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다운폴]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 The Downfall 2004)

2010. 12. 30. 12:57유럽영화리뷰

반응형

(박재환 2010-12-30) 올해 초였던가? 인터넷에 재밌는 동영상이 나돌았다. 웬 독일어 영화인데 벙커에서 히틀러가 부하들과 함께 심각하게 작전회의를 하는 영상에 자막은 엉뚱하게 한국 MB정권의 4대강을 심하게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히스테리 컬한 히틀러의 얼굴표정과 함께 기막힌 한글 자막은 순식간에 인기 동영상이 되었다. 보면서 참 감탄했었다. 이런 패러디는 20여 년 전 ‘장진’ 감독이 한 TV코미디 프로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자연재난영화라며 천연덕스럽게 패러디한 것을 본 이래 최고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유튜브 찾아보니 그 히틀러 동영상에 자막 넣어 패러디 쇼를 하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수많은 ‘작품’이 있었다.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다. “뭐라고? 해리 포터가 우리 동네에선 상영을 안 하다고?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여기도 하는데….” 식으로. 각종 게임, 영화가 그런 식으로 히틀러의 입을 통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자막을 통해 네티즌을 즐겁게 하였다. 그 원소스가 된 동영상이 궁금했었다. 그 영상은 독일 콘스탄틴 영화사의 <몰락>(Der Untergang)이란 2005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었다. (상은 스페인의 <씨 인사이드>에 돌아갔다) 그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관련 다큐를 다 보고 지금 글 쓴다.

세기의 살인마 히틀러, 최후를 준비하다

히틀러는 잘 알다시피 독일 나찌(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리더이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엄청난 전쟁배상금 부담으로 피폐해진 독일이란 나라를 순식간에 부국강병국가로 일으켜 세운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히틀러의 독일병정들은 순식간에 유럽을 휩쓴다.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등 조그만 나라는 물론, 영국, 프랑스까지 그로기상태에 몰았고, 소련까지 쳐들어간다. 그러다가 미국이 참전하고 소련이 반격을 퍼부으면서 히틀러의 최후가 다가오는 것이다.


영화 <몰락>은 바로 1945년 히틀러가 죽기 얼만 전의 일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준다. 히틀러는 최후 몇 달을 지하벙커에서 기거한다. 이 지하벙커는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된 뒤 총리관저와 붙은 곳에 지하로 만든 것이다. 히틀러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지시하여 그 벙커를 더 튼튼하게 확장시켰다. 지하 9미터에 두께 수 미터의 콘크리트로 만든 요새이다.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이 SS의 보호 속에 먹고, 자고, 작전을 짜고, 최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상에서는 소련군이 맹폭을 퍼부으며 베를린을 옥죄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히틀러 말년의 모습은 초라하고 비참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까지 온 유럽을 떨게 한 최강독일의 총통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신불안증세에 시달리는 노인네로 보인다.

히틀러의 참모들은 직언하기를 꺼려하고 상황을 호도한다. 히틀러는 곧 그의 최강독일군이 소련군을 몰아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자신의 부하에게 끊임없이 지시를 내리지만 지상에서 그의 지시대로 움직인 병사는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았다.

1945년 4월 20일. 히틀러의 56회 생일날. 히틀러는 측근들과 둘러앉아 케이크를 먹는다. 히틀러는 말년에 케이크와 초콜릿에 거의 중독되었단다. 마지막 식사에서도 비서들과 앉아서 케이클 떠먹는다. 부하들은 마지막으로 히틀러에게 미국과 항복 교습을 하거나 탈출을 주문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베를린을 철저히 파괴시키고 자신도 죽어버릴 것이라고 거듭 다짐한다. 실제 히틀러는 소련 스탈린의 붉은 군대에게 잡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1941년 독일이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공했을 때 소련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다. 스탈린은 독일을 몰살시킬 생각까지는 아닐지라도 히틀러를 붙잡아 개목걸이를 해서 전시라도 할 기세였다. 히틀러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자살할지언정 소련군에겐 잡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시체마저 내놓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시신이 어떻게 취급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56번째 생일에 케이크를 먹고 히틀러는 오랜만에 지상으로 나온다. 공기를 마시며 대기하고 있던 히틀러 소년대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몇몇에게 훈장을 달아준다. 짧은 연설을 마친 뒤 지친 목소리로 “여러분 만세!”라고 외쳤단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단다. 종말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영상이 살아있는 히틀러를 담은 마지막 영상이다.

