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8. 10:26ㆍ유럽영화리뷰
이 영화는 퀴어 무비이다. 이 영화는 상당히 복잡한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다. 포장은 단순한,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지저분한 호러물이지만 한 꺼풀씩 파고 들어가면,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심상찮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다. 미국사회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미국 대통령 후보를 논하면서도 독일어로 서사구조를 엮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낯설게하기 방법이다.
영화의 배경은 그럭저럭 활기 넘치는, 그리고 잡다한 잡범과 다양한 경력의 형사들로 우글거리는 NYPD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요 배경은 게이들이 득실 되는 모텔이다. 이곳에는 거래를 위해 들락거리는 여장한 게이, 남창, 뚜쟁이, 창녀, 그들의 고객, 욕망으로 가득한 남자들. 그런 사람들이 버글댄다. 어느 날 그 모텔에서 일이 벌어진다. 고함과 함께 여자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가 된다.
"콘돔이 성기를 절단했다고?"
NYPD의 게이 형사 마카로니도 모텔에서 믿지 못할 일을 직접 겪게 된다. 킬러 콘돔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뉴욕에는 희대의 성기절단 살인범이 날뛰기 시작한다. 결국은 (신문 제목을 옮기자면) 'Dickless Dick'! 대통령 후보자까지 킬러콘돔의 공격을 당한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NYPD는 공포의 킬러콘돔 체포 작전이 펼쳐진다.
세상에 이런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영화인도 다 있다니. 독일에서 넘어온 이 영화는 콘돔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콘돔을 착용하려는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정을 하였다. 한 정신 나간 여의사가 콘돔에 대한 반발심과 뉴욕의 부패에 대한 징벌로 이 콘돔을 개발 보급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의학적 방식이라 좀더 자세히 밝히자면 이렇다. 러시아 출신의 생화학자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각종 유전자의 결합으로 신종 라텍스 물질을 만들어낸다. 겉보기에는 콘돔이지만, 용도는 물어뜯는 것이다. 그것을 각 모텔에 공짜 보급시키고 그것을 이용하는 남자들은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극보수적인 한 여의사가 엉망이 된 이 사회를 징벌하려는 것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뉴욕은 '소돔과 고모라'이다. 이 여자는 신의 계시에 따라 모든 죄악에 聖戰을 선포하는 것이다. 사실 뉴욕은 부패하고, 불결하고, 세기말적이며, 성도착적이고, 변태이며, 살인광의 공간이란 것이다.
이 영화는 낙태나 콘돔 사용의 찬반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게이들의 정체성을 옹호한다. 그런 퀴어적 시각은 결국 영화 마지막 대사에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였고 비디오로도 출시되었다.
독일영화이다보니 등장배우들이 모두 낯설지만 독일에서는 꽤 유명한 배우들이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원래 만화란다. Ralf Koenig라는 만화가가 그린 Kondom des Grauens와 Bis auf die Knochen 두 권을 바탕으로 무대배경만을 뉴욕으로 옮겨 각색한 것이란다.
참, 이 영화에 H.R. Giger가 참여했다기에 찾아보니 creative consultant였다. <에일리언>같은 영화의 괴물을 창조해낸 스위스출신의 화가(!)의 작품치고는 조금 소품인 셈이다. 헐리우드 영상기술과 독일의 수작업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박재환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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