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레인저] 조니 뎁 스타일~

2013. 7. 4. 12:36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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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한 동안, 아주 오랜 기간 서부극(웨스턴)이 대세 중의 대세로 인기를 끌었다. 드넓은 황야를 가로지르는 기병대의 나팔소리와 안장도 없이 말을 탄 인디언들의 괴성, 고독을 잘근잘근 씹으며 정의를 지키는 보안관, 누구보다도 빨리 총을 뽑아야하는 사연 많은 술주정뱅이 총잡이, 게다가 회색 옷과 푸른 옷으로 나뉘어 싸우는 남북전쟁 이야기까지. 서부극은 아주 짧은 미국의 역사시기를 빛낸 수많은 영웅을 내놓으며 미국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존 포드 감독에 존 웨인, 알란 라드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어느 순간 서부극은 주류에서 밀려났다. 물론 해마다 한 두 편의 서부극은 만들어지지만 그 옛날의 영광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카우보이 vs. 에일리언’ 등 SF퓨전까지 나오는 시대에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미있는 서부극 한편이 개봉된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흥행신화를 창조한 조니 뎁과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만든 서부극 ‘론 레인저’이다. 지금 세대(나 포함!)는 ‘론 레인저’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마치 ‘전원일기’이야기를 하면 그게 TV드라마였는지, 심훈의 귀농소설이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너무 오래 전 미국에서 인기를 끈 대중문화의 한 아이콘 이었다. 그 전설 속의 카우보이가 어떻게 재림했을까. 궁금해진다.

 

론 레인저, 사법수호를 위해, 정의를 위해....

 

 

1869년. 남북전쟁이 마무리되고, 서부로 서부로 철도가 쭉쭉 뻗어가던 시절의 텍사스 콜비 마을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동부에서 정의를 공부한 론 리드가 지방검사가 되어 이곳에 온다. 이곳에서 와일드한 형 댄은 이곳에서 텍사스 레인저로 법 수호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텍사스 레인저는 남북전쟁 훨씬 전부터 텍사스 주의 치안을 담당하던 보안관과 경찰 같은 사법집행기관이다) 이 지역은 철도공사가 한창이고 악당 버치 캐번디시‘가 활개를 치는 곳이다. 어렵게 잡은 캐번디시를 교수형 시킬 준비를 끝낸 상태에서 캐번디시는 탈출하고 댄은 추적대를 이끌고 일당을 뒤쫓는다. 하지만 캐번디시 일당에 의해 추적대는 전멸당한다. 단 한사람. 법적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따라 나섰던 동생 론만이 괴상한 인디언 ’톤토‘에게 구조된다. 잭 스패로우 해적만큼 독특한 캐릭터인 ’톤토‘는 나름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각자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 짝을 이룬 ’론 레인저와 톤토‘. 이제 캐번디시 일당을 물리치고 서부의 평화, 대륙의 질서를 잡기 위해 화려한 액션을 펼친다.

 

론 레인저, 오래 된 서부영웅

 

 

 

 

‘론 레인저’라는 서부영웅은 1933년 라디오 방송으로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TV가 등장하기 전,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듣고 오락을 즐기던 그 ‘라디오 시절’의 영웅이었다. 내용은 론이 텍사스 레인저가 되어 인디언 톤토와 환상의 파트너가 되어 텍사스를 분탕칠치는 악당무리들을 소탕한다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놀랍게도 수십 년 동안 3천여 편에 이르는 라디오 에피소드가 탄생했고, TV 드라마와 영화로도 수없이 만들어졌다.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타이틀곡(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피날레)과 함께 마지막엔 론이 “하이 요 실버~”(Hi Yo Silver)라고 외치는 것이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유행어였다. ‘실버’는 론이 타고 다니는 백마이다. 서부의 정의를 지키는 론과, 그의 충실한 조력자 인디언 톤토. 서부영화가 한물 간 요즘 스크린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 이들이라니! ‘빌리 더 키드’도, ‘선댄스 키드’도, ‘와일드 빌’도 ‘와이어트 보안관’도 아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로 떼돈을 번 월트 디즈니의 새로운 프랜차이즈로서는 대박 아이템임에 분명해 보인다. 찰떡궁합의 건맨과 인디언이 펼칠 서부모험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할 테니 말이다.

 

돌아온 서부극, 달라진 서부극

 

물론, 미국의 주류 서부극은 정의감에 넘치는 백인중심의 영웅드라마가 기본이다. 무자비한 인디언들의 화살과 도끼를 이겨내고 신이 내린 명백한 임무에 따라 서부 끝까지 달려가는 뉴 프런티어 정신으로 가득한 저들만의 정의극이다. 물론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다 보니 비주류 서부극도 가끔 주목받았다. 이른바 ‘수정주의 서부극’들이다. 자신의 땅에서 내몰리고 종족이 몰살당하는 인디언의 분노를 다루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인디언 톤토가 정신이 조금 이상해졌다고 몰리는 이유가 바로 그 백인들에 의한 저질러진 비극이다. 선의를 악으로 갚는 나쁜 백인들. 물론 그 인디언 땅에서 ‘금’(은)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종족 대학살극이다.

 

디즈니의 2013년 서부극 ‘론 레인저’에서는 영악하게도 달라진 시대상을 구현한다.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그 멋진 배리 페퍼가 연기하는 미 기병대 장교는 확실히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을 떠올리게 한다. 대륙 횡당 철로가 부설되면서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은 갈수록 황폐화되고 백인들의 탐욕은 끝없이 이어진다. 톤토에게도 ‘운디드 니’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미국의 역사였던 것이다.

 

 

 

미국의 서부개척사에 관심이 있으면 철로부설 장면을 유심히 보는 것도 재미있다. 중국인 쿠리가 열심히 침목을 깔고 공사를 한다. 거창한 개통식 장면은 1869년 5월 10일, 동과 서에서 철로공사를 해온 유니온 피서픽과 센트럴 퍼시픽 철도가 서로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차용한 장면이다. 정확한 지점은 유타 주 프로몬토리이다. 존 포드 감독의 1924년도 흑백 무성영화 <철마>(The Iron Horse)란 작품이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영화도 백인들이 인디언의 화살에 굴하지 않고 혈맥을 잇는다는 ‘백인중심 서부개척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박재환, 20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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