영화 <몰락>은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몇 권의 책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요아힘 페스트의 <몰락>을 기반으로 한다. 이 책은 2004년 안인희의 번역으로 교양인이라는 출판사에서 <히틀러 최후의 14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지난 주 이 책을 읽었는데 영화 내용과 똑같았다. 영화를 본 사람은 이 책도 읽어보시길. 영화에서는 이 책과 함께 히틀러의 비서(타이피스트)였던 트아우들 융거(Traudl Junge)의 이야기도 많이 담고 있다. 융거의 자서전도 많이 이용한 셈이다. 사실 그 책들이나 이 영화를 만들 때 히틀러의 최후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증언, 회고, 기록들이 활용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장되거나 조작되지 않은 히틀러의 마지막 날들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아마도 히틀러는 자신의 병사가 소련군을 물리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한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소련군보단 서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미군에게 투항하여 삶을 모색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내가 문제지만 곧 소련공산세력이 문제일 것이다. 나와 손잡고 소련 공산세력을 몰아내자.”고 빅딜을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히틀러의 외교참모들은 그것이 유일한 생존책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4월 25일 미군과 소련군이 엘베 강변의 트로가우에서 만나 서로 싸우는 대신 웃으면서 악수한다. 히틀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된다.

스탈린의 소련군은 히틀러를 잡기 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베를린을 맹폭했다. 서방연합군이 2년 이상 독일과 싸우면서 베를린에 6만 5천 톤의 폭발물을 터뜨린 것에 비하여 소련군은 겨우 2주 동안 4만 톤을 쏟아 부었단다. 히틀러는 마지막 날들을 지하 벙커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을까.

4월 29일. 히틀러는 뜻밖의 행동을 보여준다.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다. 사실혼관계였던 에바 브라운의 존재는 당시 외부에는 철저한 비밀이었다. (마치 김정일의 와이프가 누군지, 공식사진은 있는지… 와 마찬가지로) 히틀러는 죽기 전에 정식으로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모양이다. 서둘러 호적사무소 관계자를 찾았고 정식으로 혼인서약을 한다. 그 서류는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 히틀러는 56세, 에바 브라운은 23살 어린 33세 이었다. 그의 결혼식, 아니 결혼서약 장소는 그들이 최후를 맞이했던 바로 그 지하벙커였고, 그의 핵심참모 대여섯 명이 현장을 지켜봤다. 지금은 히틀러의 기록필름, 다큐멘터리에서 에바 브라운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 일반 대중에게는 에바 브라운은 미스터리 그 자체였을 것이다.


4월 29일. 히틀러는 소련군이 북쪽 바이덴 제방 다리 바로 앞까지 진출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20시간에서 24시간 정도 버틸 것이라는 보고를 받는다. 그러자 히틀러는 자신의 개 ‘블론디’를 돌보는 상사 프리츠 토르노브(Fritz Tornow)에게 개를 독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신의 개가 소련군에게 넘어가는 것을 생각만해도 병이 날 지경이라고 말한다. 토르노브는 즉시 블론드에게 청산을 먹인다.

이 영화에서 청산은 자주 등장한다. 히틀러는 최후 몇 주 전부터 자살용 독극물 제조를 명령하고 자신의 지인들에게 만약을 대비해서 하나씩 선물했다. 지금 그 청산의 효과를 실험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토르노브가 강제로 입을 벌린 개의 목구멍 위에서 가위로 앰플을 부수어 독약을 목에 흘려 넣자마자 개는 ‘번개에 맞은 것처럼’ 옆으로 쓰려진다. ‘블론디’는 불과 두 달 전에 새끼 5마리를 낳았다. 토르노브는 정원 출구 근처에서 그 새끼 다섯 마리를 쏘아죽인다.

히틀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알려진 이 이미지는 영화 <몰락>의 포스터에서 활용된다. 

