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7 박재환) 드라마 ‘대조영’과 ‘연개소문’ 등을 통해 당 태종 이세민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국 역사인물이다. 그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몰려온다. 고구려 북방의 성들을 차례로 공략하고 평양성을 치기 위한 길목에 위치한 안시성을 공격한다. 그런데 이곳 성주(城主)의 방어력이 만만찮다. 이세민은 엄청난 군사와 전략을 동원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게다가 안시성에서 날아온 화살에 한 쪽 눈까지 다치고 결국 패퇴한다. 안시성은 그렇게 지켜졌고, 고구려는 그렇게 수호되었고, 안시성은 그렇게 기록된다.
물론, 1500년 전 이야기이다 보니 논란이 많다. 당시 기록이나 유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당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란 것도 한참 지난 뒤 갑자기 등장한 ‘이야기’이다. 드라마 방송이후 당 태종(이세민)이 한쪽 눈을 잃었다는 것은 지나친 역사왜곡이라고 중국 네티즌이 발끈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마치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8번 오르고, 전국을 3번 돌았다는 식의 ‘의미확대’ 창작에 가깝다.
어쨌든 변변찮은 사서도 없고 고증하기도 마땅찮은, 그러나 분명히 전해야할 역사적 승리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안시성’은 작품의 완성도나 만족도를 떠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할 ‘고구려의 역사’와 ‘고구려 사람’의 민족성을 알아야하고 배워야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유오성)이 왕을 죽이고 대막리지가 되어 전권을 잡는다.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은 연개소문을 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한다. 엄청난 군사력과 수많은 전쟁에서 단련된 그들이었기에 평양은 쉽게 점령할 줄 알았는데, 아뿔싸 안시성에서 막혀버린 것이다. 비교도 안 될 적은 수의 고구려가 압도적 당나라 군대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영화 ‘안시성’이 흥미로운 것은 우선 당시의 전투양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로이’에서 보여준 탁 트인 들판에서 수십만 대군이 격돌하는 모습은 어쩌면 상상의 모습일 것이다. 아마도 ‘반지의 제왕’같은 몹신과 말들의 근육, 기병의 장렬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과도한 CG가 확실한 벌판에서의 기병과 보병의 대결에 이어 공성전(攻城戰)이 시작된다. 공격하는 쪽과 막는 쪽은 죽음을 불사하며, 모든 자원을 동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정약용이 참전한 것 같은) 다양한 공격무기와 방어무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 ‘트로이’와 ‘반지의 제왕’과 함께 장예모의 ‘그레이트 월’이 생각난다. 장예모 영화를 볼 때는 중국영화란 게 으레 ‘과장과 허풍, 뻥의 영상미학’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게 한국영화에 이입되니 영화적 재미, 상상력의 공간으로 치환된다. 저 멀리 북쪽 접경지역, 격오지의 성 하나를 둘러싼 전쟁이 상상을 넘어서는 전역(戰域)이 된다.
영화 <안시성>은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애민애족과 불굴의 정신이 넘쳐난다. 그의 부하와 성의 백성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끝까지 믿고 운명을 같이 한다. 또 다른 임무를 부여받고 성에 들어온 남주혁은 ‘전장의 현장’에서 전우애와 민족애,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에 감동받게 된다.
영화는 재미있다. 안시성 사람들의 위대한 정신력과 함께 적국 당나라를 비열하거나, 악당으로만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안시성’은 양만춘, 당 태종, 그리고 연개소문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역사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며 ‘잊힌 공간’에서 펼쳐진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정벌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는 연개소문이 왕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의 책봉/조공체계가 공고히 성립될 무렵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위협으로 떠오른 고구려를 저지해야할 것이다. 당과 우호관계인 신라를 위협할 터이니.
이런 영화를 보면 단순히 ‘국뽕’에 취하지 말고, 역사책을 좀 찾아봐야할 듯하다. 우리나라 해군 순양함 이름에도 쓰인 ‘양만춘’에 대해 더 연구하고, 당 태종의 눈(독안)을 언제까지 이렇게 묘사할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할 때인 것 같다.
이런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다면, 분명 그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글로, 전설로, 전해질 것이다. 중국 쪽에서는 연개소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세민은 안시성에서 패퇴한다. 민가(우물)에 숨어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경극에는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는데 칼을 다섯 개나 찬 무서운 존재로 등장한다.
연개소문의 이름과 관련하여 하나 더 소개하자면, 중국(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에서는 왕뿐만 아니라 웃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당 태종 이세민의 아버지 고조의 이름이 이연(李淵)이었다. 그래서 연개소문은 중국사서에서는 ‘연’(淵)을 피해(諱), '천‘(泉)을 써서 ’천개소문‘이라고 표기한 것이 많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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