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금련] 여자의 운명

2008. 2. 23. 10:41홍콩영화리뷰

[Reviewed by 박재환 1999-1-14]    <차탈레부인의 사랑>은 대단한 문학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영국에서 금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작가 로렌스의 문학적 성취가 보통이 아니어서 색안경을 끼고 볼 책은 절대 아닐 것이다. 중국에도 그런 책이 있는데 바로 <금병매(金甁梅)>이다. 이전에 학교 다닐때, 연세대에서 우리나라 중국소설 전공교수님들이 모인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발표 도중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금병매>를 전공하신 어느 교수님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참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을 전공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쩌니.."하는 이야기. <홍루몽>이나 <사서삼경>전공자는 많아도, 진짜 인민대중열혈독자를 자고이래로 잔뜩 거느린 <금병매>는 그 내용의 특수성으로 인해 연구하는 전공자가 전무한 것이다. 왜냐하면, <금병매>는 알게 모르게 음란 외설 서적쯤으로 치부되니까 말이다. (모르지.. <소녀경>은 알아도 <금병매>는 모른다하면 할 말 없지만...) 이문열이 평역(이문열이 "옮긴"하기도 뭐하고, 이문열이 "재해석한"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광고대로 "평역한"으로 표현했다)한 <<수호지>>는 한번쯤 읽어보셨으리라. <<수호지>>는 진짜, 상당히, 굉장히 재미 있다. 손에 잡으면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그 <수호전> 내용 중에 서문 경(西門慶)과 반금련(潘金蓮)의 정사(情事)를 다룬 부분이 있다. 무송(武松)의 형은 조금 많이 덜떨어진 무대(武大)였고, 무대의 마누라는 그런 바보에겐 너무 아름다운 "반금련"이다. 반금련은 시동생 무송을 유혹해보기도 하지만, 무송은 형님을 너무나 아끼는 위인이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반금련은 나중에 서방질을 하고 무대를 독살한다. 뭐, 그런 내용이다. (<금병매>라는 제목은 서문 경의 첩 반金련·이병아(李甁兒), 그리고 반금련의 시녀 춘매(春梅)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 한다.) 자, 그럼 먼지 폴~폴~ 나는 따분한 중국고전 이야기는 그만두고 영화나 보자스라. 이번 영화 <반금련>은 이 고색창연한 중국 고전에서 가져 온 영화이다. 에로틱하고, 야하고, 외설스럽고, 긴장되지 않은가?

케이블TV에서 <반금련>을 한다기에 난 <옥보단>쯤 되나 보다 했는데, 왕조현이 나온다기에 그러기야 할까 싶었다. 자막이 오를때 "각본 이벽화"에 난 자세를 고쳐 앉아 -사실은 누운 자세로 봤음-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이벽화는 바로 <패왕별희>의 원작자이니까 말이다. 찾아보면 이벽화는 <패왕별희>소설-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진용>,<인지구>,<청사> 등의 영화 각본을 쓴 사람이다. 그러니, 최소한 <옥보단>류의 살내음보단 <古典>류의 무거움이 기대된 것이다. 사실, 반금련의 이야기(살인이 있고, 지옥에 떨어지고... 그런 환상적인 고대극)가 펼쳐지고나서, 화면은 일순 급변, 1960년대의 중국을 비춰준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속으로 빠져든다.

"조반유리! 혁명만세!" 등등의 구호와 격문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예의 그 꼬깔 모자쓴 사람들이 인민재판 받는 광경이 보인다. 여기에 한 소녀-발레연습을 하고 있는 소녀-가 나오니 바로 옥련이다. 이 소녀는 천년전 죽은 그 반금련의 화신인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潘金蓮之前世今生>이고, 영어제목은 <The Reincarnation of Golden Lotus>이다. 제목에서 대강 어감이 올 것이다) 지옥을 떠돌다가 "꼭 복수하고 말리라"하며 저주하던 그 여인네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고전 서적이 몽땅 불살라지는 것에서 최고조를 맞는다. 던져지는 그러한 책 속에 <금병매>가 있었다. 소녀는 그 책에 기이한 느낌을 갖게 된다. 불씨 속에서 한줌 재로 변하는 <금병매>.

시대는 좀 흘러 그 어린 소녀가 이젠 육감미가 흐르는 (사실 이런 표현은 촌스럽지만, 이야기 진행상 그런 느낌이 필요해서 사용했다 ^^) 성숙한 여인네가 된 옥련-왕조현의 감각적 영상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실 왕조현은 키만 멀대같이 크다거나, 연기력 전혀 없다거나, <천녀유혼> 하나 가지고 버티는 여배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오니까 말이다. 이 무용학교의 늑대같은 교장이 어느날, 옥련을 부른다. "애야, 잠깐 교장실로 와 봐라.. " 그러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이 시작된다. "너가 반혁명적인 짓거리를 하고 있다던데 사실이야? 내가 입만 열면 넌 무용를 못하게 돼!.. 가만 있어.. 이 이쁜 것.. "그러곤, 덮친다.. 이쁜 것도 죄라고.. 하지만, 이내 교장실에 들어 오는 사람들.. 교장은 바지를 엉거주춤 올리며, "저 년이 유혹하고 있어" 그런다. (평소 옥련의 미모에 시샘하던 여자들은 앞뒤 잴것 없이 ) "갈보년!" 이라며 매도하고, 두들겨팬다. 그리고 옥련은 노동계급으로 떨어진다. 신발공장에서 노동하는.. 급전직하 신분의 격하.