4월 30일. 운명의 날. 새벽 5시 무렵 포탄 소리에 벙커 사람들이 잠을 깬다. 7시 무렵 에바 브라운이 ‘한 번 더 해를 보러’ 벙커 입구로 나서다가 적의 공격이 심해지자 다시 돌아간다. 정오 무렵 마지막 작전회의가 열린다. 바이틀링에게 마지막 총통명령이 내려진다. “탄약과 식량이 부족할 경우 나는 수도방위군이 탈출하는 것에 동의한다. 각자 가장 작은 그룹을 이루어 탈출해서 아직 전투 중인 부대에 합류하라. 전투 중인 부대를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작은 그룹을 이루어 숲에서 계속 싸워라.”

히틀러는 작전회의가 끝난 뒤 오토 귄세에게 말한다. 자기도, 브라운 양도 자발적으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그리고 불에 태워져서 영원히 발견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오토 귄세는 히틀러의 운전기사 에리히 켐프카와 통화한다.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가능한 한 많은 휘발유를 마련하라고. 세워둔 자동차의 연료탱크라도 가져오라고.

오후 2시 히틀러는 여비서들과 조리사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한다. 그리고 독약이 담긴 작은 구리 실린더를 ‘보잘 것 없는 작별선물’이라고 준다. (이 마지막 식사자리에 에바 브라운은 참석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그의 부하들과 마지막 순간에 지하벙커의 공기를 나눠 마신 셈이다. 마지막 충복이라고 자처하던 괴벨스와 그의 아내 마그다, 비서 마르틴 보어만, 마지막 참모총장 한스 크렙스, 그의 수석부관 부르크도르프 장군, 해군연락관인 한스 에리히 포스 부제독, 경호를 담당했던 친위대 장군 겸 국가안전부 책임자 요한 라텐후버, 오토 귄세, 부관이었던 하인츠 리케 등과 마지막 순간을 잠시 나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그 마지막을 짐작하고, 그 마지막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3시 30분경 총성 한발이 들린다. 링게와 보어만이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뒤를 귄세가 따라 들어간다. 히틀러는 7.65.밀리 발터 피스톨(Walther PPK 7.65mm)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고, 그 옆에는 푸른 원피스의 아내가 독약을 먹고 자살한 상태였다. 링게와 회글이 히틀러의 시신을 들고, 보어만이 에바 브라운의 시신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소련군의 공세는 심해졌다. 대포공격이 계속되고 사방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담벼락과 파편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땅이 흔들렸다. 히틀러와 브라운을 땅에 내려놓고 미리 준비한 10통의 휘발유를 시신 위에 뿌린다. 성냥개비에 불을 붙여 던져보지만 바람 때문에 몇 번 실패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불을 붙이는데 성공하고 부하들은 마지막으로 팔을 쳐드는 히틀러식 인사를 한다. 검은 연기와 파편들이 소용돌이치며 올라가고 불난 자리를 뒤덮었다. 그들이 문틈으로 바라본 마지막 광경은 시신들이 오그라들어 화염 속에 팔다리가 위로 솟구치는 모습이었단다.

요셉 괴벨스 가족 사진. 매정한 부모 덕에 아이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군복을 입은 남자는 마그다의 전 남편 아들로 1944년 전투 중 포로로 잡혀.. 다행히 살아남았다.. 뒷이야기를 보니 1967년 비행기 사고로 죽었단다. 

다음 날 5월 1일 저녁. 히틀러의 충복 괴벨스와 아내 마그다도 주인을 뒤따를 준비를 한다. 마그다는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차례로 독이 든 앰플을 먹이고는(영화에선 이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들 부부도 히틀러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살한다. 친위대 병사들은 총소리를 들은 뒤 방에 가서 시체를 수습한다. 역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다. 이후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탈출러시가 시작된다.

