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하얀 감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Three Colors:White,1994)

2008. 4. 5. 20:30유럽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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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0.9.1.)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색 연작 중 마지막 작품인 <화이트>는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맹목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서로에게 파멸로 향하는 집착일 수도 있고, 결국은 서로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감독은 군더더기 없는 감정의 문제를 우울한 폴란드의 겨울풍경처럼 붙잡는다.

남자는 소환장을 받아 법정에 나갔다가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폴란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였지만 빠리에서 이혼을 요구받은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결혼 후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고 진술하면서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법정은 아내의 손을 들어준다. 남자는 자신이 프랑스 말을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이것이 평등이냐고 외친다. 하지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내가 떠나가며 던져준 커다란 트렁크. 빠리라는 동네는 자기가 살 곳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아내의 침실을 훔쳐보던 중 다른 남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전화기에서 흘려 나오는 아내의 신음소리를 통해 자신은 더욱 비참해지는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알게 된 한 폴란드인을 따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에겐 이제 돈도, 여권도 없다. 그는 트렁크에 몰래 숨어서 국경을 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폴란드에 정착하게 되지만, 그녀를 향한 집념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간 크게도 범죄자를 등쳐서 돈을 모으게 된다. 그는 그 돈으로 사업을 벌여 큰 돈을 벌고는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유산을 프랑스에 있는 전 아내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그는 죽은 것으로 위장되고, 다른 시체가 매장되며, 장례식에 참여한 아내는 슬픈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을 멀리서 훔쳐보는 남자. “아내가 눈물을 흘렸어. 날 사랑했던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곤, 아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나타나서 둘은 사랑을 나눈다. 아내는 그제야 이 남자의 사랑과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그는 사라지고 없고, 경찰이 들이 닥친다. 그 남자의 살해혐의로. 하지만, 아내는 “남편은 죽지 않았어요. 어제 나랑 있었어요..”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남편의 복수극?

영화는 감옥 앞에서 망원경으로 아내를 쳐다보는 남편을 보여준다. 아내는 멀리서 남편을 알아보고는 손짓한다. “여기서 나가면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고….”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 영화는 비아그라를 보여주지도, 얼음용 송곳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남녀의 멀어짐과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어떤 두려운 가정과,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현실을 이야기한다. 남자는 프랑스에서 한 번도 아내와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눈부시도록 하얀 결혼식의 기억은 단순히 꿈속의 모습이었던가. 아내가 헤어지자고 하니 그는 더욱 자신을 잃는다. (우리나라에서도 性격차나 원만하지 않은 부부관계가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한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 속에는 근원적인 남자만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드 이래로 아니, 인류번식생존史에서 영원히 풀지 못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결별을 선언당할 경우 남자는 이런저런 상상과 이런저런 결론에 도달하고, 그것은 더욱더 자신의 불행과 비극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키에슬로프스키의 남자는 복수를 꿈꾸고 아주 무모하리만치 -돈을 버는 과정과 복수의 과정이- 여자에게 집착한다. 보통 性심리학자는 이런 경우 남자의 심리가 패배감, 좌절감, 대인기피, 여성혐오 등으로 발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성적으로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면? 그럼, 남자는 보통 명예와 파워, 권력, 돈, 이런 것으로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든지 그러한 것을 세상에 보여주려 한다. 내가 고통 받는 것에 대한 대안모색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그 남자의 한 쪽 구석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래서 성공 후에는 술과 마약, 혹은 얼토당토않은 가학증세를 보여주게 될지도 모른다. 어쩜, 주인공처럼 죽음으로 사라져있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세상 – 영화에서 얼핏 나온 것처럼 ‘홍콩’같은 곳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즈비그니브 자마코브스키가 연기하는 불쌍하지만 강인한 집념의 남자 캐롤은 파리에서 그의 고향으로 돌아올 때, 돈이 없어 친구의 커다란 트렁크(슈트케이스)에 숨어 들어온다. 그런데,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오랫동안 추방생활 끝에 폴란드에 돌아올 때도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진짜일까?) 캐롤이 돌아온 고향 땅. 형의 이발소 가게에는 네온이 새로 걸려 있었다. “This is Europe, man”이라고.

이 영화에는 뭔가 다른 것을 담고 있지 않을까. 우선은 유럽통합의 폴란드를 생각해보자. 소련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길을 달리고 있는 폴란드. ‘向錢走’의 중국처럼, 러시아의 마피아들이 돈을 긁어모을 때 폴란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지난 세월의 압제와 부자유를 단숨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성공과 부를 지향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신념은? 그들의 이전 지도자들은? 그럼 줄리 델피는 무엇인가? 공산주의? 누가 누구를 버리고,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또 다시 누가 누구를 처단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남자의 능력? 인간의 한계? 물론 키에슬로프스키가 그런 식으로 영화를 보았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도 보여준다. 참 재미있는 영화이다. (박재환 2000/9/1)

감독: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출연:즈비그니브 자마코브스키, 줄리 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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