(영화 초반 반금련이 저주하는 목소리로 "복수하러 돌아오겠어"하는 소리는 반금련의 신세를 전적으로 말한다. 자기가 예쁘고, 아름답다 보니, 이런 남자, 저런 놈팽이가 자기를 집적댄 것이지, 이쁜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여기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가 이다... 옥련도 무슨 죄가 있는가. 단지 이쁘다느 이유 하나로 교장에게 불러가서 몸X리고, 신세 X지고...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신세는 더욱 더러워진다. 같은 공장노동자 계급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농구를 하고 있는 그 남자, 임준현이었다. 그 남자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을 옥련은 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순간적인 장면이 삽입된다. <옛날 금병매>의 장면.. 근육이 아름다운 그 남자.. 였다. 무송이었다. 시동생.. 이루지 못한(유혹하지 못한) 사랑은 한이 되어 같은 공장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녀는 그날 밤 그 남자에게 농구화를 가져다 준다. 이걸 신고,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라고.. 서로의 미묘한 눈빛..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더욱 최악의 곳으로 몰아 넣는다. "저 년이 농구화를 훔쳐, 임준현을 꼬실려고 했다..."라고. 왕조현은 아무리 "내 돈으로 산 거에요..."라고 변명해도. 그녀의 과거-"저년이 이전에 누굴 꼬리치다가 여기왔어. 더러운 년..." 임준현씨 말좀 해봐요... 하지만, 임준현은 문화대혁명의 집단광기를 잘 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선,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난 모른다.!"

세월은 또 흐른다. 이번엔 중국 산골마을이다. 홍콩으로부터의 부자 관광객이 몰려오면, 우- 몰려가서 "이것 사세요. 이것이 가장 싸요.."라며 파리떼처럼 달라붙는 그런 중국인으로.. 그 관광객 중 "증지위"도 끼어 있다. 그는 첫 눈에 반해서 그녀의 거처로 간다. 그리곤 이것 저것 물량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에어콘도... 에어콘을 켜는 순간. 그 시골 동네의 전기는 모두 나가버린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볼멘소리. "아니 저 년이 동네 남자 다 끌어가더니 이젠 그것도 모자라 전기까지 다 가져가..." 증지위는 그녀에게 쏘옥 빠져서 "나랑 같이 홍콩으로 가자..."그런다.

옛날 반금련, 문혁을 거친 옥련, 그리고 이제 홍콩의 돈많은 사업가의 아내가 된 왕조현. 하지만, 증지위는 수호지의, 금병매의 그 바보같은 "무대"인 셈이다. 게다가 증지위가 아내에게 선물한 벤츠의 기사가 누구인가. 바로 임준현이 아닌가. 운명의 장난인가? (금병매식 표현을 빌자면...) '淫心이 動한' 왕소저는 임준현 서생을 조금씩 조금씩 유혹하기 시작한다. 순간순간 왕조현은 아주 옛날 꿈을 꾸고, 누군가가 죽고, 자기는 지옥에 떨어지는 악몽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리고 임준현은 언젠가 오래전부터 자기가 사랑했던 사모했던 사람이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임준현은 비록, 농구화 사건으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증지위가 누군인가. 자기에겐 형과 같은 존재, 생명의 은인처럼 잘 대해 주지 않는가.

영화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간다. 결국은 아주 슬프게 끝나지만 말이다. 증지위의 확실한 연기. 천진난만 그 자체, 바보스런 남편 연기는 정말 볼만하다. 자기보다 훨씬 키 크고 (--;) 잘 나가는 아내를 미워할 수도, 의심할 수도, 차버릴 수도 없는 신세. 아내는 지금 열심히 시동생을 유혹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몽유병처럼, 사진작가에게 몸을 줘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작가란 놈은 또 그걸 미끼로 구질구질 요구하고 말이다. 왕조현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떤 합리적인 해석을 내리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다. 과거의 악연과, 계속되는 악몽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동하고, 몸을 주고 마는 것이다. 왕조현은 이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 다 나온다. 그리고 엄청 많은 패션을 선보이고, 엄청 매력적인, 유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반금련의 화신처럼 말이다. 농구 장면이 나올 때마다 픽-웃음이 나왔다. 왕조현은 대만 농구선수 출신이다. 키도 크고, 자주 비추는 발을 유심히 보라. 정말 왕발이다.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마치 <인지구>같은 느낌이 들고 말이다. 에로틱 무비로 오해하고 보기 시작했다가는 분명 헤맬 영화이다. 하지만, 결코 손해볼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충격적인 물건을 하나 보게 되는 보너스도 주어지니 두 눈 똑바로 떠고 지켜봐라.  (박재환 1999/1/14) 
 
潘金蓮之前世今生 (1989)
감독: 나탁요(羅卓瑤 Clara Law)
주연: 왕조현, 증지위

 

  • 프로필사진
    모산도인2009.09.23 23:01

    저도 얼마전에 소설 '금병매' 를 읽어보았는데..사실 주인공들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큰 줄거리를 보면 여첩하고 서문경 노닥거리는 이야기가 주더군요 그런 비슷한 플롯이 너무 자주 반복되서 큰 줄기만 살려 펴낸 책들도 꽤 되더군요 물론 완역본도 있구요 아마 완역본을 읽는다면 그것은 이 소설의 핵심인 적나라한 '성묘사' 때문이겠지요 그런 말초적인 것에는 별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전 이 소설 보면서 꽤 많이 웃었습니다 판본마다 결말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무대의 딸 영아가 18살이 서문경한테 접근하는데, 제가 자기가 숫처녀인지 봐 달라고 하는 대목이 나오거든요 차평일씨가 평역한 책인데, 추천합니다 진짜 웃깁니다 ㅋㅋ

  • 프로필사진
    문경락2010.05.10 16:31

    문학적인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별뜻없이 보기는 했지만...좋은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만 ....그러한 시각을 갖지 못한건지 없는건지는 저자의 마음에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