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 Z: 좀비퇴치 대백과사전

2013. 7. 2. 18:1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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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해마다 세계 각국, 권역별 경제상황을 전망하는 '세계경제대전망'이라는 보고서(책)를 내놓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번역 출간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 이후의 미국경제의 흐름은?”, “시진핑 시대의 중국경제는?”,  “아베노믹스의 일본은?”, “브릭스 계속 잘 되나?” 식으로 각 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분석하고 1년 농사를 전망하는 것이다. 영화 <월드 워 Z>의 원작이 된 맥스 브룩스의 소설 <세계대전 Z>를 보노라면 이코노미스트의 '세계 대예측 2014년'판을 보는 듯하다. 전 지구적 재앙에 대해 유엔 소속의 한 베테랑 조사연구원이 좀비가 창궐한 각지를 돌면서 정부관계자와 군인, 의료관계자 등을 인터뷰하며 다양한 좀비 피해양상과 그 대처방안을 서술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고서의 효용성은 아마도 다시 한 번 좀비 재앙이 터질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대응복구책을 세울 수 있는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자.

 

브래드 피트, 가족을 위해 좀비 퇴치제를 개발하다
 
영화는 평화로운, 전형적인 미국 가족의 상쾌한 아침을 보여준다. 제리(브래드 피트)는 유엔소속 요원이(었)다. 아마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긴급재난상황들에 대해 현지조사와 분석 대책을 세우는 베테랑 요원이었던 모양이다. 제리는 어느 순간 그런 위험한 일에 회의를 느끼고 가족과 좀 더 오래 지내기 위해 일을 그만 두고 필라델피아의 집에 안착한다. 조금 식상한 설정이지만 천식을 심하게 앓는 딸도 있다. 러시아워 출근시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나섰다가 극심한 교통체증에 빠진다. 옴짝달싹 못하는 차들. 도대체 앞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 엄청난 좀비군단이 몰려온다. 이 끔찍한 좀비들의 돌진과 그런 좀비에 물린 후 12초면 곧바로 좀비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오프닝은 깔끔하다. 조류독감처럼, 사스처럼, 에이즈처럼,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확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순식간에 전 지구에 퍼져나간다. 제리는 유능한 ‘전 유엔요원’이었기 때문에 망망대해의 항공모함에 오를 특권을 누린다. 이제부터 제리는 좀비 퇴치를 위해 좀비가 처음 나타난 지역을 찾아 나서고, 좀비에 대한 선제적 방어대책을 펼치고 있는 이스라엘을 찾는다. 그리고는 겨우겨우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내어 위험한 도박에 나선다. 좀비를 막느냐 내가 좀비가 되느냐는 절체절명의 하이브리드 액션이 계속된다.

 

소설 속 좀비, 영화 속 좀비
 
맥스 브룩스는 좀비에 대한 소설을 몇 권 썼다. 2006년에 나온 이 소설은 좀비를 다룬 지금까지의 영화나 소설에 비해 조금 특별하다. 그간의 좀비는 제한된 지역에서 역병처럼 번지는 도시악몽을 다룬 B급 호러 물이었다. 하지만 브룩스의 작품은 UN이 나서야할 만큼의 전 세계적 규모의 전염이며, 최종적으로는 마지막 한 사람마저 멸절시킬 종의 전쟁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판권을 둘러싸고 경쟁을 펼쳤단다.

 

브룩스의 소설은 UN조사관이 각국의 좀비 현상에 대해 수많은 국가, 정부조직, 기구, 군인, 인종,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좀비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소설에서는 좀비의 첫 출현지로 아마도 중국 충칭 인근을 지목한다. 놀랍게도 삼협(산시야)댐을 이야기한다. 중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인 삼협댐. 엄청난 지역이 수몰되었고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역병이 나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는 중국의 통상적 방식이나 ‘죽의 장막’ 이라는 중국의 국가기밀 봉쇄정책을 떠올리면 시골마을의 좀비가 어떻게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브룩스는 중국의 ‘장기밀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의 비위생적 장기적출에서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유럽의 부자들의 비밀스런 수술에 이르기까지. 좀비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탐사보도 TV프로그램처럼 숨 가쁘게 전개된다.

 

소설 속 한국, 영화 속 한국
 
브룩스는 ‘이코노미스트’의 대예언가들처럼 지구적 현상에 대해 전문가적 상상력을 내놓는다.  세계 각국의 케이스를 이야기할 때 그 지역(국가)에 대해 공을 꽤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협댐 건설의 환경오염문제나, 수몰된 그 지역의 이야기를 볼 때는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를 떠올릴 정도이다!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동유럽, 오스트레일리아, 하와이, 북극, 우주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좀비 케이스를 읽노라면 ‘CIA 팩트북’을 훔쳐보는 듯하다. 소설에선 한국/한반도 이야기도 등장한다. 유엔의 베테랑 요원은 한국 국정원 부원장과 인터뷰한다. ‘죽의 장막’, ‘철의 장막’을 뛰어넘는 절대폐쇄왕국 북한에서는 좀비케이스가 어떤 양상을 띠는지를 미스터리하게 설명한다.

 

영화는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좀비의 첫 등장을 한국 평택의 미군기지로 상정하고 있다. 지저분한 중국의 하수구나 환경오염의 극한지점이 아닌 평택의 미군 기지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감독이 ‘괴물’영화라도 본 것일까? 역병의 역사에 있어 한국도 메인 페이지에 오른 적이 있다. ‘유행성출혈열’이 그러하다. 동두천 한탄강에서 잡힌 들쥐에게서 이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한탄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였다지 않은가. 여하튼 평택이라는 지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다니. 평택시민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영화에서는 북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자동지의 지시로 하룻밤 사이에 2300만 인민의 이를 몽땅 뽑아버리지 않았을까”라고. 물리면 전염되는 이 최악의 사태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대응책이리라. 그런데, 소설에서는 그런 극단적인 대응은 아니지만 지구 곳곳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좀비대처법이 다수 등장한다. 최악의 경우에 빛을 발하는 숭고한 인류의 희생들이다.
 
좀비 방어책

 

소설에서는 뾰족한 방어책이 없어 보인다. 다만, 기온이 떨어지면 상황이 호전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북으로 북으로 이동한다. 팀 버튼 감독의 <화성침공>이나 롤랜드 애머리히의 <인디팬던스 데이>에서 외계인을 물리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 뭐였더라? 이 영화의 좀비 퇴치책은 의학적이긴 하지만 얼마나 현실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좀균처럼, 바퀴벌레의 생존력처럼 좀비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소설은 무궁무진한 좀비의 파편으로 가득하다. 체첸에선 새로운 러시안 룰렛게임도 볼 수 있고, 파키스탄 인도 국경의 핵전쟁도 볼 수 있을 것이며, 태평양 항공모함에서의 좀비번식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우주정거장에 기어들어온 러시아 우주원숭이가 매개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속속편에서는 말이다. 영화도 재미있고, 소설도 재미있다. 속편도 재미있을 것 같다. (박재환, 20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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