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유키히메] ‘킬 빌’의 원형 일본영화 (후지타 토시야 감독 修羅雪姫, Lady Snowblood ,1973)

2019. 7. 30. 09:19일본영화리뷰

(박재환 2004/6/7)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샵에서 한동안 했다고 한다. 얼마나 큰 비디오 가게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일했는지 모르겠지만 타란티노 감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비디오를 섭렵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에 본 영화들에서 신나는 엑기스만 긁어모아 아시아 액션영화의 종합선물세트랄 수 있는 [킬 빌]을 만들었다. [킬 빌]이 인기를 끌자 타란티노가 [킬 빌]에서 인용한(패러디한, 오마쥬한) 영화들이 하나 둘씩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킬 빌1]에서 흰색 스트라이프의 노란색 츄리닝을 입은 복수의 화신 우마 서먼은 확실히 이소룡의 [사망유희]에서 따온 캐릭터이다. 그런데 [킬 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는 아마도 1973년도 일본 영화 [수라설희]일 것 같다. 타란티노가 언제 어떻게 이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킬 빌]의 숨결이 느껴진다. 특히 [킬 빌]에는 1973년 [수라설희]의 여주인공 카지 메이코(梶芽衣子)가 직접 부른 ‘수라의 꽃'(修羅の花)’이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대단한 기억력에 대단한 애정 아닌가. 

영화는 눈이 펑펑 내리던 1874년(메이지 7년)의 동경의 한 감옥에서 시작된다. 감옥에서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있다. 눈과 함께 태어난 이 아이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수라설희'(修羅雪姫)가 된다. 생모는 죽어가면서 갓난아이에게 “넌 복수를 위해 태어난 아이야.”라고 말하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바로 그 전 해, 한 시골마을에 새로 신식교육을 받았을 선생이 부임해 온다. 아내(사요)와 어린 아들. 세 명이 들판을 지나갈 때 불한당 네 명이 나타나 이들의 길을 막아선다. 그들은 선생님과 꼬마를 잔인하게 죽이고 ‘사요’를 윤간한다. 사요는 나중에 이들 중 한 놈을 죽이지만 결국 감옥에 간 것이다. 감옥에서 원통하게 죽어가면서 갓 태어난 딸아이에게 가족의 복수를 남겨준 것이다. 이후 유키는 도해(道海)스님 밑에서 칼쓰기와 무술을 익히고 복수의 길에 나선다. 유키는 전광석화 같은 칼 솜씨로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이 일에 흥미를 느낀 한 남자가 유키의 복수극을 소설로 써서 인기를 끈다. 그렇게 되자 나머지 악당들이 대책을 세운다. 결국 유키는 부정행위로 큰돈을 벌어 중앙 정계에까지 진출한 원수를 찾아내어 가면 무도회장을 피로 물들이며 최후의 복수극을 펼친다. 하지만 자신도 칼에 맞아 상처를 입은 채 눈밭을 걸어나오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서 다가온 여자의 칼을 맞는다. 자기가 죽인 악당 ‘반조’의 딸이었다. 오래된 복수가 새로운 복수를 낳은 셈이다. 


원래 [수라설희]는 1970년대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끈 코이케 카즈오(小池一夫)와 카미무라 카즈오(上村一夫)의 동명만화(슈라유키히메: 修羅雪姬)를 영화화한 것이다. 얼굴에 밀가루를 분칠한 것 같은 창백한, 가냘픈 몸매의 카지 메이코가 기모노 의상을 입고 눈 내린 숲길을 하늘하늘 걸어가며 복수의 칼날을 뽑는 것이 무척 이국적으로 보인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홍콩식 무협물이나 일본식 사무라이 극과도 많이 다르다. 

[킬 빌]의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많은 것을 빌려왔다.. 챕터를 나눠 각 장마다 소제목을 단 것도 이 영화의 전개방식에서 따온 것이다.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여인네의 운명도 결국 같다. 그리고 그 가족의 복수는 또 다른 비극과 복수의 씨앗을 남기게 된다는 것도 유사하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유신 초기, 일본이 급격히 근대화 사회로 넘어갈 때이다. 전근대적 살인과 혼란, 복수극이 질서를 잡아가는 시대적 상황에서는 많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왔던 [용서받지 못할 자]에서처럼 ‘정의와 복수의 마당’에 글쟁이들이 먹고 사는 방법의 하나로 글을 쓴다는 것이 결국 ‘칼질하고 피갑칠한 영화로 돈 벌어먹는 현재의 시나리오쟁이랑 별반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결국, 대중의 기호에 맞추는 셈 아닌가. 

2001년도에 같은 원작 망가를 미래파 SF로 바꾼 사토 신스케 감독의 [프린세스 블레이드]라는 작품도 있으니 혼돈 마시길. (박재환 2004.6.7) 

[수라설희|修羅雪姫, Lady Snowblood ,1973] 감독: 후지타 토시야(藤田敏八) 출연: 카지 메이코,니시무라 코, 쿠로사와 토시오 원작만화: 코이케 카즈오(小池一夫), 카미무라 카즈오(上村一夫)

 

修羅雪姫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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