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박찬욱 감독의 흑백단편영화 (1999)

2017. 8. 19. 21:50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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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4일 KBS독립영화관 방송분 리뷰]

 

밤 12시에 방송되는 KBS 1TV KBS <독립영화관>은 300회 특집기획 ‘위대한 시작’이 방송된다. 이경미 감독의 <잘 돼가? 무엇이든>, 박찬욱 감독의 <심판>,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이다. 단 한편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숨은(?) 걸작 ‘심판’을 지상파 KBS에서 만난다니. 논란은 있지만 작년 개봉한 <아가씨>는 국내외 평자들로부터 심오한 스릴러라는 호평을 받았다. 물론 그 이전에 깐느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았지만 말이다. 서강대 학생시절부터 씨네필로 유명했던 박찬욱 감독은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으로 호기롭게 충무로에 데뷔했지만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97년 내놓은 <삼인조>가 흥행대실패하면서 더욱 그러했다. 이후 영화에 열정은 치열하고도, 처연한 영화비평으로 연명한다. 그러다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충무로 최고의 영화감독 반열에 오른다. 바로 그 전 해, 그러니까 충무로 영화판에서 완전히 내몰릴 위기에 있었던 박찬욱 감독이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매달렸던 작품이 바로 단편 <심판>이다. ‘심판’은 박찬욱의 철학관과 세계관, 영화미학이 다 녹아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요소가 다 포함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심판’은 (지금도 비슷하지만) 세기말적 상황에 놓인 한국의 우울한 한 때를 담고 있다. 영화는 1990년대 초반에 연이어 일어난 대한민국 사건사고를 뉴스화면을 통해 전해준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94.10.21),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사고(95.4.28), 삼풍백화점 붕괴사고(95.6.29), 등이 잇달아 일어난다. 그러니까. 대구지하철 화재참사(2003.2.18.)나 세월호 사건(2014.4.16) 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한국은 불안했고, 그 이후에도 위험했다는 말이다.

 

‘심판’에서는 플러스백화점이라고 나온다. 백화점 붕괴사고 피해자에게 2억 원 정도의 보상금이 주어진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 병원 시체안치소가 공간이다. 장례사(염장이) 기주봉은 맥주 캔을 들이키고 있다. 백화점 붕괴사고의 마지막 사체를 염하고 있다. 곧이어 이곳에 그 사체가 오래 전 집을 나간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중년의 부부가 등장하고, 사고 수습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입회한다. 그리고 마지막 희생자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온 방송사 기자와 함께 좁고 어두운 시체안치소에서 블랙코미디를 펼친다.

 

묵묵히 염을 하던 기주봉이 갑자기 사체의 얼굴을 보더니 오래 전 집을 나간 자신의 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우아한 사체’를 둘러싸고 때 아닌 소동이 벌어진다. 공무원은 왜 자신의 딸이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지 않고 확인도 안 되는 사체를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 하냐고 묻는다. 기자는 뭔가 뉴스거리가 있다고 직감하고 그 소동을 부풀린다. 거액의 보상금을 둘러싼 낯 뜨거운 ‘유족’ 다툼? 그때, 한 여자가 나타나서 이 소동은 더욱 우스꽝스러워진다. 영화는 줄곧 흑백으로 진행되다가 영화 마지막에 컬러로 임팩트를 준다.

 

박찬욱 감독은 ‘사고다발국가’ ‘안전불감증’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다가, 보상금에 눈이 먼 사기꾼 천지를 조롱한다. 그 사이에 깐족거리는 방송기자를 엣지 있게 풍자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1999년작 ‘심판’이 오늘 방송에서는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다. 사고현장을 전하는 뉴스화면을 지금 보자면 오열하는 유족에 대한 무신경한 초상권 침해나 여러 가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 이제는 세계적 수준의 감독인 된 박찬욱 감독이 다시 이 영화를 손본다면 아마도 더미(가짜 시체)에 대한 리얼리티 제고가 아니라, 좀 더 세련된 풍자의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대한민국과 그런 나라의 한심한 국민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코미디로서 영화 ‘심판’은 두고두고 회자될 풍자의 걸작이다.

 

참, 이 영화는 비디오대여점이 영화유통의 한축을 차지하던 시절, ‘영화마을’이라는 아주 유명한 비디오대여체인점이 사전제작지원을 한 작품이다. ‘영화마을’ 가맹점에만 이 영화(비디오)를 유통시키려는 방식이었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플러스’ 이전에도 이런 기획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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