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0.9.1.) 이 영화는 깐느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그 시상식장에서는 영화팬과 영화평론가들의 야유와 조소의 고함소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다른 훌륭한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장인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엉뚱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에는 많은 ‘고급’영화팬들이 2시간 28분의 상영시간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자리를 떠나거나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어제 서울의 오즈극장에서 <프랑스영화제>를 맞아 특별상영했다.
영화는 저 멀리 영국의 해안절벽이 바라다 보이는 프랑스 북부 프랑드르의 조그만 마을 바이유라는 평화로운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강간범’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그림같은 들판 속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는 파라옹(이마뉴엘 쇼떼)이며, 30대의 이 지역 경찰 부서장이다. 그가 막 발견한 시체는 이제 11살인 어린여자애였고, 강간당한 후 발가벗겨진 채 살해당하고는 숲속에 내버려진 상태였다. 이 남자는 이 소녀의 음부를 보고는 속이 메스꺼워진다. 그는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의 이 잔악한 범죄에 대해 치를 뜬다. 그는 울적해지면 온종일 자전거를 타며 땀을 흠뻑 흘린 후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그의 옆집에는 도미노(세브린느 까릴르)라는 여자가 산다. 도미노에겐 스쿨버스 운전사인 조셉이라는 애인이 있다. 이렇게 결코 어리지만은 않은 ‘남, 남, 그리고 여’ 트리오가 기묘한 감정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멍청해 보이고,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경찰 파라옹. 그에게는 부서장이면서 숨겨진 책임감 위에 감춰진 욕망이 내재해 있다. 하지만, 그는 도미노에게 어떤 눈길을 주는 듯하면서도 결코 애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관객들은 몇 해 전 그의 애인과 아이가 죽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라옹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아이의 시체를 본 후 자전거를 타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달리고, 도미노와 조셉의 데이트에 끼기도 한다. 그러한 이상한 어울림을 통해 관객은 줄곧 파라옹의 이상한 심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떤 장면에선 파라옹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도미노와 조셉의 섹스장면을 멀뚱히 지켜보게 되고, 경찰서에 붙잡혀온 피의자를 이상하리만치 포옹한다든가, 성 정체성의 의문을 제기시킨다. 그것은 나중에 돼지우리에서 돼지의 목 부위를 쓰다듬는 그의 지루한 손길에서도 감지된다. 도미노가 어느날 자신의 하부를 다 드러낸 채, “날 만져, 날 가져..”라고 하지만 파라옹은 관객마저 미안한 마음이 들만치 냉정하게 돌아서 버린다.
이 영화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을 연상시킨다. 테렌스 말릭 감독처럼 영화는 순간순간 멈춤에 가까운 느릿한 카메라 워킹을 선사한다. 그래서 주인공 파라옹처럼 사건의 본말에서 뛰쳐나온 심리로의 잠복을 요구한다. 그래서 일상의 단조로움에 내재한 인간본성의 처절함을 ‘느리게’ 뽑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이 의도한 ‘도덕의 질’보다는 정체된 일상의 파괴와 그 속에 내던져진 자아의 욕구를 그린다.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세속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우나기>에 근접하는 영화이다. 그것도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고급스런 이야기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남자의 성욕과 느낌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영화에선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는 살해의 동기, 혹은 유아강간의 이유에 관해서이다. 조셉은 영화 내내 줄곧 애인 도미노와 격정적인 섹스 씬을 보여주었었다. 그래서 관객은 유아강간살해범이 바로 조셉이었다는 의외성에 놀라게 되면서 그 살인의 동기에 대해 몇 가지를 유추해보기 시작한다. 조셉이 몇 차례 보여주는 도미노와의 섹스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에 대해서 관객은 뒤늦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한 성적 접촉만이 이들을 방황이나 심태를 그럴싸하게 알려주는 장치이다.) 그래서 세 명이 바닷가로 놀려갔을 때 도미노가 타이츠한 수영복을 입은 파라옹의 옛 친구인 해안구조대원의 아랫도리를 자꾸 흘깃거렸던 것에 대해 생각해내고, 도미노가 줄곧 파라옹에게 사랑인지 추파인지 모를 시선을 던졌던 것에 대해 그 의미를 분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셉은 그러한 도미노에게서 얻지 못한 성적 욕구불만을 매일 실어 나르는 스쿨버스에 탄 아이에게서 얻고, 그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 소녀를 살해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흉악범은 마치 <애정만세>의 양귀매처럼 그칠 줄 모르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울음은 전혀 뜻밖에 파라옹의 키스로 마무리된다. 관객은 마지막 순간까지 파라옹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며, 이 영화에서 감독이 의도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잠재된 욕구인 것이다. 살해의 의도가 되었든, 불륜의 씨앗이 되었든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침울하게 응결되어버린 욕정인 것이다.
이렇게 영화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휴머니티는 결국 <우나기>에서 선보인 남성의 성적 열등의식의 고급스런 형상화에 머문다.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박재환 2000/9/1)
[휴머니티| L’Humanite,Humanity 1999] 감독: 브루노 뒤몽 (Bruno Dumont) 출연: Emmanuel Schotte, Severine Caneele 1999년 깐느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심사위원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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