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물결] ‘죽음을 본 남자, 삶을 만난 여자’ (김진도 감독 Blossom, 2015)

2017. 8. 19. 21:5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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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독립영화관>을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이번 주에는 ‘대명컵 CSI 국제승마대회’ 중계방송으로 평소보다 2시간 늦은, 정확히 (2016년 5월) 21일(일) 02시라는 야심한 시간에 시작된다. 그 특별(?)한 시간에 방송되는 영화는 김진도 감독의 2015년 독립영화 <흔들리는 물결>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남자주인공 연우(심희섭)는 단양의 한 병원 영상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죽는 현장을 목격한 -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화물차에 치어 순식간에 죽음을 목도한다 –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연우는 매일 밤, 자신의 방에 갇혀 소주를 들이키며 혼자 괴로워할 뿐이다. 그런 어느 날 그 병원에 새 간호사 원희(고원희)가 온다. 원희는 혼자 있고 싶은, 말도 하기 싫어하는 연우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려고 하고, 이야기를 건넨다. 알고 보니, 원희는 췌장암으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신세였다.

영화의 첫 장면은 교통사고 직후의 연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조금 전 까지 같이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허망한 멈춘 세상이다. 이후 연우는 집과 직장인 병원을 모터사이클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오고갈 뻔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 연로한 아버지와 어머니와도 살가운 대화도 없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가족의 정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연우가 세상과 담을 쌓은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게 되기를 조금씩 기대하게 된다. 그 역할을 원희라는 존재가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연우는 그런 원희의 존재가 성가시고, 짜증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작은 어렵다.

<흔들리는 물결>은 심희섭과 고원희라는 두 배우의 열연으로 죽어가는 극중 캐릭터의 삶에 완벽하게 감정이입 시킨다. 죽음을 목격하고 삶의 열정을 잃어버린 남자와, 죽어가는 존재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여자가 만나, 그야말로 시한부의 사랑을 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시한부 삶’을 다룬 다른 영화와는 확연히 결이 다른 작품이다. 각본을 직접 쓴 김진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여자를 떠나보낸 후 죽음이 풍기는 차가움보다는 사랑이 주는 따뜻함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인 마지막 장면 – 강물을 헤엄쳐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 –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원희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자 남자의 생의 집념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언젠가 뛰어들어 죽으려고 했던 그 강물에서 말이다.

 

충청북도 단양을 배경으로 한다. 남한강의 수려한 모습, 그리고 그 평온한 정적이 영화에서처럼 모터사이클로 달려보게 만든다. 영화의 여운과 영화의 배경이 오래 기억될 작품 중 하나이다.

 

극중에서 연우는 항상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25살이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유재하의 ‘그 대 내 품에’이다.

 

별 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 위에 앉고 싶어라/ 밤하늘 보면서 느껴보는 그대의 숨결/ 두둥실 떠가는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흔들리는 물결>을 보고 생의 의미를 다시 찾기를.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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