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쿼바디스 도미네

2008. 12. 21. 18:56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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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의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중생의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못 박혀 죽은 크라이스트의 '수난'의 순간을 리얼하게 담은 종교적 영화이다. 아마도 [리셀 웨폰]이나 [브레이브 하트], 혹은 [매드 맥스] 시리즈의 하드 액션 배우 멜 깁슨이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눈길을 보낸 것을 짐작할 것이다. 게다가 그가 무슨 의도에서인지 자막도 넣지 않은 채, 예수가 살았을 당시 사용되었던 '아람어'(아랍어가 아닌!) 대사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아카데미용' 영화 만들기 아니면 치밀한 마케팅 전략 정도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예수를 팔아먹은 '반유대주의적 정서'가 다분히 내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이 영화는 개봉도 못한 채, 개봉되기도 전에 논란의 중심에 우뚝 서고 말았다. 그러나 멜 깁슨은-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자기 돈을 쏟아 부으며 마치 종교적 신념으로 이 영화를 완성시킨다. 멜 깁슨의 집안 내력을 보니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그 뜻을 포기해야 했다고 한다. 11남매 가운데 여섯 째로 태어난 멜 깁슨도 한때 성직을 꿈꾸었지만 [매드 맥스]가 호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스타의 길로 뛰어들고 말았다고 한다. 그 후 거의 대부분의 성공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러하듯이 모범적 가정생활에 대한 희망과 각종 유혹으로부터의 도피라는 방황을 거쳐야했다. 알려지기로는 멜 깁슨은 1991년 성경공부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일단 갖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개봉되니 더욱 성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외신이 날아들면서 이 영화가 사악한 악마의 영화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바로 교황이 극찬했고,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도 감동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세속적 차원에서 종교적 감동까지 기대하게 되는 모양이다.

  나 자신이 신자도 아니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없고 해서 이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서구인의 관점에선 일상적인 문화로 향유되는 기독교적(혹은 천주교적) 이야기의 근원을 알 수가 없다. 신학적인 내용은 더더욱 모를 일이고 말이다.

  영화는 예수가 게세마네(게세마니) 동산에서 애타게 하느님을 부르면서 시작한다. 그는 곧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의 총독에게 넘겨져서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죽게될 것이다. 영화는 그 날 밤과 그 다음 낮에 이르는 12시간의 역사적 순간을 고스란히 담는다. 기독교 문명을 2,000년 간 누린 서구인들에게는 이러한 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할 것이다. 예수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과정에서의 세세한 역사적 사실은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예수의 십자가형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이나, 예수를 못 박아야한다는 사실에 대해 주저하는 당시 빌라도 로마 총독의 이야기는 여태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예수가 손목이 아닌 손바닥에 못이 박힌다는 이야기도 멜 깁슨의 의도적 역사 재해석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토리노의 수의'- 혹은, 토리노의 성의(聖衣)-가 떠올랐다. 북한의 단군 성전에도 나오고,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나오는 단군시조의 초상화는 누가 뭘 보고 그린 것일까? 우리나라 교회마다 있는 십자가의 예수와 그 많은 예수 영화의 주인공의 얼굴의 원천은 누굴 기준으로 했을까? 토리노의 수의는 중세 십자군 전쟁 때 터키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천에서 시작된다. 예수가 못 박혀 죽고 그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천이란다. 그게 누가 언제 어떻게 수습하여 보관했는지 모르지만 세월이 천년이나 흐른 뒤 터키에서 발견되어 이태리의 토리노 성당에 옮겨져 보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1898년에 처음 공개되면서 사진으로 남겨진다. 그런데 아마도 예수를 감싸던 것으로 사료되던, 그렇게 믿어왔던 이 낡은 천은 예수에 대한 믿음에 의해 '십계명의 석판'이나, '노아의 방주'만큼이나 중요한 유물이 되었다. 오래 전 핏자국이 엉겨붙은 낡은 천조각으로만 생각되었던 이 천 조각을 필름에 담았을 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필름의 네거티브판에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후 100년 동안 이 토리노의 수의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검증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가장 과학적인 결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가짜- 아니 정확히는 예수가 죽었을 시절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대해선 조금 허탈한 면이 있지만 그러한 결과와는 상관없이 예수의 수난에 대한 신념의 상징으로 여전히 관심과 기대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토리노 수의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을 첨단 장치로 재생시키면 예수의 한쪽 눈이 심한 상처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크라이스트는 잡히자마자 심한 고문, 형벌을 받는다. 이 영화를 보고 구토를 일으키거나, 기절하거나,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는 바로 그 지독한 채찍질 장면에서일 것이다. 살점이 찢겨나가는 이 장면에서 실제 예수 역의 짐 카비젤의 등짝에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다. 크라이스트가 등장하는 종교영화라는 인식만 없었다면 이 영화는 너무나도 끔찍한 하드고어 스너프 필름 축에 끼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예수에 대한 존경심과 종교적 부흥효과를 충분히 이끌고 있다. 그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이 영화에 대해 "평생의 설교를 영화 한편에 담았다"고까지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릴 적 성탄절을 전후해서 가끔 방영되었던 영화 중에 앤소닌 퀸 주연의 [바라바]란 영화가 있었다. 갑자기 그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도 읽고 싶어진다.

아멘.  (박재환 2004/3/29)



참고사이트
- Shroud of Turin 토리노의 수의 ▷위키피디아 ▷사이트1  ▷사이트2
“예수는 181cm 80k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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