소련의 공식문건에 따르면 5월 2일 오후 3시. 붉은 군대는 이렇다 할 저항을 받지 않고 총리관저를 점령한다. 맨 먼저 들어간 소련군인은 이반 클리멘코 중위였다. 이 용감한 행동으로 그는 ‘소련의 영웅’으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이후 더 자세한 내용이 알려진다. 그날 아침 9시 일군의 소련 군인이 먼저 들어선다. 놀랍게도 제복을 입은 소련 여군 12명. 붉은군대 위생부대소속이었다. 이들 중 소련여군 가운데 하나가 유창한 독일어로 총통벙커의 수석기술자 요하네스 헨첼에게 히틀러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이어 히틀러의 부인에 대해 묻는다. 그‘녀’들이 이리로 온 이유는 명백했다. 그들은 에바 브라운의 옷장으로 달려가서 쓸모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온 가방과 자루 속에 쓸어담았다. 이들 소련여군은 브래지어와 레이스 달린 속옷들을 흔들면서 벙커를 나서다가 그새 들어온 또 다른 소련군 장교 두 사람과 마주친다. 이들도 헨첼에게 히틀러의 행방을 묻는다. 그들은 히틀러가 결혼했고, 죽었고, 화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황해한다. 그리고 괴벨스 가족의 거처에서 죽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로 문을 닫는다. 이들 두 장교는 소련군 콘예프 원수의 부대원으로 알려졌다. 소련군의 베를린 공략전에서 소련 장군들은 서로 공을 쌓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불과 며칠 전 스탈린이 직접 ‘베를린은 슈코프가 맡고 콘예프 부대의 접근을 막는다’고 말했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오랫동안 ‘없었던 일로‘ 치부된다.

처음 히틀러의 시신이라고 소련군이 공개했던 사진 

5월 4일부터 쇼가 시작된다. 총리관저를 접수한 소련의 점령군은 벙커 입구의 널찍한 정원에서 수많은 사망자와 타버린, 혹은 절단된 15구 정도의 시체 잔해를 발견한다. 점령군은 그 시체 중 하나를 히틀러처럼 꾸며 <히틀러 시신>발견이라고 공포한다. 이것이 이후 <<히틀러 생존, 탈출설>>의 실마리가 된다. (대역임이 밝혀졌고, 그 사이 진짜는 도망갔다는… 설)

실제 히틀러는 벙커를 빠져나갔다는 설(說)은 그 당시부터 무성하게 퍼졌다. 비행기로 빠져나가 잠수함으로 독일을 떠났다는 것이다. 북유럽을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한 달도 안 되어 스탈린이 “히틀러는 절대로 죽지 않고 도망갔다.”면서 연합국(미국이든 영국이든…)이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이 그렇게 믿었든 아니면 정말 최고수 정치외교 전략이었든지 간에 히틀러생존설, 아니 사체 미발견은 독일전후처리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된다.

미국 CSI가 총통정원을 통째로 옮겨 DNA조사를 하면 되지.. 뭐… 가 아니라.. 소련점령군은 한동안 벙커를 완전점령하고 연합군을 얼씬도 못하게 한다.

NGC(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한 히틀러 다큐에서 이 혼란한 시기를 다루었다. 소련군은 당시 벙커에 있던 히틀러의 물건과 히틀러의 시신들을 거의 모두 깡그리 수습한다. 그리고 히틀러의 최후를 잘 알고 있는 부하들도 대부분 잡아들여 소련의 수용소로 끌고 가버린다. 그래서 미국이든 영국이든, 독일이든… 알고 싶어도 알 방도가 없다. 증인도, 증거도 없으니…. 게다가 그 벙커를 폭파시키고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린 뒤에는 유언비어만 남을 수밖에.

소련이 붕괴된 뒤, 증거품이 세상에 나온다. 잔해더미에서 건져 소련이 수거해갔던 히틀러의 치아가 등장하고, 그것이 히틀러의 치아임이 확인된다. 두개골 일부 조각도 보존되어있다. 소련의 KGB는 한동안 히틀러의 시신(조각,흔적)을 나무상자에 보관했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불태워버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히틀러의 벙커에 CCTV가 설치되어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도 한정적이다. 그래서 그가 자살했을 때 정황도 조금씩 다르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는지, 기역자 소파에 따로 앉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경황없이 부하들이 시신을 실어 날라 불태워야했으니 말이다.

이후 공개된 사진. 소련군이 히틀러가 자살한 곳을 살피고 있다. 

여하튼. 히틀러는 그렇게 죽었고, 그렇게 그의 최후가 재구성되었지만. 다들 알잖은가. 이런 일에는 항상 뒷북치는 사람들과 새로운 음모론이 무궁무진 나오게 마련이란 것을.

그런데 히틀러 사후, 나찌 붕괴 후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총살되고, 교수형 되고.. 소련수용소로 끌려가고 그랬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이 히틀러의 최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는 재밌다. 흥미롭다. 그런데 히틀러 찬양하는 놈들은 또 뭐야? 참.. (박재환, 2010.12.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