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0. 09:36ㆍ미국영화리뷰
★ 스포일러 주의: 영화내용이 상세히 소개됩니다 ★
1964년 미국에서는 두 편의 종말론적 핵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 공군전략사령관이 핵폭탄을 실은 B52를 발진시키면서 미소 강대국의 치킨 게임이 펼쳐진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페일 세이프>에서는 미확인물체가 미국 영공에 나타나고 핵전략폭격기를 출격시키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눈에는 눈’ 비극이 그려진다. 이들 영화는 핵으로 무장한 새로운 전쟁의 확전 과정을 보여준다. 실수든, 오판이든, 장난이든, 착각이든 저쪽으로부터 핵 미사일이 날아온다는 빨간 등이 켜졌을 때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 기술적 안전장치가 있겠지만 이젠 ‘무선방해’나 ‘페이크 정보’까지 고려해야한다. 날아가는 미사일을 자폭시키기도, 전폭기의 회항을 명령하기도 어려운 상황일 경우 미국과 소련은 (그리고 중국, 북한까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스크바가 날아가고, 평양이 사라져도 그들은 가만 있을까? (미국은? 한국은?) 대통령이 NSC를 소집하고 국회 의결을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 10분이면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상황이다. 그 끔찍한 상상력을 2025년 다시 펼친다. 넷플릭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이다.
냉전시대 미소 양국은 궤멸적 핵미사일 레이스를 이어오다가 데탕트를 맞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다시 핵 전력이 기승을 부린다. 작금의 세계정세를 알려주는 간단히 자막이 흐른 뒤 평화로운 미국의 일상이 시작된다. 알래스카의 그릴리 기지의 미군들은 극동 지역에서 미상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탐지한다. 처음에는 북한의 ‘일상적’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곳곳의 탐지시설부터 위험 시그널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백악관 상황실의 올리비아 워커 대위도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사일 궤적은 곧 밝혀진다. 18분 뒤에는 시카고로 떨어지는 것으로. 이제 백악관은, 국방부는, 전략사령부는,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군사/정보기관들이 초비상 상태에 들어간다. 미국의 거대한 사일로에서 신속하게 요격미사일이 발사된다. 모두가 모니터를 지켜보는 가운데 요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제 시카고에 ICBM이 내리꽂힐 시간은 10분도 남지 않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백악관과 국방부, 전략사령부 등 벙커마다 불이 나게 직통전화를 돌리지만 러시아도 중국도 ‘우리는 아니’란다. 이제부터 더 위험한 순간이 다가온다. 몇 분 뒤 시카고가 사라지고 (계산상 1000만 명이 죽는단다) 미국이 혼란에 빠지는 순간, 러시아와 중국의 선택은? 수많은 연습과 시뮬레이션을 거쳤을 군사정보와 판단자료가 쏟아진다. 이미 외교적 고립에 빠진 러시아와 속을 알 수 없는 중국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의 대응은 어마어마한 핵전력을 일시에 쏟아내는 보복/무력시위를 해야 한다고. 그게 자구책일 수 있다고. 초등학교 농구팀에서 자선 이벤트를 펼치던 미국 대통령은 서둘러 농구코트를 벗어나 헬기를 타고 안전지대로 날아가며 고뇌에 찬 결정을 내려야한다. 날아오는 ICBM요격에 실패했고, 몇 분 후에 시카고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고, 이미 전 세계 핵 보유 국가들은 싫든 좋든, 자의든 타의든 자기들의 핵을 날릴지 당할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니.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112분의 러닝타임을 긴장감 하나로 가득 채운다. 영화는 크게 세 개의 단락으로 나뉜다. 마치 <라쇼몽>같은 구조이지만 결국은 같은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알라스카 기지에서 한가하게 감자칩 먹으면서 전 지구적 방어시스템을 모니터링 하던 미군이 일본 위쪽(오오츠크해) 바다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확인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간다. 그 시각 워싱턴의 올리비에 워커 대위(레베카 퍼거슨)는 감기 기운이 있는 아들을 아빠에게 맡기고 직장(백악관 상황실)으로 출근한다. 여느 직장인처럼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백악관의 복잡한 보안/경비 절차를 거쳐 사무실에 들어선다. (상황실에 들어서기 전에 핸드폰을 보관함에 넣는 것까지!) 