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리뷰(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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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정] 님아, 이 상을 받으소서! (박혜령 감독)
요즘은 TV예능프로그램에서 셰프, 요리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전에는 ‘한국의 맛’을 소개하는 다큐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바로 그런 한국의 정통 맛을 소개하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TV 교양프로그램을 만들던 박혜령 감독의 역작 이다. 전국을 떠돌며 식재료를 찾아, 독특한 삶의 철학을 담은 음식을 만든다는 방랑의 세프 임지호가 주인공이다.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라는 음식철학을 가진 그는 잔디, 잡초, 이끼, 나뭇가지 등을 재료로 한 요리들을 선보였다.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미슐랑 별을 노리고 만드는 미각의 절정도, 바글바글 손님을 불러 모으는 삼대 맛집의 숨겨진 손맛도 아니다. 혀 끝이 아니라 심장과 영혼을 완전히 잠식하는 소울푸드를 내놓는..
2020.10.14 -
[보테로] 내 그림은 뚱뚱해 (돈 밀라 감독 Botero,2020)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푸근함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그가 그린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뚱뚱하고, 비만형이고, 모든 것이 풍성하다. 그게 그의 예술혼이고, 창작의 기본 콘셉트다. 보테로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열렸다.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개봉된다. 캐나다 돈 밀라 감독의 이다. 보테로와 그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예술가 보테로의 삶과 작품세계를 되돌아보는 형식이다. 봉준호 감독의 에서 박 사장(이선균)네 유치원생 아들(정현준)이 그린 낙서 같은 자화상(실제로는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임!)을 보고 박소담이 굉장한 의미를 두며 아동심리학적 평가를 내리는 장면이 있다..
2020.09.23 -
[카일라스 가는 길] 길 끝에서 만나는 힐링 (정형민 감독 Journey to Kailash , 2018)
‘힐링’이라는 말이 일상의 분잡함과 현대의 속도전에 지친 도시인의 영혼을 위로해 준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기 전에, 그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던 곳은 주로 인도였다. 그리고, 언제가부터 티베트의 고산, 산티아고의 순례길 등이 그 목록에 추가되었다. 오늘 갈 곳은 ‘카일라스 산’이다. 정형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다. 카일라스 산은 중국 땅인 티베트의 서남부 강디스산맥에 우뚝 솟은 6656미터 높이의 영산이다. 중국어로는 깡런보치(岡仁波齊峰)봉이라고 불린다. 지리학적으로는 티베트 고원을 흐르는 수많은 대하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샘솟은 물들이 흘러 흘러 브라마푸트라강, 인더스강, 수틀레지강, 갠지스강이 된다. 이곳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須彌山)으로 취급되며, 티베트불교를 비롯..
2020.09.04 -
[바다로 가자] “내 고향 함경남도 단천군” (김량 감독, 2019)
남북분단의 역사에 있어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는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간 일일 것이다.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이벤트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북한(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이 고향인 정 회장의 수구초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잠깐 이웃나라를 보자. 중국-대만의 관계에서도 반백년 전 공산주의자를 피해 대만 섬으로 피난 온 자본주의 세력들도 대만에서 기업을 일구고 돈을 벌더니 하나씩 고향(대륙)으로 돌아가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더 신기한 것은 대만(국민당) 군 장성들도 전역한 뒤 노후를 떠나온 고향-공산주의 중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혹은 죽기 전 갖게 되는 소망인 모양이다. 여기 그런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
2020.06.17 -
[아홉 스님] 90일간의 동안거 수행 (윤성준 감독, 2020)
불교행사 중에 ‘동안거’(冬安居)라는 것이 있다. 불제자가 겨울 기간에에 90일 동안 한곳에 모여 조용히 정시적 수양, 참선을 행하는 ‘이벤트’이다. 지난 해 음력 10월 15일(양력 11월 11일), 수행에 들어가는 결제(結制)가 시작되어 음력 1월 15일(양력 2월 8일) 무사히 해제(解制)되었다. 이 90일의 행적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27일 개봉되는 아홉 스님>을 통해 스님들의 겨울 수행을 들여다 볼 수 있다.알려지기로는 불교가 탄생한 인도에서 처음 승려들의 ‘안거’라는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름에 비를 만나거나, 길을 가다 초목과 벌레들을 밟아 살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정진하게 한 것이 ‘안거’의 시작이란다. 이번 동안거에는 모두 아홉 명의 승려들이 수행에 ..
