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어머니의 대사 "나는 닭 모가지가 더 맛있더라..." (배창호 감독 情, My Heart 1999)

2019. 7. 30. 13:46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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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어떤 걸까 네모난 것일까, 둥근 것일까. 주는 것일까 아니면 받는 것일까? 뭐 그런 구닥다리 개념이 우선 떠오를 제목의 이 영화는 배창호라는 한 세대의 인기감독이 21세기에 내놓은 뜻밖의 작품이다.

 

배창호 감독은 모 종합상사의 샐러리맨이었다. 그 자신의 말로는 아프리카 모 나라에 선박도 팔아봤던 수출역군이란다. 아마, 그의 초기작품인 <철인들>이란 영화를 기억한다면 그의 전직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시탐탐 충무로 영화계 진출을 노리던 그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날>에서 안성기와 나란히 짜장면 먹는 단역으로 출연하였고, 이내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적도의 꽃> 같은 명작들을 줄줄이 내놓았었다.

 

그러던 그가 몇 편의 흥행부진으로 잊힌 감독 대열에 들어서는가 했었다. 그것은 그의 고집스런 순정주의적 작품세상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줄기차게 한국적 정서를 그렸고, 줄기차게 자신의 제작타입을 고수한 것이다. 그런 그가 부산영화제 PPP<>의 제작지원을 신청하는 등 이런 저런 난관 끝에 힘들게 영화 한편을 완성하였을 때, 그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을 찡하게 만들었었다. '마침내' 그의 신작이 힘들게 극장에서 개봉된 것이다.

 

이 영화는 보편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잊힌 근대적 시간과 공간의 기억에 관한 회상이다. 망둥이 같은 꼬마신랑에게 시집와서 눈물 나는 시집살이를 하게 되는 그런 <여로>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신문물의 유입으로 남편은 대처에서 데리고 온 신식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이 여인은 남편의 행복을 바라며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서게 된다. 여기까지는 이 여인의 매몰찬 운명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순이'는 그러한 사고방식과 그러한 가족관계가 당연시 되던 시절의 희생자였고, 그때부터는 힘든 세파에 직접 맞서 싸우는, 집나가는 '노라'의 신분이 된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간직한 여자가 통속적으로 타락하지 않는 것은 배창호의 문학적인 감수성과 한국적인 정서의 추구에서 찾아낸 결과이다.

 

감독은 '순이'의 험난한 인생을 다루면서도 결코 한 순간도 인간의 정을 배반하거나, 사악함으로 점철된 우리의 단면을 잔인하게 해부하지 않는다. 비록 모진 운명이 그들을 갈라놓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더라도 감독은 여전히 인간의 냄새와 자연의 흙내음을 망각하지 않는다. 삽화같이 지나가는 김명곤과의 꿈같은 이야기도, 아역 출신 윤유선의 놀라운 성장을 볼 수 있는 가슴 찡한 이야기들도 모두 고달팠던 한 여인네의 인생에 있어서는 소중한 기억들일 것이다.

 

관객들은 어느새 훌쩍 나이 들어버린 순이의 여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도시로 대학공부간 '아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저 언덕너머로부터 먼지 날리며 다가올 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아들'을 향한 열정과 사랑은 어느새 관객들에게 그 동안 완벽하게 잊어버린 한국인의 정서를 부활시키고야만다. 그래서 한밤 마루에서 삶은 계란과 사이다, 그리고, 삐콤이라는 소도구가 전달하는 완벽한 의미를 모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닭다리를 두고 어머니가 "나는 요기 모가지가 맛있더라...."할 때의 그러한 상투적인 대사가 너무나 눈물겹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마, 그런 시절, 그런 기억, 그런 어머니가 아직도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것이리라.

 

배창호 감독의 <>은 오늘날 그렇게 많고 많은 특수효과와 디지털의 낭비 속에서 건져 올린 너무나 소중한 구닥다리 보석인 것이다. 이 영화는 '디지털화 해버린' 신세대 영화팬들이 보기보다는 아직도 ''을 안고 사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인생의 선배에게 권할만한 영화이다. 배창호는 또 얼마나 고생해야 다음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박재환 2000/6/18)

 

감독:배창호 출연: 김유미 김명곤 윤유선 남정희 김승수 개봉:20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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