워커 대위는 이제 백악관 상황실에서 알래스카와 각 벙커에 자리 잡은 최고위급 군사지휘관, 그리고 외부 행사 중인 대통령을 화상으로 연결하며 실시간으로 미사일 궤적을 추적하고, 요격을 지켜보고, 다음 상황을 점검하게 된다. “대통령 연결됐어?” 그리고 두 번째 장은 전략사령부(USSTRATCOM)의 앤서니 브래디 사령관의 시선을 따라간다. “저 미사일이 어디서 발사된 거야?” 요격에 실패했을 때 반격/보복은 어떻게 해야 할지. 북에서 쏜 것이 아닌지 파악해야한다. 북한이 SLBM을 가졌는지. 전문가와 보좌관들은 모든 가능성을 퍼센티지로 환산한다. 저게 핵미사일일 가능성, 시카고에서 폭발할 가능성, 추정 사망자수까지. 세 번째 장은 드디어 스피커 너머 목소리로만 전해지던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 농구장에서 비밀 대피소로 이동하는 동안 대응전략 고문인 군사보좌관 리브스 중령이 대통령의 선택지에 대해 설명한다. 두꺼운 ‘블랙북’에서 전 세계적 ‘파괴대상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대통령은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한다. 레어/미디엄/웰던 중에 하나로.
과연 핵은 어디에서 쏜 것일까. 이 작품에서는 그 적국이 특정되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모두 가능성으로 언급되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한다. 미국 대통령의 딜레마는 더 깊어지는 순간이다. 영화에서 모니터에 잠깐 보이는 곳은 일본열도 북쪽 오오츠크해 바다인 것 같다.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이다. 우리나라 성주의 미군 사드 기지에서도 발사 순간을 놓친 모양이다. 여하튼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8: 파이널 레코닝]에서 확인했듯이 미국 대중문화(블록버스트영화)에서는 북한 핵무기 보유와 SLBM는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군과 컨트롤타워의 결정자들은 수십 년의 시행착오와 도상훈련, 시뮬레이션 핵 게임을 거치면 어떠한 돌발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는 두꺼운 매뉴얼을 작성했을 것이다. 백 가지 상황, 천 가지 돌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전에 지시받은 명령에 따라, 절차에 따른 다음 스테이지를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세계는 위험해졌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60년 전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페일 세이프>의 핵공포를 여전히 해결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핵무기의 확산과 우발적 선제공격을 다룬 작품은 많았다. 이런 돌발/틈새 도발에 대해서는 미국조차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는 이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보복의 수단을 판단하는 ‘둠즈데이 머신’이 소개된다. 이제는 그게 슈퍼컴퓨터의 AI판단으로 대체될지 모른다. 어쩌면 그게 트럼프의 ‘딸깍’보다는 안전할지 모르겠지만.
묵시록적 핵위협을 담은 무시무시한 핵 스릴러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연출한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놀라게 된다. '폭풍 속으로', '스트레인지 데이즈', 'K-19 위도우메이커',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 '디트로이트'까지 미국 내부 상황에서 글로벌 갈등까지 강인하고, 논쟁적인 작품들이 가득하다. 놀랍게도 올해 나이가 이른 셋이란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소개되었고, 일부 극장에서 제한상영 중이다. 10월 2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넷플릭스는 내년 3월 열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이 영화를 적극 밀 모양이다. 시의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박재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감독: 캐서린 비글로 ▶각본: 노아 오펜하임 ▶출연: 이드리스 엘바 (대통령), 레베카 퍼거슨(백악관 상황실워커 대위), 가브리엘 바소(NSC부보좌관), 제럴드 해리드(국방부장관), 트레이시 레츠(STRATCOM 전략살여부 브로디 장군) 앤소니 라모스 (곤잘레스 소령), 모스 잉그람(FEMA직원), 그레타 리(NSA 북한전문가 아나 팍), 제이슨 클라크(상황실 밀러 제독) ▶개봉: 2025년 10월 8일 극장제한상영 2025년 10월 24일 넷플릭스 공개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최초공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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