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아침에 <<필름2.0>>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조은령 감독이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는 기사입니다. 서른 한살이라는 정말 젊은 나이랍니다. 명복을 빕니다. 이전에 쓴 조은령 감독님의 <스케이트>리뷰.
(**1998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먼저 줄거리부터 소개한다. 보영이는 어느날 얼음을 지치려 빙판으로 간다. 원래 같이 가기로 한 친구 경희는 "울 엄마가 못 가게 하는데 어떡해. 공부하래..." 그래서 보영이는 혼자 얼어붙은 강물에서 스케이팅 한다. 혼자 하니 재미없지. 그래서. 소녀는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갈까 하는데 한 소년을 발견한다. 소녀는 놀래서 뒤로 넘어지고, 소년이 다가와서 일으켜 세우려 한다. 보영이가 순간 당황하고 경계의 눈빛을 보이는 것은 당연. 소년은 갑자기 하얀 눈이 덮인 땅바닥에 "너 이름이 뭐니?"라고 쓰는 게 아닌가? 이때 동네 아이가 찬 축구공이 소년에게로 굴려오고, 소년은 그 공을 주워 아이에게 건네주면서 (정말 무슨 말인지 알수 없는) 소리를 건넨다. 보영이는 순간 두려워서 집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보영이가 경희랑 라면을 끓이며, "김치가 너무 시다"면서 밥을 먹는다. 경희가 "우리 샛강에 놀려가자". 그러지만, 보영이는 웬지 가기 싫어한다.(그 소년을 또 만날까...) "그냥 집에 있자..응" 그러면서 보영이는 혼자 소년이 있었던 그 곳으로 가 본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고, 큰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소녀는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끝.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단편 영화이다. 내용을 더욱 압축하여 표현하자면, "소녀, 소년을 만나다" 이다. 조용하기로는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만큼이나 고요하다.
대사도 거의 없고, 등장인물간의 어떤 사건도 거의 없는 이 영화를 가장 신비롭게 이끄는, 그리고 유일한 사건은 소년과 소녀의 만남이다. 딱 한번 만났고, 둘 사이에는 그 어떠한 물리적 만남도 없었다. 단지, 남자의 호의와 여자의 경계만이 존재하였고, 소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게 다이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은 관객도 알 수 없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러한 작은 기억마저 언제까지 지니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담담함. 그 순간의 아쉬움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것이 여자감독이 잡아낼 수 있는 델리킷한 매력이리다.
희경이가 "너 혼자 가!" 하고는 문을 쾅 닫을 때. 그리고, 다음 장면 스케이트장을 천천히 비추어줄 때의 카메라워킹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일번 극영화보다 더욱더 광활하고,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일반 단편과는 느낌이 다른 포근함과 넓음을 동시에 주는 것이다. 하얀 겨울, 바람 부는 들판에서 소녀와 소년은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둘은 각자 소중한 한때를 기억하며,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인생을 더욱 포근하게 살아갈 것이다. (박재환 1998/11/18)
스케이트 (2002) 감독: 조은령 출연: 양윤미(보영), 김현정(경희), 정흥규(소년), 김영호(큰아버지)
[2019.7.29.] 인터넷에 고 조은령 감독님을 추모하는 사이트가 있다. 감독님의 작품들이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다. 다시 한 번 명복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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