2020.05.26 -
[안녕, 미누] 네팔사람 미누, 한국을 떠나다 (지혜원 감독,2018)
‘미노드 목탄’. 한국에선 ‘미누’라 불린 네팔사람이 있다. 1992년, 스무 살의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식당일부터 봉제공장 재단사 등 ‘3D직종’을 맴돌던 ‘불법체류자 시대’의 대표적 동남아 노동자였던 그는 2009년 한국에서 추방당한다. 미누는 한국 땅에서 쫓겨나기 전, 같은 신세의 외국인노동자의 권익을 찾기 위해 무든 노력했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열심히 노래 부르며 ‘한국체류’를 호소한 문화운동가인 셈. 그가 무려 18년, 온전히 청춘을 바친 한국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 그의 추억이 담겨 있다. 미누는 한국을 떠난 뒤 네팔에서 작은 사업체를 꾸미며 계속하여 한국과 연을 이어왔다. 트래킹을 온 한국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히말라야 ..
2020.05.26 -
[14개의 사과] 미얀마 출신 대만영화감독의 ‘도시탈출 힐링공양’ (미디 지 = 조덕윤 감독 14顆蘋果, 2018)
대만영화계를 한국과 비교하면 거의 영세 소상공인 수준이다. 후효현(허우샤오시엔) 같은 명감독이 있지만 ‘스크린쿼터제’ 같은 안전판도, 정부의 적극적 지원도 그다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만영화인은 빠지지 않고 그들의 신작을 들고 참석한다. 해마다 찾는 영화인들은 한국영화계의 풍성함, 한국영화팬들의 열정을 직접 보고 느끼며 그 에너지를 받아간다. 그렇게 한국을 찾은 대만 영화인 중에 미디지(Midi Z)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감독이 있다. 중국 이름은 조덕윤(趙德胤,짜오더인)이다. 미얀마 출신으로 16살에 단돈 200달러를 들고 대만으로 넘어와서 대만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고, 대만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대만몽’의 주인공이다. 그의 2018년 작품 (十四顆蘋果/14 ..
2020.05.12 -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 Aim High In Creation, 2013)
좌충우돌 평양 적응기 비하인드 스토리2! [BY 논픽션시네마]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 2! 좌충우돌 안나의 평양 적응기!9월 13일 ... m.post.naver.com [취재일기] 첫 시사, 첫 반응 — Steemit 어제, 오늘 남북정상회담을 보니 꽤 뭉클하고 울컥했습니다. 특히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한 연설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타서 지난 9월13일 개봉한 영화 한편을… by pepsi81 steemit.com 좌충우돌 평양 적응기 비하인드 스토리2! [BY 논픽션시네마]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 2! 좌충우돌 안나의 평양 적응기!9월 13일 ... m.post.naver.com 우리가 아는 평양, 우리가 모르는 평양 [..
2020.05.10 -
[사마에게] 피, 주검,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알레포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For Sama)
잠깐 구글맵이라도 펼쳐보시길. ‘시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가. 터키, 이라크, 이스라엘 등 중동의 화약고인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인구는 2200만 ‘정도’란다. 외신에 관심이 없더라도 몇 년 동안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주민을 학살하고 있고, 견디지 못한 수백만이 국경을 넘어 난민신세가 되었단다.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나 알아사드의 인물평은 잠깐 뒤로 하고, ‘학살의 현장’으로 관객을 곧장 인도하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와드 알-카팁과 에드워드 왓츠가 위험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이다. ‘사마’는 와드 알-카팁 감독의 예쁜 딸이다. 폭탄이 하루도 빠짐없이 펑펑 터지는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영화는 지옥 같은 알레포에서 5년 동안 찍은 영상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
2020.02.01 -
[울지마 톤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신부님
아프리카의 한국인 별 이태석 신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수단’이라는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면적의 나라이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내전 수준의 종족 투쟁은 이 땅을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그 땅에 석유가, 희귀광물자원이 그 얼마나 많이 매장되어있는지 몰라도 그곳에 사는 흑인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저개발의 험악한 현대사를 이어왔다. 그 땅에 한국인이 있다. 놀랍게도 자동차 한 대, TV 한 대, 운동화 한 켤레 더 팔려는 상사 맨이 아니다. 평화와 복음의 전도사이다. 종교영화? 그렇다. 종교영화이다. 주인공은 종교인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사지 멀쩡한 사람으로 이 땅에 밥 먹고 그저 산다는 것이 그렇게 죄스러울 수 없게 느껴지는 그런..
