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9.8.29.)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번 째 극장용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리뷰한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 후 모든 작품의 기반이 되는 주제의식, 창작방법, 영화스타일, 캐릭터가 다 나온다. 음악까지도 말이다. 물론 그의 이전 텔레비전 만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보여준 어떤 미래상을 이어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나우시카는 바람계곡 마을의 족장인 지르의 외동딸로서 자연과 교감할 줄 아는 특별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녀가 사는 시대의 지구는 천 년 전 ‘불의 7일간’이라는 전쟁으로 완전히 황폐화되었고, 부해(腐海)라 불리는 곰팡이 숲으로 덮여있다. 사람들은 그 부해에서 퍼져나오는 유독가스로 위협받고 있다. 어느 날 군사국가인 토르메키아의 대형 비행선이 바람계곡에 추락하는데, 거기에는 도시국가 페지테로부터 탈취한 최종병기 거신병(巨神兵)이 실려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황녀 크샤나가 이끌고 온 토르메키아의 군대는 바람계곡을 점령/통제하기 위해 나우시카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녀을 인질로 끌고 가지만, 도중에 그들이 탄 비행선이 페지테국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부해 속에 추락한다. 거기에서 부해의 비밀을 깨닫게 된 나우시카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바람계곡에서는 토르메키아군이 거신병을 배양하고 있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거대한 벌레 왕충(王蟲)의 무리를 바람계곡 쪽으로 폭주시키는 페지테. 폭주에 대항하여 크샤나는 거신병을 움직이지만 중과부적이다. 마침내 바람계곡으로 돌아온 나우시카는 왕충의 대군을 상대로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킨다. (내용: 키노 96년 11월호 86쪽 김준양의 글에서 발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의 공식사이트에는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우선 나우시카는 원래 호메로스의 소설(서사詩) 에 나오는 인물이다. 오디세이가 바다에서 떠밀려 왔을 때 그녀가 오디세이를 발견하고 구해준 것이다. 그리고 나우시카의 인물 설정은 일본의 전례이야기에 나오는 <벌레를 사랑한 공주>같은 이야기가 기반이 되었단다.
제목 표기에서 ‘Nausicaa’라고 하는 것은 영어알파벳 표기에서 움라우트(a위에 점 콕콕 찍은 글자)표시가 쉽지 않아 그렇게 쓰는 것임. 마지막에 나우시카가 입고 있던 옷이 핑크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는데 그 이유는 오무(Ohmu 王蟲)의 푸른 피를 뒤집어 섰기 때문이다.
나우시카는 원래 미야자키가 만화잡지 에 1982년부터 13년 동안 연재한 망가가 원작이다. 이 만화는 나중에 7권짜리 단행본으로 나오지만, 영화로 옮겨진 것은 첫 두 권 분량이라고 한다. 그러니 원작만화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이 영화도 <원령공주 (모노노케 히메)>처럼 환경보호 메시지가 강하다. (그런데 imdb에서 찾아보니 이 영화가 뜻밖에 유럽, 특히 독일에서 환경보호론자의 반대로 공개가 한동안 저지되기도 하였단다. 이유는 환경파괴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어떤 오해를 불려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단다. 왜 그랬을까?)
영화가 시작되면, 이런 자막이 오른다.
거대 산업 문명이 붕괴한지 1000년. 녹과 세라믹 조각에 뒤덮여 황폐해진 대지와 썩은 바다… 부해(腐海)라고 불리는 유독한 공기를 내뿜는 균류의 숲이 확장되면서 쇠퇴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다.
상당히 놀라운 상상력과 충격적인 미래전망인데 비켜갈 수 없는 지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미 적도지방에서부터 오존층 파괴와 피부암의 발생과의 관련, 신생아들의 아토피성 피부병, 중국의 황사현상, 아마존의 밀림 파괴가 가져오는 전 지구적 산소결핍문제 등은 급속도로 황폐화되어 가는 지구의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러한 암울한 미래에 환상을 심어놓는다. 얼핏 보면 환경친화적 요소이지만, 그 속에는 메시아적 이데올로기가 숨어있고, 또한 막시스트적인 공동체 이념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나우시카의 자기희생적 분투는 잔다르크를 초월하는 인류애적 보편성으로 구현된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는 다원적으로 읽혀질 수 있다. 사실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성 캐럭터의 다양한 성격이 압축되어 나타나지만, 놀랍게도 가장 강인하고, 또한 가장 여성적인-특히 모성애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어릴 때부터 벌레나 동물, 살아있는 모든 존재뿐만 아니라 죽어있는 존재에까지 애정과 집착을 가지고 보호하려는 놀라운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상의 적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이 파괴되면 모두 공멸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늘, 비행에 대한 집착은 이 영화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그가 타는 행글라이더나 전투함, 기구, 마베(마베는 독일어로 기러기라는 뜻이란다)… 등등은 그의 영화의 한 요소이기도 한 하늘을 나는 욕구인 것이다.
이 영화가 1984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면에서는 향후 나올 만화나 SF 판타지에서 충분히 경배해야할 장면이 쏟아진다. 부해의 환상적 장면과 오무의 이미지, 공중전 장면은 헐리우드에서 실사로 만들어질 경우 감탄을 할 장면들이었다.
어제 비디오 가게 갔더니, 여기도 <천공의 성 라퓨타>가 있었다. 출시되자마자 황급히 회수되었다고 하더니 다시 출시되었나? (박재환 1999/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