 노인은 3대째 킬러가문에서 40년 넘게 킬러를 해온 프로페셔널 레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노인은 그날 그 청년을 죽이지 못했다. 손이 떨리고, 조준을 맘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청년의 집을 찾아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자기의 후계자가 되어 달라고 한다. 그러곤 실습에 들어간다. 노친네뿐인 집을 찾아가선 노인을 쏘아 쓰러뜨린다. 아직도 숨이 할딱거리는 노인을 향해 이야기한다. “쏘아..이렇게 말야. 저렇게 말야…”
막스는 여태 살아오며 좀도둑질이나 날강도짓으로 경찰서랑 유치장을 들락거리긴 했지만 이런 끔찍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해보았다. 하지만 바그너는 계속 살인의 방법과 직업윤리를 강조한다. 막스는 사람을 죽이면서 하나의 직업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 다음에 부여받은 첫 번 째 살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바그너와 맥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어린 메디 세 명의 암살자들이 왜 사람을 죽이는지 관객에겐 설명해주지도 않고 계속 살인연습을 하며 암살을 한다. 관객은 수십 년간 텔레비전의 살인장면을 보아왔고, 수백 편의 영화에서 사람 죽이는 것을 지켜보았기에 “왜?”, “어째서?” 같은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왜 킬러의 연령층을 저렇게 임의로 나누었고, 왜 어린이가 가장 민첩하게 살인을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역시 유경험자인가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대신 텔레비전 소음과 화면만을 보여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70이 되어 젊은애들 혹은 중년의 사랑을 그린 <우나기>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채 30도 안된 카쇼비츠가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70의 킬러의 인생을 이야기하기는 조금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사실, 영화 볼 때 졸았다. 아니 잤다. 막스가 바그너 집을 찾아갈 때부터 시작하여, 막스가 바그너 총에 죽을 때까지 한 수십 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장면은 사실 안 봐도 짐작이 가는 장면들이다. 그 장면에서 졸았던 것은 <희생>이나 <영원과 하루> 때 졸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유였다. (박재환 199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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