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칸] 조하르 사룩칸 이스 나트 테허리스뜨!

2011. 4. 7. 13:53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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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도 영화 한편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카란 조하르 감독의 <내 이름은 칸>이란 작품이다. 한해에 영화가 500편 이상 만들어진다는 영화대국 ‘볼리우드’ 인도에서 작년 최고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주인공은 인도에선 ‘장동건+이병헌’급 인기를 받고 있다는 사룩 칸이다. 한국에서의 인도영화는 극소수의 매니아들만 찾아보는 이국적 취향의 대상이다. 아마 <춤추는 무뚜>를 대한민국 극장에서 본 영화팬이라면 인도영화 특유의 발랄, 쾌활, 유쾌함을 알 것이다.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그 안에서 진정한 환락을 즐기는 민족이다. 그런 나라에서 만든 <내 이름은 칸>은 조금 다른 영화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무슬림에 쏟아지는 서구인의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무하마드, 압둘라, 후세인이란 이름은 오사마 빈 라덴의 친척이며, 히잡 두른 여자는 잠재적 무슬림 테러리스트일 것이다’라는 서구인의 단순한 인식에 대한 <포레스트 검프>식 순진한 자기해명을 하는 영화이다.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을 꼭 만나야 하는 인도 무슬림 리즈완 칸

리즈완 칸은 인도의 빈민가 출생 무슬림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 같은)을 앓는 소년은 가족의 따뜻하고 꾸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인도는 이웃나라 파키스탄과는 국경충돌을 빚었고 내부적으로는 종교적 인종적 분쟁도 치르고 있는 나라이다. 가난과 테러, 폭력이 횡행하는 나라에 사는 자폐증 소년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나마 착하게 잘 자란다. 성인이 된 사룩 칸은 이제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을 찾아 먼 이국 땅을 찾는다. 기회의 땅, 자유의 왕국 미국으로. 미국은 자폐증 무슬림청년 리즈완 칸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곳에서 사랑스런 힌두교 여인 만디라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된다. 인종차별도, 자폐증에 대한 불편도 없는 너무나 좋은 나라 미국. 단, 2001년 9월 11일 이전의 미국의 삶이다. 비행기가 뉴욕의 빌딩을 들이받은 뒤 미국에서의 무슬림의 삶은 이전과 똑 같은 수가 없다. 리즈완 칸은 무슬림, 만디라는 힌두인이다. 하지만 미국사람에겐 백인과 흑인 말고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리스트 무슬림밖엔 없다. 어제까지 친절했던 이웃들은 칸의 가족에 대해 원한과 증오의 눈길을 보낸다. 아들이 미국의 애국 청소년들에게 맞아죽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행복했던 가족은 그날로 종말을 맞는다. 아내 만디라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당신 이름 때문에 우리 애가 죽은 거예요”라며. “당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백날 떠들어도 누가 믿어주나요. 미국 대통령에게 가서 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해 봐요.”라고 소리친다. 착하고 순진한 자폐증환자 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는 단 하나의 목표가 생긴다.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서 자기는 칸이며, 자기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말을 꼭 해야 한다는. 이 눈물겨운 스토리를 <<뉴욕 타임즈>>가 기사화해줄까, CNN이 자료화면으로 보여줄까, 아니면 오바마 진영이(대선기간이다!) 이벤트로나마 만나줄까.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이 ‘미국’이라는 것이다.

