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싶은 것] 위안부 꽃할머니 (권효 감독 The Big Picture, 2012)

2017. 8. 18. 23:22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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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8월 15일은 광복 70년이다. 기쁜 날이긴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무거운 심판의 날이기도 하다. 바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것이다. 어제(2015.8.12) 밤늦은 시간, ‘KBS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시의적절한 영화 한 편이 방송되었다. 권효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이 방송된 것이다. 이 작품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심달연 할머니의 가슴 사무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살 꽃 같은 나이에 들판에 쑥 캐러 나갔다가 군인에게 납치되어 중국으로 동남아 어딘지를 일본군과 함께 끌려 다니며 유린당했던 할머니의 삶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주는 방식이 아니다. 할머니의 삶을 어린이용 그림책으로 만들려는 작가 권윤덕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사회가, 한국이, 일본이, 세상이 위안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일본의 한 출판사에 요청에 의해 시작된다. 2007년 일본의 어린이도서출판 전문업체인 동심사(童心社)는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세계평화의 참뜻’을 어린이 독자에게 올바르게 전해주자는 취지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작가에게 적절한 소재의 그림책을 그려 세 나라에서 함께 출판하자고 나선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고 이 중에는 권윤덕 작가도 포함된다. 권 작가는 평소 꼭 하고 싶었던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그리고 세계 평화의 걸림돌이 되는 과거를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권 작가는 한지에 곱게 그림을 그린다. 초안도 잡고, 가제본된 책자가 완성된다. 그런데, 우리(한국작가, 한국출판인, 한국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일본 출판사 관계자 쪽에서 나온다. 가제본된 책을 본 일본 동심사 관계자는 이런 내용은 일본에서 절대 출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심적인, 평화적인 것으로 보였던 일본 출판관계자는 ‘욱일승천기’가 나오고 ‘군인’이 꽃잎을 유린하는 그림은 어린이에게 충격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일본 우익의 도발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권 작가와 한국 측 출판사는 일본 측 반응에 놀란다. 이후 권 작가는 고민에 빠진다. 일본 출판사와 밀고 당기는 협의가 계속되고 그림체를 톤다운 시키는, 순화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몇 차례 일본과 한국의 초등학생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스크리닝(낭독회)도 진행한다. 일본 학생도, 일본 학부모들도 다들 놀라워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혹시, 일본 작가의 동화책을 보면 알겠지만, 일본 어린이용 그림은 정말 백짓장 같은 순수함이 특징이다. 그러하니, 권 작가의 그림체가 공포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권 작가는 모니터링을 통해 그림을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마지막 원고를 일본에 넘긴다. 당초의 작가 그림은 많은 부분 바뀌었지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결론을 말하자면 일본 출판사는 이 책을 ‘여태’ 출간하지 못했다. 후쿠시마대지진 이후 일본이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심달연 할머니는 세상을 등지고 마셨다. 13살 나이에 야수에 끌려가신 우리네 할머니. 세상에 그림책 하나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세계 평화에 작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셨던 할머니가 말이다.

 

권윤덕 작가는 이런 내용도 담았다. 일본군에 끌려가서 죽을 고생을 다하고 귀국했을 때, 모두들 손가락질하고,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 했었다고. 채시라가 출연했던 MBC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지옥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온 위안부 여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것이 바로 우리네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고 아무도 꽃할머니의 아픔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꽃할머니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은 가슴에 꼭꼭 묻어두었다. 

(극중 나레이션 김여진)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 올해 들어 8명의 할머니가 유명을 달리하셨단다. 생존자는 47명으로 줄었다. 광복 10년, 20년,....70년 카운팅이 그리로 중요한가. 할머니의 시커먼 속을 어찌할려나.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는 사계절출판사에서 2010년 출간되었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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