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8) 어제(2003/7/19) EBS-TV에서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자유의 환영>을 방송했는데 생각나서 다시 올립니다.
이 영화를 몇 번씩이나 돌려 보았다. 17분짜리 짧은 필름이지만, 왜 그리 어려운지. 사실 어려운 것은 전혀 아니다. 원래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니, 목적이 있다면 스페인 출신의 두 천재작가- 감독 Luis Bunuel과 화가 Salvador Dali가 기존 영화의 틀을 깨는 괴상망측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 영화는 이 괴짜들의 뜻대로 1928년 파리 개봉당시 돌팔매 맞은 것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알 수 없는 영화의 전형으로 손꼽혀왔다. 봐도 봐도 모르긴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슈아레알리즘”이란 것이다. 황당하다.
이 영화를 엄격하게 분석하자면, “정말 뜻이 없다!” 일부러 의미 없는 장면만을 엮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내면에 흐르는 심층심리를 프로이드 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만약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브뉴엘과 달리가 의도한 대로, 젠 체 하는, 잘난 척 하는, 현대 문화습득자들의 또 다른 자기만족의 현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분석해 보자!
영화는 ‘황당한 줄거리’ 이어나가기이다. 한 남자(피에르 바체프)가 손에 면도칼을 쥐고 있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 여자(그의 아내라고 소개되는 시몬 마뢰이)가 그의 뒤편 의자에 앉아있다. 이 남자 뒤로 돌아서서는 그의 아내에게 걸어간다. 그 면도칼로 아내의 한쪽 눈을 가른다. 눈물인지, 뭔지 여하튼 그런 것이 나오면서, 영화는 다음 장면으로 바뀐다. 사람의 손목 아래 부위가 달랑 잘린 채 거리에 버려져 있다. 그걸 이층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지켜본다. 한 여자(남자?)가 그 손을 상자에 담는다. 그리곤, 찻길 한 복판에 멍청히 서 있고, 지나가던 차에 이 사람은 깔려죽는다! 2층에서 지켜보던 남자는 순간 당황한다. 그리고, 이 남자가 갑자기 여자에게 달려든다. 한쪽 벽에 밀쳐 세워 놓고는 젖가슴을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순간, 여자는 옷을 입은 상태와 벗은 상태로 (남자의 환상이겠지만) 나타난다.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자, 이 남자는 피아노 두 대를 줄에 묶어 거실로 끌고 들어온다. 피아노 위에는 썩어 문드러진 당나귀가 얹혀 있고, 뒤에는 살아있는 목회자-신부님이 줄에 매달려 질질 끌려오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또 다시, 한 남자가 등장하여,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의 옷가지를 발코니 밖으로 내던진다. 그리고는 갑자기 <16년 전>이란 자막이 뜨고, 책을 들고 있던 남자. 어느새 책은 총으로 바뀌고, 총을 쏜다. 남자가 쓰러진다. 그런데 또 어느새 배경은 들판이다. 들판에서 쓰러지는 이 남자. 벌거벗은 여자의 등에 기대려하지만, 여자는 환상 속으로 사라진다. 죽은 남자를 사람들이 싣고 간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파도에 밀려온 상자와 옷가지를 발견하고는 좋아한다. 그리곤, <봄>이란 자막과 함께, 모래 속에 반쯤이나 파묻힌 채 (죽은 듯한) 이들을 보여주며, 정말 허망하게 이란 자막이 떠오른다.
17분간. 떨리는 화면을 바라보며 줄거리를 따라 가 볼려고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나 같은 멍청한 영화감상자가 안 생기도록, 충고하나 하자면, ‘슈아르레알리즘’이란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아주, 폭넓은 감상의 폭을 제공해준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 프로이드의 책을 읽는 것처럼 어렵다. 곰곰이 몇 줄을 읽어가고, 겨우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방금 읽은 앞 페이지 문장의 뜻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와. 이럴 수가… 이렇게 어려운 영화가 그때 나왔단 말인가. <동사서독>은 무척 쉬운 영화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뜻하는 것을 찾아내고야 말리라. 여자가 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바다가 된다든지 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사실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엇비슷한 등장인물과 관객에게는 그 어떠한 동화작용도 없다. (박재환 19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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