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스 베티] 나의 꿈, 나의 우상

2008. 12. 21. 18:39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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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스 베티>는 두 개의 꿈을 나란히 따라가는 영화이다. 하나는 캔사스의 촌동네에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성 '베티'를 통해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것이며, 또하나는 이미 나이든 홀애비 킬러가 정열을 찾아가는 여정을 코믹하게 그린다. 베티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마냥 줄곧 캔사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살아가던 존재이다. 그녀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이며 TV드라마 <사랑의 이유(A Reason to Love)>의 닥터 데이빗의 열성팬이다. 그가 그 드라마에 빠져있는 시간 그의 남편은 여비서와 놀아나고 있다. 베티는 점점 그러한 무미건조한 현실을 망각해가고, 남편의 뷰익 LeSabre를 몰고는 이 동네를 뜰 생각뿐인 것이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말이다.
 
  한편, 마약딜러에 고용된 히트 맨(프로페셔널 킬러) 모건 프리먼과 크리스 락 부자는 뷰익에 숨겨진 마약의 행방을 좇아 베티의 뒤를 쫓는다. 전형적인 히트맨으로서의 냉혈성을 지닌 모건 프리먼은 베티의 사진과 베티가 좋아하는 TV드라마에 의해 조금씩 알수 없는 방향으로 그의 삶을 전개시켜나간다.

이 영화는 작년 깐느영화제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할만큼 매력적인 줄거리를 갖고 있다. 아내는 안방에서 녹화해둔 <사랑의 이유>를 보고 있고, 문밖에서는 히트맨에 의해 남편이 머리가죽이 벗겨지고 끝내 총에 맞아 죽는다. 미국에서 R등급받은 이 장면이 우리나라에서는 15세로 통과되며 살아남은 엽기성은 그동안 잔잔하게만 진행되어오던 이 영화의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을 흔들어놓고, 베티의 미래를 알수 없는 골짜기로 밀어넣는다. 마침내 베티는 '정신착란'의 상태에 도달하게되고, 마침내, 그녀 자신은 '데이빗의 약혼녀'라는 망상에 빠져들어 데이빗 라벨를 찾아 캔사스의 집을 나서게되는 것이다.

  영화는 팬덤 신드롬에 빠진 '열성팬' (빠순이?)이 어떻게 자신의 우상을 만나 같이 사진 찍고, 싸인 한장을 얻느냐는 수준이 아니라, 그 우상이 자신의 남자라는 확신을 갖고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것이다. 어떻게? 결국 베티는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이룬다. 물론, 정신착란에 빠졌던 베티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찾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또다른 세상을 맞이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 신데렐라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베티의 뒤를 쫓는 히트맨의 존재는 이 영화를 타란티노의 작품일 것 같은 착각과 <삼인조>를 만들었을 당시의 박찬욱 감독 작품세상을 보는 듯한 재미를 전해준다. 특히 한없이 귀엽기만한 르네 젤위거와는 달리, 모건 프리드먼의 노련한 연기와 어디로 튈지 모를 크리스 락이 연기하는 부자 히트맨 연기는 이 영화를 간간히 눈 감게 만드는 잔혹 씬과 유쾌한 개그씬으로 관객의 주의를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청순한 르네 젤위거의 이야기와 종잡을 수 없는 히트맨의 두 이야기의 교차편집이 영화전체의 재미를 상승시키는 편집의 묘미를 선사한다.

  르네 젤위거는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저와, <미, 마이셀프, 아이린>에서는 짐 캐리와 공연하며 어딘지 설명하기 힘든 매력을 보이더니 이 영화에서는 근래 보기드문 깜찍하고 귀여운 여주인공 역할을 해낸다. 르네는 이 영화로 이번 골든글로버상에서 뮤지컬/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가 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지는 공모극이라면 이 영화는 그러한 명제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영화인 셈이다. 뻔한 드라마구조와 엽기적 씬들은 통통 튀는 배역들의 연기와 너무나 영화적인 대사들과 어울려 영화보는 내내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하니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며 보여주는 TV드라마는 소프 오페라 <사랑의 이유>이다. <ER>처럼 종합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야기인데, 닥터 데이빗의 수술집도를 돕는 간호원 쟈스민이 바로 노랑나비 '이승희'이다. 영화에서 베티가 데이빗에 빠졌듯이, 크리스 락은 '쟈스민'에게 매혹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조연들의 열연도 일품이다. 닥터 데이빗의 그렉 키니어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게이 역으로 나왔던 사람이며, 크리스 락은 미국의 간판 심야TV 잡담프로그램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으로 여전히 거친 입담을 과시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배우는 베티를 이해해주던 캔사스의 신문기자 로이 역의 크리스핀 글로버이다. 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이지만 85년작 <백 투 더 퓨쳐>보다 유명한 것은 없을 듯하다. 그 영화에서 그는 마이클 제이 폭스가 너무너무 실망하던 바보같던 바로 그 '죠지 맥플라이'역을 맡았었다.

  이 영화의 미국배급사인 USA필름은 영화 속 드라마 <사랑의 이유>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마치 <블레어위치>의 그 수많았던 가짜다큐멘타리, 허위 역사자료집, 엉터리 신문기사 들처럼 일종의 'FAKE'를 만들어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 것이다. 그 홈페이지에는 <사랑의 이유> 에피소드 457회분의 줄거리까지 만들어져있다. (박재환 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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