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멘터리리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소멸되는 사람, 사라지는 이야기

by 내이름은★박재환 2022. 5. 22.
반응형



[박재환 2022.01.24] 참으로 슬프고도 슬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한 편 개봉한다. 이 영화를 몇 명이나 볼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의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야할 것 같다. 김동령과 박경태가 공동감독한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이다. 제목만 들으면 마치 ‘전래동화’려니 하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비극을 담은 대한민국 현대사 고발극이다.

영화는 경기도 의정부의 한 동네를 보여준다. 배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배벌, 뱃벌, 뱃뻘로 불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오랫동안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들의 업소가 있다. ‘기지촌 양공주’라고 불리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편하겠지만 평생 ‘그 일’을 해온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 여성의 이름은 박인순이다.

영화는 한 시민단체가 이곳을 찾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잠깐 망각한,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위안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가가 나서서 거든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한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부’의 위생을 행정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많은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룬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 인정 여부’ 사안이다. 그런데 박인순씨의 경우는 이 모든 공방에서 붕 떠있는 느낌이 든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너무 상처받은 과거라서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저주하는 듯하다. 


박인순씨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은 이렇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을 짊어지고 내다버렸다는 것이다. 서울역 앞이었단다. 두려움에, 배고픔에 울다 지친 소녀. 한 사람이 다가와 짜장면을 사준다. 세 그릇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짜장면 값은 그의 생명 값이 된다. 그렇게 포주에게 팔려간다. 그리고, 그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그림들로 채워진다. 글을 배운 적이 없고,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 ‘박인순’은 포주가 구해준 이름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이다) 그렇게 제2의 삶이 시작된다. ‘박인순’은 의정부 미군기지 기지촌에서 그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비극을 목격했다. 법의 보호도, 최소한의 인권도 없이 죽어간 동료들, 그리고 야산에 파묻히는 많은 영혼을. 자살한 사람도, 자살하려던 사람도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죽음의 고비 앞에서 한 미군을 만나 국제결혼을 하고 ‘시카고’로 갔지만, 무슨 이유인지 다시 돌아온다. 그녀는 그 기억을 잃고 만다. 

‘이런’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나 흔한, 뻔한, 시시한, 천편일률적 전개의 이야기들이다.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폭행당하고, 버려지고, 죽어나가는. 행여 국제결혼이라는 괴이한 로맨스로 저주받은 그 곳, 끔찍한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삶의 끝은 쓸쓸할 뿐이다. 

김동령 박경태 감독은 박인순씨의 ‘과거’ 이야기를 전하며, 박인순씨의 ‘마음속’ 이야기를 화면에 담는다. 영화는 박인순과 또 다른 박인순(즉, 그와 같은 일을 한 수많은 여성들)을 등장시키고, 산 박인순과 이미 죽은 박인순(물론, 그와 같은 일을 했던 수많은 여성들)을 한 화면에 담는다. 영화는 한 인물의 연대기를 쫓지 않는다. 박인순씨는 죽음의 사신을 맞이하기 전에 끝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이 자신을 내다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한일까?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 땅에 온 미군을 향한 저주일까? 아니면 망각의 늪에 빠져버린 ‘시카고 남편’일까. 

● “독수리가 되어 자기를 괴롭힌 사람의 눈알을 파먹고 싶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본 관객은 충격적인 영상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미군에 의해 성폭행 당한 뒤 처참한 모욕을 당한 한 여성의 시신을 담은 사진(1992년 동두천 기지촌 윤금이 사건을 안다면!)과 박인순씨가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복수와 저주의 행동이다. 아마, 그 순간까지 참고 인내하고 지켜봤다면, 이해할 것이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니, 우리가 무어라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제목으로 쓰인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박인순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었단다. (감독의 전작에 그 이야기가 나온단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이지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단지 어느 순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와 나쁜 남자의 상징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잊히고 마는 존재들을 이야기한다. 기지촌의 뒷산에는 많은 ‘시신’들이 묻혔단다. 그곳에 고속도로가 생길 때 많은 유골이 나왔단다. 그들이 누군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도 널 기억하지 못할 거다”라고 말한다.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그런 사연을 갖고 그런 삶을 산 ‘박인순’이라는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감독: 김동령, 박경태 ▶출연: 박인순 김아해 신승태 신유안 조은경  ▶개봉: 2022년 1월 27일 15세관람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