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청춘] 청춘의 덫 (담가명 감독, 烈火青春 Nomad, 1982)

2008. 2. 23. 10:17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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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가명(譚家明)은 국내 영화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감독이지만 왕가위에게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왜 중요한지를 알 것이다. 대만 新浪潮보다 먼저 홍콩의 뉴 웨이브를 이끈 ‘선구자적인 감독’이다. 그의 1982년도 작품 <열화청춘>은 담가명의 대표작이며 홍콩 뉴웨이브의 출발점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는 네 명의 홍콩 젊은이(장국영, 엽동, 하문석, 탕진업)들이 폭풍 같은 열정의 세월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닭장 같은 집안에서 아귀다툼 펼치는 듯한 ‘먹고 살기 어려운’ 홍콩의 기층 민중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 막 한 꼬맹이가 이웃집 처녀를 임신시켜놓은 일을 두고 두 집안이 ‘책임지라’고 말다툼을 벌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꼬맹이는 짐작하다시피 그렇고 그런 젊은이 邦(탕진업)으로 성장했다. 한편, 홍콩의 부유한 집안의 아들 장국영(루이스) 집에 사촌누이가 캐시(하문석)가 들어온다. 캐시는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일본인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 남자는 알고 보니 적군파 대원. 한편 탕진업은 캐시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게 되고, 장국영은 디스코텍에서 토마토(엽동)를 알게 된다. 이제부터 이들 젊은이들의 열정적 청춘의 한 때가 펼쳐진다.

캐시가 일본에서 있을 때 사귀던 남자가 홍콩으로 도망 온다. 그는 이념을 버리고 애인을 찾아온 것. 하지만 적군파에서는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킬러를 보낸 상태이다. 네 명의 청춘은 이 ‘배신한 적군파’를 숨겨준다. 네 명의 청춘은 한가롭고 평화로운 섬으로 들어가고, 그 일본인을 요트 ‘노매드’ 호에 숨겨준다. 이들은 노매드호를 타고 아라비아로 가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날아온 킬러는 여자 자객이었다. 킬러는 사무라이 칼을 휘두르며 백사장을 피로 물들인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니 이 영화가 다소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초 홍콩 젊은이들의 방황은 짐작할 수 있다.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 단지 경제적 성장-부(富)만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에 그들이 느꼈을 정신적 황폐감을 짐작이 간다. 그리고 쏟아지는 외세(그게 자본이든, 이데올로기든)는 ‘적군파’처럼 황당한 극단주의의 모습이다. 일본 적군파가 나타나서 홍콩 청춘을 난자한다는 설정에 대해 일본관객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홍콩인들이 갖고 있던 일본 ‘적군파’에 대한 몰이해, 나아가 일본문화에 대한 악의적 시각이라는 평가이다. 이것은 이문화(異文化)에 대한 인식의 한계인 셈. 아마 1970년 일본 동경 자위대건물에서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며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극우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처음 홍콩에서 상영되었을 때에는 홍콩의 여러 사회단체가 연명으로 영화상영 중지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유는 ‘너무나 암울한 청춘’이나 ‘닛뽄도에 의한 하라키리’ 때문이 아니라, 대담한 섹스씬 때문이었다. 특히 두 번의 섹스 씬은 당시로서는 아주 대담했다고 할 수 있다. 장국영과 엽동의 섹스씬도 그러하지만, 탕진업이 홍콩의 명물 2층 버스 안에서 하문석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꽤나 유명하다.

이 영화는 제2회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신인상(엽동과 하문석)에 올랐지만 상은 받지 못했다. 18년의 세월이 흐른 뒤 홍콩국제영화제 기간동안 홍콩 신낭조(新浪潮)특별프르그램이 있었고 그 때 이 영화가 다시 상영되었다. 이미 오리지널 필름은 훼손되었고 감독 특별판이 상영되었다고 한다. 그후 홍콩 메이아(美亞)에서 VCD와 DVD로 출시되었는데 많은 부분이 삭제된 판본이라고 한다. (최근 <<키노>>(2003년 2월호)를 보니 주성철 기자가 담가명 감독과 인터뷰를 나눈 것이 있다. 최근 <<키노>>에서 건진 최고의 기사이다!!!!!)

담가명 감독은 지난 88년 <살수호접몽>을 끝으로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거주지를 옮긴다. (키노를 보니 지금은 말레이지아에 거주하는 모양이다.) 왕가위는 87년에 담가명 감독을 위해 <최후승리>의 각본을 썼었다. 담가명은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과 <아비정전>의 편집을 도와주었다. 크리스토퍼 도일(두가풍)도 <살수호접몽>에서 담가명 감독과 일했다.

하문석(Patricia Ha)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는데 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시력이 나쁜 그녀가 어느 날 안경 없이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누군가를 자리 친구인줄 알고 손짓을 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영화제작자였다고. 그 일로 하문석은 <열화청춘>에 출연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몇 작품을 하다가 결혼 후 LA로 떠나갔다.

이 영화에는 동성애적 코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탕진업이 장국영의 앳된 얼굴에 갑자기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거나 일본에서 날아온 여자 킬러의 행동이 특히 그러하다. 이런 여러 장면 때문에 이 영화 개봉 당시 담가명 감독은 ‘너무 앞서 나가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아야했다. 장국영이 임신한 엽동의 배에 귀를 대며 좋아하는 모습은 아마도 장국영 팬들이 보아 너무너무 좋아할 장면일 것이다. 장국영 최고의 평화로운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 우울한 것이 있다면… 장국영이 엽동의 편지를 갖고 엽동의 옛 애인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편지에는 “당신이 이제 싫어졌어요. 이 편지를 갖고 가는 사람을 사랑해요.”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 때문에 엽동의 옛 애인은 장국영에게 달려들고 장국영을 그를 피해 ‘건물 밖으로 떨어진다’. 이 뒷 장면부터 장국영은 몸에 기브스를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박재환 20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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