2020.01.14 -
[작은 연못] Kill'em All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올해는 ‘육이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신문매체에서는 앞다투어 기획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각 방송사마다 대규모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모든 전쟁들이 그러하듯이 한국전쟁은 아주 특별한 시점에 ‘기어이’ 발생하고만 아주 기이한 전쟁이다. 실질적인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그리고 전쟁 기간 내내, 그리고 당연히 전쟁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전쟁의 기원이나 양상에 대해서는 (한동안 브루스 커밍스의 책이 대표하듯) 수많은 학설과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전쟁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사람들과 그 전쟁의 피해자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전쟁의 어두운 일면..
2019.11.12 -
[더러운 실험] CIA의 비밀 인체 실험 (CIA Secret Experiments 2007)
(박재환 2009.11.09.) 주말에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았다. 의 비밀 인체 실험>(CIA Secret Experiments)이란 프로였다.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만든 여러 미스터리/음모론 이야기의 하나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생화학자 프랭크 올슨이 어느 날 뉴욕의 한 호텔에서 추락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가 어떤 일에 관여했고, 미국의 CIA는 미소냉전체제하에서 어떤 끔찍한 작전을 꾸미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 프랭크 올슨의 행적을 쫓아가보자. 프랭크 올슨(Frank Olson)은 미 육군 소속의 화학자였다. 그가 속한 부대는 메릴랜드 주 프레드릭에 위치한 포트 디트릭(Fort Detrick)이다. 그가 수행한 업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CIA와 함께 어떤 비밀스런 업무..
2019.09.04 -
[플라스틱 차이나] 언더 더 카펫 (왕지우랑 감독 塑料王國 Plastic China, 2016)
(박재환 2018.02.20.) 지난주부터 ‘KBS 독립영화관’이 정상(!)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오늘밤 독립영화관>시간에는 꽤 의미 있는 독립영화 한 편이 영화 팬을 찾을 예정이다. 중국과 대만의 독립 다큐멘터리스트가 만든 플라스틱 차이나>(감독: 왕지우랑 원제: 塑料王國, Plastic China)이다. 작년 선댄스키드 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면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오늘도 ‘분리수거’를 기꺼이 한 지구인이라면 이 작품을 꼭 보시길 바란다. 작품은 ‘분리 수거된 쓰레기’의 종착역을 보여준다. 깡통, 종이, 비닐, 플라스틱류로 분리수거된 그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막연하게 재처리공장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분리공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
2019.08.26 -
[낮은 목소리3 - 숨결] 산 자의 숨결, 죽은 자의 회한 (변영주 감독 My Own Breathing, 1999)
지난 (2000년) 3월 1일.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앞에서는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모여 누군가를 향해, 뭔가를 부르짖고 있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의 현장이다. 1992년 1월 8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구(舊) 일본대사관앞에서 첫 시위를 가졌던 할머니들은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여 왔다. 예외는 단 한 차례, 지난 95년 일본 고베 지진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한 주를 걸렸을 때뿐이다. 작년 말, 일본대사관이 증축관계로 교보빌딩으로 이전한 후에는 할머니들도 자리를 옮겨 줄곧 이 '작은 외침의 시간'을 계속해왔다. 이날 모임은 정확히 400회째 된다. 삼일절 날 말이다.할머니들은 일본군 위안부(정신대)의 진실이 일본교과서에 실리고, 일본..
2019.08.17 -
[어폴로지: 나비의 눈물] 피해자 상처는 천년이 가도 아물지 않는다
* 2019년 8월 17일(토) 00:45분 KBS 독립영화관 방송 *(박재환 2019.8.16) 일제강점기 때 강제적으로 끌려가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았던 ‘위안부’를 설명한 인터넷 위키백과의 영문 표제어는 ‘Comfort women’이다. 다분히 톤 다운된 용어이다. 역사적으로는, 그리고 국제법적으로는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로 일컫는다. 한국의 소녀들만 끌려간 것이 아니다. 20만에서 30만에 이르는 소녀들이 일본 제국주의 더러운 욕망의 가엾은 피해자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감춰졌던, 애써 외면했던 역사의 어두운 진실은 1990년대 들어 봇물처럼 터졌다. 한국(북한도 포함됨)과 중국인뿐만 아니라 필리핀과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2019.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