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야구를 사랑하라

2011. 11. 21. 14:30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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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감독 이름을 달고 있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있다. 이현세의 초특급 베스트셀러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1986년에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 작품은 원작만화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각기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는, 요새 말로 하자면 ‘루저’를 긁어모아 만든 ‘특이한 집단’의 이야기이다. 프로야구 경기에 정식으로 올라가기엔 왠진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하자가 있는, 비정상적인 사연의 선수들이 총집결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생의 대부분이 한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한을 풀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고,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다. 세월이 이만큼 흐른 뒤, 태평양 건너 미국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팀 단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팀이지만 구단주가 부자인 것도, 팀이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구단주는 제한된 예산으로 적당한 선수를 찾아 몸값으로 지불하고 시즌을 한 해 한 해 버티면 된다는 것이다. 챔피언이 될 야망도 없고, 연승을 구가할 의지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단장 빌리 빈(Billy Beane)은 새로운 생각을 한다. 대어급 선수를 스카우트할 돈이 없다면. 차라리 ‘없는 돈’으로 ‘최선의’ 선수를 긁어모아서 게임을 펼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선의 선수란 잘 생겼거나 의지에 불타거나 쇼맨 쉽이 있는 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출루율’에 봉헌하기만 하면 된다. 자 플레이오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기적

미국의 프로야구는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양대 리그로 진행된다. 각 리그 우승팀이 월드 시리즈 챔피언을 가린다. 뉴욕 양키스가 통상 27번으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14개 아메리칸 리그 팀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팀 중의 하나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였다. 1901년 필라델피아에서 창단되었다가 인기에 밀려 캔자스시티로,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이전한 역사가 있다. 이 지역을 연고로 한 팀은 애슬레틱스 말고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 다저스가 있다.

여하튼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애슬레틱스는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구단주에게 파격적인 선수를 영입하자고 해보지만 “그냥 없는 살림으로 최선을 다 하자”라는 이야기만 듣는다. 그런 그가 스토브 리그에서 선수영입을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다가 피터란 사람을 만난다.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피터는 모든 선수들의 경기 결과를 수치화하였고 최상의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야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빌은 피터의 수치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 이대호를 잡지 못할 거면 푼돈으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선수를 불러 모으는 거야!” 그가 데려올 선수는 사생활문란으로, 잦은 부상으로, 최고령의 이유로 다른 구단에서 외면 받은 선수들이다. 빌은 그나마 팀 내에 남아있던 빅 선수들을 내보내고, 남들이 외면하고 관심 없어하는 ‘루저선수’들을 헐값에 영입한다. 감독은 그런 단장의 작태가 도대체 맘에 들지 않는다. 스토브리그 동안에는 단장과 스카우터들이 언쟁을 펼치고, 시즌이 시작되자 단장과 감독의 트러블이 계속된다. 경기는 연패의 연속. 하지만 빌과 피터는 미친 듯이 ‘머니볼 이론’을 밀어붙인다. 감독의 라인업을 꺾지 못하자 단장은 기어이 시즌 중에 선수를 방출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미친 짓이라고 단장을 비난하지만 점차 놀라운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머니볼 이론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쇼 미 더 머니

프로야구 선수들은 천문학적 몸값을 자랑한다. 그들의 역량은 1년 단위로 평가받는다. 팬들은 그들을 보기 위해 야구장으로 몰려오고, 그들의 스윙과 역투에 환호를 보낸다. 한 시즌이 끝나면 각 구단은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그리고 더 좋은 선수를 잡기 위해 지갑을 푼다. 하지만 돈을 마구 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변호사와 회계사, 그리고 아마도 점쟁이까지 동원되어 내년도 성적을 위해 ‘최상의 선수’를 끌어 모을 것이다. 뉴욕 양키스 정도 되는  부자구단이거나, ‘이대호’를 붙잡기 위한 롯데가 아니라면 연봉협상은 적절한 수준에서 세팅된다. 그런데 돈 없는 구단이라면? 마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같다면? 구단주는 그렇게 챔피언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돈놀이에도 별로 관심 없고 말이다. 단장이 적정금액으로 적당한 선수를 조합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영화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보여주는 루저들의 복수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머니볼>이 야구영화이면서도 정작 ‘야구선수’들은 장기판의 ‘졸’이다. 어제까지, 아니 방금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라도 단장의 전화 한 통으로 ‘딴’ 팀 연고지 비행기 티켓을 받아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에서는 한국적 정서로서의 팀 결집력이나 공통의 목표라는 것을 느낄 수 없다. 당장의 승리, 그리고 오늘의 빅토리가 내일의 내 연봉일 뿐, 내 팀의 영광은 아니란 느낌이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많은 명감독이 있었다. 오대영에서 국민영웅이 되는 히딩크 스타일도 있고,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김성근 감독도 있다. 이게 팀의 승리를 위한 구단주의 선택인지 단장의 오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야구팬들의 정서와는 괴리된 머니게임일 것이다. <머니볼>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어제까지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우리 선수가 내일 저 팀 유니폼 입고 마운드에 서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모양이다.



빌리 빈은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선수기용, 나아가 선수영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 이론적 바탕은 수학적 통계의 머니볼 이론이다. 야구가 아무리 기록과 통계분석의 스포츠라지만 그런 수치가 장기간 레이스의 우월적 승률을 보장해 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게임 이론을 마스터한 팀이 두 팀, 세 팀 생기게 된다면 전체적인 판짜기는 더욱 난해해질 것인데 말이다. 게다가 기껏 영입한 선수의 팔꿈치가 탈이라도 났다면?

<머니볼>에서 빌리 빈 단장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한국을 방문하여 인상적인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4년 동안 오클랜드의 스타디움을 들락거리며 정을 쌓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팀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란다.

한국도, 미국도 프로야구 시즌은 끝났다. 이제 각 구단이 내년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머니게임을 펼치고 있다. 내년 야구 경기는 올해보다 더 재미있기를. 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시길. 그런데 이 영화는 야구영화이면서도 야구를 그다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참, 특이한 스포츠영화이다. (박찬호가 텍사스 팀에서 뛸 때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1962년생인 빌리 빈은 1984년 뉴욕 메츠 팀으로 MLB 데뷔를 하였고 미네소타 트윈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거쳐 1989년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선수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한 팀에서 겨우 1~2년을 버틴 셈이고 통상 2할 1푼 9리를 기록했다. 시원찮았던 선수경력이지만 199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이 단장이 되면서 자신의 야구인생, 메이저리그의 기록을 다시 작성한 셈이다.  (박재환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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