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사이코 - 물질만능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탈출구 (울산대학보 원고)
2011. 6. 7. 11:04ㆍ미국영화리뷰
두번째: 물질만능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탈출구 <아메리칸 사이코>
1980년대 레이건 시대 미국 여피(Yuppie)사회를 다룬 <아메리칸 사이코>(2000)는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논쟁적인 원작소설을 여성감독 메리 헤론이 영화로 옮긴 것이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금융관련 종사자의 극단적 삶의 행태를 담고 있다.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은 맨하턴의 최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온몸을 각종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만 이용하는 잘 나가는 금융맨이다. 그러나 동료들은 살벌한 경쟁자이며 겉으로 드러난 삶은 가식에 가까울 뿐이다. 그들의 지독한 업무 스트레스는 희대의 연쇄살인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그가 저지른 모든 살인행위가 실제 일어난 현실인지 아니면 그의 마음 속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월스트리트 종사자의 정신 상태는 현실과 환각 속을 오갈 뿐이다.
원작소설은 정식출간 전부터 이미 논쟁의 중심에 썼다. 주인공이 펼치는 엽기적 폭력과 살인 등에 대한 과도한 묘사 때문이었다. 소설 속 묘사는 너무나 세세하고 충격적이어서 출판사가 손을 들 정도였다. 감독은 소설의 공격성과 끔찍함을 톤다운 시키는 동시에 소설이 담고자한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1980년대 고도성장의 최고정점에 선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맨을 통해 이기주의와 물질만능 시대의 정신적 황폐감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하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작품 속에서 그들의 일 자체는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단지 누구는 무슨 옷을 입고, 누구는 어디서 밥을 먹고, 누구는 어떤 새로운 명함을 만들었는가가 이들의 주요관심사이다. 베이트만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맹비난하면서도 바로 다음 순간에는 세탁소에서 자신의 와이셔츠를 망쳐놓은 아시아계 세탁소 주인에게 극단적 인종차별발언을 쏟아놓는다. 똑같이 미국 경제가 부랑자를 양산했다면서 동정의 발언을 하고 나서도 그 날 밤에는 거리의 홈리스를 무자비하게 난자한다. 그의 살인은 통제 불능의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는 공권력에 대한 총질에까지 이어진다. 아파트 룸, 냉장고 안은 끔직한 시신으로 가득 차지만 혼돈만 가중시킨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휴 루이스 앤 뉴스’나 ‘제네시스’ 시절의 필 콜린스 등 팝 명곡에 대해 끝없는 예찬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수제 명품 명함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마치 겉과 속이 다르고, 이상과 현실이 다른, 대상에 대한 극단적 인식의 무의식적 표출이다. 동료는 경쟁자이고 고객은 적이 되어가는 극단적 물질만능시대의 외롭고 힘없는 현대인의 정신적 현실도피방식일 것이다. 하루 수억 달러를 굴리는 금융맨들, 한 번에 수십억 달러의 M&A를 성사시키는 그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이상일 것이다. 극한의 돈놀이와 극도의 투자방식은 삶의 양상과 생각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바꿔 놓는다. 미국의 부, 자본화의 급진전은 인성을 이렇게 마비시키며 판단을 혼돈시키는 것이다. (박재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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