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2010. 6. 3. 14:47TV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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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 파이널 시즌 끝나고 올리는 리뷰 입니다. 스포일러 같은 건 알아서.. 보세요. *

  미국 ABC 방송을 통해 방송된 인기 미드 <로스트>(Lost)가 마침내 긴 여정을 끝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4년 9월 22일 시즌1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방송된 후 매년 새로운 시즌이 이어졌고 지난 5월 23일 마지막 편이 방송되었다. 한국에서는 그 다음날 바로 자막까지 나돌고 말이다. 길고도 복잡한 미드 <로스트>의 짧고도 간단한 리뷰이다. ^^

운명의 비행기, 섬에 추락하다

 이야기는 시드니에서 LA로 향하던 오세아닉 815편 비행기가 갑자기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추락하면서 일어나는 생존자들의 서바이벌 이야기이다. 324명이 타고 있던 비행기는 동강나서 섬에 흩뿌려진다.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이들은 미스터리로 가득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과 싸움을 펼치게 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오세아닉 추락 생존자들은 모두 71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 한 마리. 이들은 세상과 격리된 채 생존해 간다. 이들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는 모두 각자의 복잡한 사연과 과거가 있다. 이들 등장인물들이 에피소드 하나씩을 꽉 채우고, 서로 연결되다 보면 시즌 하나하나가 모자라더니, 시즌 6이 끝나면서야 그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고 모두의 사연인 풀어서 재정리되며 해원(解寃)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잭 세퍼드(매튜 폭스)는 척추수술분야의 내로라하는 외과의사. 아버지의 후광에 시달리고, 아버지의 사랑에 목 매어하다가 시드니에 온다. 아버지(크리스찬 세퍼드)가 시드니에서 객사했기에 시신을 거두러 온 것이다. 비행기 추락 이후 섬에서는 메디컬 드라마의 히어로로 맹활약한다. 그는 자신에게 과다한 책임감을 지우며 무리를 이끈다. 물론 반감도 있을 수밖에.

케이트 오스틴(에반젤린 릴리)은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계부에게 시달리다 그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결국 시드니에서 체포되어 오세아닉 편으로 압송되다 섬에 떨어진다.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작용인지 그는 섬에서 따듯한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한다. 잭과 제임스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제임스 소이어 포드(제임스 홀로웨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총으로 쏘아죽이고 자신은 권총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산산 조각낸 사기꾼을 찾아 헤매가 섬에 떨어진다. 화려한 언변의 사기꾼이며 쿨한 유머감각의 제임스는 케이트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지지만, 시즌을 늘어나고 시간을 흘러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부대끼게 된다.

존 로크(테리 오퀸)는 <로스트>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다. 자신의 신장까지 떼어 아버지에게 주었지만 버림받고, 건물에서 던져져서는 하반신 불수가 된다. 자포자기 상태에 휠체어를 타고 시드니까지 왔다가 섬에 떨어진다. 그런데 그 섬이 그에게 기적을 가져다준다. 그가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존 로크는 잭 세퍼드와 대결 구도를 이루며 섬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그렇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시즌 다 가서야 그의 정체, 혹은 그를 대신한 정체를 알 수 있다.

 <로스트>는 방대한 출연인물이 복잡한 드라마를 엮어간다.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군인으로 고문에 참여했던 사이드 자라 (네드 엔드류), 로또에 거액이 당첨되었지만 불행과 비극이 이어지더니 결국 비행기 추락사고로 섬까지 온 휴고 헐리 레예스 (조지 가르시아), 한때는 인기 록 가수였고 지금은 마약에 빠져 사는 찰리 페이스(도미닉 모나한), 이복남매로 위험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 분 컬리(이안 서머헬더)와 새넌 러더포드 (매기 그레이스), 그리고 권선화(김윤진)와 권진수(대니얼 대 킴)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사람과 관련된 폭넓은 드라마를 만든다.

아더스, 그 섬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이 섬에는 굉장한 에너지 원(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에너지는 시간을 돌려놓고, 물리적인 공간을 이동시킬 수 있을 만큼 판타스틱한 권능을 보여준다. 그 섬에는 그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특별한 존재가 있다. 오세아닉 추락 훨씬 이전부터 말이다. 그 에너지원을 보호하는 책임자는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누구 한 사람 이 섬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벤자민 라이너스(마이클 에멀슨)도 어린 시절에 섬에 온 뒤 ‘디 아더스’의 리더가 된다. 그는 오세아닉 추락생존자들에게 위협을 가하지만 그 자신도 또 다른 존재로부터 위협을 당하게 된다. 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두고 전쟁을 펼친다. 섬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사건의 주제자는 제이콥이다. 제이콥은 에너지원을 수호하는 임명을 지녔다. 그는 오래 전 동생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 섬을 지키는 것이다. 죽기 전에는 -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오세아닉의 많은 생존자들이 그 후계자, 즉 제이콥의 후보들이다.

로스트, 드라마의 정체

 미드 <로스트>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게 액션 활극인지, 메디컬 드라마인지, 멜로 드라마인지, SF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볼수록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떡밥/ 낚시질 류의 스토리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즐비하게 포진한다.

로또 넘버: 해치 속에서 [ 4, 8, 15, 16, 23, 42] 여섯 개의 숫자를 매 108분마다 눌려야하다니.

달마 이니셔티브(Dharma Initiative)는 무슨 세계평화를 위한 원시자연회귀를 주장하는 사이비종교집단 같이 비쳐지기도 한다.

