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콘돔] 살인토마토보다 더한, 더 깊은, 더 심각한.... (마틴 왈쯔 감독 Kondom des Grauens/ Killer Condom 1996)

2019. 8. 18. 10:26유럽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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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 이 영화는 퀴어 무비이다. 이전에 퀴어무비 광신도인 그 애가 이 영화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오늘 직접 보니 그들만의 교감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이 영화는 상당히 복잡한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다. 호락호락한 영화가 절대 아니다. 겉포장은 단순한,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지저분한 호러물이지만 한 꺼풀씩 파고 들어가면,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심상찮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현대 독일영화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영화를 열심히 만들고 있고,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어딘가 아쉬운 그런 감정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동네 영화세계와 우리 영화팬의 괴리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다. 그러나 독일영화이다. 일반적으로 독일영화는 영어더빙으로 만들어져서 세계로 배급되는 경향이 있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같이..) 그런데 이 영화는 뜻밖에 독일어로 진행된다. 참 이상한 영화이다. 그래서 미국사회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미국 대통령 후보를 논하면서도 독일어로 서사구조를 엮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낯설게하기 방법이다.

 

영화의 배경은 그럭저럭 활기 넘치는, 그리고 잡다한 잡범과 다양한 경력의 형사들로 우글거리는 NYPD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요 배경은 게이들이 득실 되는 모텔이다. 이곳에는 거래를 위해 들락거리는 여장한 게이, 남창, 뚜쟁이, 창녀, 그들의 고객, 욕망으로 가득한 남정네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 버글댄다. 어느 날 그 모텔에서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가 승진을 미끼로 어린 여자를 유린한다. 바지를 내리는 순간, 여자는 "으악~~~"고함과 함께 그녀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가 된다.

 

다음 장면, ‘NO SMOKING’이란 표지는 아랑곳없이 줄담배를 피우며 주인공형사 마카로니가 NYPD사무실로 출근한다. "장인을 죽이고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모텔에서 성기절단사고가 났다"..같은 살벌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도 어제와 같이 평화로운(!) 뉴욕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콘돔이 성기를 절단했다고?"

 

아무도 그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희대의 변태 살인마의 등장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 마카로니 형사가 모텔에 등장하며 일은 심각해진다. 마카로니 형사도 게이이다. 대낮에 모텔에서 새로 사귄 빌리와 일을 치르려 한다. 그런데 그 콘돔이 달려든다. "으아악~~" 다행히 그는 한쪽 고환만을 물린다.

 

"킬러 콘돔이 달려들어 자네 고환을 물어뜯어갔다고? 우하하하~~~"

역시 아무도 형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뉴욕에는 희대의 성기절단 살인범이 날뛰기 시작한다. 결국은 (신문제호를 옮기자면) 'Dickless Dick'! 대통령 후보자까지 킬러콘돔의 공격으로 사지절단 - , 아니 성기절단의 희생자가 된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NYPD는 공포의 킬러콘돔 체포 작전이 펼쳐진다.

 

콘돔은 일을 치르는 남과 여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방책이며, 최대한의 안정감과 신뢰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 콘돔을 착용했을 때, 콘돔이 물건을 꽉 깨물고 따(!)서는 사라져버린다면?

 

세상에 그런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영화인도 다 있었다. 독일에서 넘어온 이 영화는 콘돔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더욱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콘돔을 착용하려는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정을 하였다. 마카로니 형사가 자기 물건을 내놓으며 파고든 범죄의 실상은 영화를 더욱 어지럽게 한다. 한 정신 나간 여의사가 콘돔에 대한 반발심과 뉴욕의 부패에 대한 징벌로 이 콘돔을 개발 보급시킨 것이다. - 좀 더 자세히 밝히자면 러시아 출신의 생화학자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각종 유전자의 결합으로 신종 라텍스 물질을 만들어낸다. 겉보기에는 콘돔이지만, 용도는 물어뜯는 것이다. 그것을 각 모텔에 공짜 보급시키고 그것을 이용하는 남자들은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극보수적인 한 여의사가 그런 세태를 징벌할 것이라고 고안해낸 것이 바로 킬러콘돔인 것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뉴욕은 '소돔과 고모라'에 다름 아니다. 성경에는 '남녀의 성적결합으로 세상을 풍성하게 하라''남자가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동성 간의 교접은 비자연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자는 이러한 신적 계시에 대한 모든 죄악에 聖戰을 선포하는 것이다. 사실 뉴욕은 부패하고, 불결하고, 세기말적이며, 성도착적이고, 변태이며, 살인광의 공간이란 것이다. (그것은 이미 택시드라이버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낙태나 콘돔 사용의 찬반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게이들의 정체성을 옹호하고, 남녀의 교접만큼 자연스런 男男의 사랑-비록 육체적인 사랑에 중점을 두었지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퀴어적 시각은 결국 영화 마지막에 잘 나타난다. 대사 중에 "남자들이 그들 다리 사이에 있는 것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평화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개그는 생각하니 개그였단 걸 알았다. 마카로니 형사가 빌리를 고향 시실리(마피아의 본고장)로 데려가서 어머니에게 소개시켜주겠다니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데려온 사람이 남자일 때 고향 어머니의 반응을...) 빌리가 그런다. "그녀가 날 보고 좋아할까요?" 그러자 마카로니가 한 말은 "글쎄. 너가 처녀가 아니란 것은 말하지 말자..". 나중에 영어대사를 보니 그 말은 "you're not a virgin"였다. 남자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였단다. 비디오로 얼마 전에 출시되었다.

 

독일영화이다보니 등장배우들이 모두 낯설지만 독일에서는 꽤 유명한 배우들이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원래 만화란다. Ralf Koenig라는 만화가가 그린 Kondom des GrauensBis auf die Knochen 두 권을 바탕으로 무대배경만을 뉴욕으로 옮겨 각색한 것이란다.

 

, 이 영화에 H.R. Giger가 참여했다기에 찾아보니 creative consultant였다. <에일리언>같은 영화의 괴물을 창조해낸 스위스출신의 화가(!)의 작품치고는 조금 소품인 셈이다. 헐리우드 영상기술과 독일의 수작업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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