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전쟁]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조병옥 감독 2012)

2019. 8. 3. 18:05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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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 왕가위 감독의 감독 데뷔작 <열혈남아>(1988)가 떠오른다. 이른바 홍콩느와르 영화 가운데 가장 단순하게 건달들의 삶의 방식을 감성적으로 풀어나갔던 영화이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말이다. 물론 그 영화 이전에도, 이후에도 홍콩과 한국에서는 수많은 건달영화가 만들어졌다. 때로는 너무나 잔인하게, 때로는 겉멋만 넘쳐나게 과장하여서 말이다. 거의 25년의 세월이 지난 뒤 ‘왕가위 열혈남아’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을 건달영화가 하나 탄생했다. 물론 한국적 정서가 넘쳐난다. 한국의 도심지 야밤에 나이트클럽 영업권을 둘러싼 ‘싸시미 전쟁’은 아니다. 어느 시골동네 다방 앞에서의 펼쳐지는 대낮의 ‘가오 잡기’전쟁이다.   

터미널 앞 다방 풍경   

다방, 그것도 읍내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 다방은 특별한 이미지를 준다. 버스를 타는 뜨내기보다는 그 일대를 주름잡는 마을건달들의 아지트로 기능한다. 다방의 마담도, 커피 보온병을 보자기에 사서 오토바이를 타고 영업 나가는 아가씨 모두에게 말이다. 이 정도 마을에 이 정도 다방이라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건달 보스가 있기 마련이다. 형님 세일이 자리를 비운 동안 상근(김무열 분)이가 이 다방을 근거지 삼아 건달세계의 큰형 노릇을 한다. 하지만 세일(서동갑 분)이 다시 돌아오면서 역학구조는 바뀐다. 상근은 기억조차 하기 싫지만 세일에게 ‘빠따’로 얻어맞으면서 커왔다. 또 다시 세일 형님 밑에 들어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세일형님이 없는 동안 동생들도 잘 거두었고 동생들도 인간적으로 세일보다는 상근이가 보스도 있는 게 좋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일 형님이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 ‘빠따’도 무섭고, 카리스마도 겁난다. 그리고 데리고 온 정체불명의 ‘어깨’도 두렵다. 이런 상황에서 상근이 형님이 한번 나서서 뒤집어주면 뒤를 따를 의사는 있는데....   


빳따의 추억   

<개들의 전쟁>에서 보여주는 힘의 우위는 전형적인 한국남성사회의 축소판이다. 1960년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시대에도 그랬고, 70년대 군대사회도 그러했으며 80년대 이후 조폭들도 그렇게 자신들의 조직을 추스르고 유지해왔다. 자칫 힘의 공백이 생기면 어디선가 발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놈이 있다. 그 싸움에서 밀린 자는 쓸쓸하게 뒤안길로 사라진다. 조직의 크기나 수준에 따라 폭력성이나 룰이 다르겠지만 결국 행태는 비슷하다. 보스는 가부장적 권위와 건달로서의 한 ‘씨마이’가 있다. 그리고 쓰레기 건달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과 욕설, 그리고 적절한 회유책이 사용된다. 그런 면에서 상근이 결코 1인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폭력도, 욕설도, 회유책도 그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을 정도에 머물기 때문이다. 의리랍시고 대신 맞아주고, 용돈 안겨준다고 쿠데타에 나설 인간적 건달은 없다. 건달세계의 용기와 인격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빳따 들고 있는’ 보스 앞에서는 말이다.

개들의 전쟁의 매력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읍내 수준에 어울리는 건달들의 애절한 삶의 방식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동네건달이랍시고 몰려다니며 하는 작태는 서울의 강력계 형사가 보면 귀여울 정도이다. 일종의 ‘강압적 방식의 채권추심’이라는 일감을 ‘얻었지만’ 그 일처리 방식을 보면 한심할 정도이다. 그러니 1인자 세일 형님이 돌아왔을 때 이들이 우왕좌왕하며 ‘멘붕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 힘센 자가 왔을 때 무릎 꿇고 비굴하게 살아남는 길을 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는 인적 드문 곳에서 애꿎은 개만 닦달한다. 한국적 건달의 특성은 그렇게 내일 죽어도 지금은 폼생폼사 허망한 우리만의 약속을 남발하는 것이다. 물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이들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수모를 당할지는 지켜볼 대목. 그런데 홍콩느와르 조폭영화와의 차별점은 순정드라마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주인공 상근(김무열)의 순정이 아니라 그들 패거리의 2인자 충모(진선규)의 순애보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확실히 조폭드라마이다. 호기롭게 반항을 시작하고 몽둥이를 들었지만 마지막 한방의 처리에서 주저댈 뿐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논두렁에 나란히 선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마냥 희희덕댄다. 이들은 결코 전국구 주먹이 될 수 없는 시골 동네, 양아치들인 것이다. 순정을 품은. 요즘에도 이런 건달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박재환 2012.11.21.)   

감독: 조병옥  출연: 김무열, 진선규, 서동갑, 김현정, 조민호, 탁트인, 김대명, 고한민 개봉: 2012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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