감동할 수밖에 없는 포맷

영화는 굉장히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폐증환자의 인간승리는 <포레스트 검프>와 <레인맨>에 연결된다. 그리고 911과 아프가니스탄에 이어지던 서구인들의 반(反) 중동정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이성적 반성과 새로운 시각교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 저 멀리 인도에서 미국인의 양심과 태도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 초반에 관객들은 단단히 잘못된 미국의 테러공포주의를 목격하게 된다. 공항 검색대에서 칸이 생김새와 행색, 그리고 이름 때문에 당하는 소동이다. 물론, 이제는 웬만한 국제공항에선 승객들이 차분히 신발까지 벗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다 풀어헤치는 입국절차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미국의 최첨단 테러리스트 분류시스템에는 입출국과 관련하여 수많은 요주의인물 리스트가 있단다. ‘칸(KHAN)’도 그 중에 하나이다. 실제 이 영화 주인공 ‘사룩 칸’이 영화홍보를 위해 미국을 찾았을 때 ‘칸'이라는 이름이 검색 모니터에 나오자 영화배우 ’칸‘은 특별 몸수색을 받아야했단다. 이런 아이러니가!

문제는 무엇인가

최근 미국의 한 목사(테리 존스)가 코란경을 불태우는 종교적 퍼포먼스를 펼쳤고, 눈 깜짝할 사이 지구 반대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서구인(유엔사무소 근무요원)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 벌어졌다. 편협한 세계관과 광신적 종교관이 얼마나 전 지구적 재앙이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이 영화를 보면 칸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진심을 말해주면 전 지구적 재앙이 일거에 해결되는 것 같아 보인다. 부시와는 다른 오바마는 어떤 모습일까. 그날로 바로 국토보안부 장관에게 전화해서는 미국 전체공항에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 무슬림 검문검색을 백인들에 준하는 수준으로 전환하라는 명령이라도 내릴까. 테리 존스 같은 종교인은 또 어떤 자충수 쇼를 펼칠까 걱정된다.

KBS뉴델리 특파원을 지낸 이재강 기자의 <인도, 끓다> 책에는 사룩 칸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사룩 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지난 2009년에 국제천문연맹에 의해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있는 한 분화구가 사룩 칸 분화구라고 명명되었을 정도란다. 이 우주적 스타 사룩 칸은 서남아시아 국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 종목인 크리켓의 명문 구단주이기도 하단다. 2008년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이 파키스탄 출신 테러리스트의 소행이 밝혀지자 인도 전역에서는 이웃나라 파키스탄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 대중의 정서적 거부감 때문에 크리켓 구단마다 파키스탄 출신을 뽑지 않는 분위기가 일었다. 그런데 사룩 칸은 그런 정치적 테러 때문에 애꿎은 파키스탄의 우수선수들을 영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간 큰’ 입장을 밝혔다. <내 이름은 칸>의 인도 개봉이 겹친 시기였고 인도의 극우주의자들은 <내 이름은 칸> 상영관에서 물리적 저지 운동을 펼쳤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역할을 맡았던 사룩 칸이 자기 나라에서 이리저리 찢기고 터진 테러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맘고생한 것이다. 인도는 인도 내부의 난제도 엄청나게 쌓여있고 이웃나라 파키스탄과의 국경/종교 문제도 끓어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인도인마저 미국에선 이름 때문에 오사마의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참 골치 아프겠다.

이 영화를 보고 든 또 하나의 생각은 미국의 얼빠진 테리 존스 목사처럼 <내 이름은 칸>의 주인공 칸도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칸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홍수 피해지역을 찾아 미디어의 조명을 받게 된다. 언론은 그걸 휴머니즘 넘치는 특종이란 개념으로 미국 시청자를 찾아간다. 요즘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무고한 무슬림의 아들이 자유의 땅 미국에서 비이성적 복수주의자에게 맞아죽었어요. 대통령님, 우린 결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라고 트윗을 하면 수많은 리트윗을 이끌어 오바마도 보고, CNN기자도 보고, 어쩌면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오사마 빈 라덴이 보고 “어, 그래요?”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는 미국 극장에서 곧잘 통하는 휴머니즘으로 장식된 911에 대한 ‘나이브’한, 너무나 순진한 해결책인 것이다. (박재환, 2011.4.6)

정보. 국내 상영본은 127분이다. 춤과 노래로 장식된 인도영화치고는 짧다. 그런데 원래 판본은 165분이란다. ‘감동의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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