결정적이며, 감동적인 장면


드라마 전편을 거쳐 가장 기억에 남는 결정적 장면은 아마도 시즌 4에서 바다 속에서 곧 죽을 운명인 찰리 페이스가 손바닥에 “페니의 배가 아냐”라고 써서 보여주는 장면. 데스몬드는 혼란에 빠지고, 시청자들도 다음 시즌을 꼬박 기다려야했다.



난관과 절망 속에서 사랑은 싹트는 법. 소이어가 줄리엣을 사랑하게 되지만, 줄리엣은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이어의 잡은 손을 놓고 말이다. 그리곤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시청자는 다음 시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손을 꼭 잡고 영원을 약속하면서도 그 약속이 마지막 이별이 되는 것은 우리의 선과 진 커플이다. 둘은 침몰하는 잠수함 속에서 손을 꼭 잡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드라마가 너무 길어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로스트>는 잘 짜인 구성을 갖고 있다. 각 에피소드별 제목 짓기도 꽤나 상징적이며, 중요하다. 그냥 옮겨놓으면 밋밋하지만 말이다. 첫 시즌 첫 번째 에피소드와 마지막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 잭 세퍼드가 눈을 뜨는 것과 눈을 감는 것은 이 드라마의 영원한 미스터리를 상징한다.



로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사후)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죽고 나서는 1주일동안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limbo)에 머물게 된단다. 이곳에서 그들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한 가지 마지막 절차를 밟게 된다. 첫 사흘 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해내고, 찾아내고, 선택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또 이틀 동안 그 기억을 재생하여 영상에 담는다. 마지막 날 시사실에서 그 재현도니 영상물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속에 모든 기억을 잊고서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란다. (▶박재환 리뷰 [원더풀 라이프] 행복을 기억하세요 )

<로스트>를 다룬 인터넷 사이트를 찾다보면 등장인물 목록을 쉽게 볼 수 있다. 각기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분류한다. [오세아닉 생존자], [아더스 멤버], [위드모어 사람들] 식으로. 그런데 산사람과 죽은 사람으로 나눈 것도 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소통을 다룬다. 죽어서도 산 사람을 잊지 못하는 애틋한 사랑, 산 사람 또한 죽은 사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한다. 그래서, 섬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특이한 존재란 것은 그 사람의 환영일 수도 있고, 너무나 보고 싶은 상대의 현현(顯現)일 수도 있다. 죽은 사람은 너무나 괴로워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을 함께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limbo인 듯, 천국인 듯 믿고 행동할 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장면은 결정적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이 드라마 마지막 에피소드는 오세아닉의 주요 멤버들이 LA의 한 교회당에 모인다. 잭 세퍼드는 아버지 크리스천 세퍼드와 마주친다. 잭은 아버지가 시드니에서 이미 죽었음을 안다. 하지만, 여러 번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왔고,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잭: 아버지는 죽었잖아요
아버지: 그래 죽었지.
잭: 그런데 어찌 여기에 있죠?
아버지: 그럼, 넌 어떻게 여기에 있지?
(잭은 자신도 이미 죽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다)

잭: 나도 죽은 거군요.
아버지: 괜찮아. 아들아

잭: 아버지는 진짜에요?
아버지: 그래 진짜야. 나도, 너도. 여태 일어난 일도 진짜고 여기 모인 사람도 모두 진짜야.
잭: 그럼 여기 있는 사람도 모두 죽은 사람들인가요?
아버지: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단다. 몇몇은 너보다 일찍, 또 다른 몇몇은 너보다 훨씬 나중에..
잭: 그런데 왜 다들 여기에 있죠?
아버지: 여기엔 '지금'은 없어
잭: 여기가 어디죠?
아버지: 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서로서로를 찾을 수 있는 곳이란다.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이 사람들과 보냈던 시간이란다. 그래서 모두 여기에 모인 거야. 그 사람들 모두가 필요하고 그 사람들도 네가 필요하단다.

잭: 왜요?
아버지: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놓아주기 위해서.
잭: 케이트는 우리가 떠날 거라고 했어요.
아버지: 아니야 옮겨가는 거야.
잭: 어디로요?
아버지: 가서 찾아보자꾸나.


로스트, 기억을 공유하는 죽은 자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했고 영국의 정치사상가 존 로크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말했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래 (고대 그리스) 표현 ‘polis'라는 것도 오늘날의 ’정치적‘이란 의미보다는 ’사회적‘이라는 의미가 더 크단다. 아마도 <로스트>는 그런 명제에 가장 가까운 드라마일 듯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헤게모니 쟁탈전을 펼치고 정치투쟁을 한다. 리더가 뽑히고 배신자가 생기고 뭐 그런다. 그런 사회를 구성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 소통을 시도한다. 그들이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서 죽었든지, 그들의 영혼은 이어져 있고, 그들의 행동과 결정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기억을 잊고 죽었거나 아니면 죽어서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영혼이 떠돌든지, 아니면 그 영혼이 다시 현현했든지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과 환상과 추억을 재결합하며 이승과 이곳을 아름답게 종결짓는 것이리라. 당연히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 그리고 <원더풀 라이프>를 보시라.  (박재환 2010. 6. 3)



시즌4. 벤자민 라이너스는 '파워'를 위해 딸까지 희생시킨다

시즌5에서 가장 놀란 것. 시간여행!

시즌6. 줄리엣을 다시 만나 기억을 재생한 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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