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 최후의 결사단] 1905, 로스트 히어로즈

2010. 1. 11. 13:5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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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중국어원제는 <시월위성>(十月圍城)이다. 아편전쟁 이후 홍콩이 영국에 할양된 후 빅토리아 시티를 중심으로 항구가 형성된다. '10월, 빅토리아성을 사수하라' 정도의 뜻이다. *

 
 작년, 2009년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해였다. 그들의 건국기념일인 10월 1일 천안문광장에서 최첨단 무기를 내세운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그들은 그들이 초강대국의 하나임을 대외에 과시했다. 모택동이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농민과 무산계급의 혁명성공을 대내외에 선포한지 60년이 된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그리고 지역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초강대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내보이고 있다. 영화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야 홍콩 느와르 이후 중국어영화라면 잊힌 장르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가끔가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느낄만한 중국산 대작영화들이 소개되고 있다. 중국영화판은 중국 자국의 경제력과 홍콩, 대만 등의 영화세력을 끌어당기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그것은 영화제작분야뿐만 아니라 극장산업 등 전 분야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그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한 편이 중국에서 개봉되었다. 바로 <시월위성>이라는 영화이다. 우리나라에는 <8인 최후의 결사단>이란 제목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2029 로스트 메모리즈>와 같은 대체역사소설같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1905년 당시 청 정부를 전복시키고 민국정부를 성립하려는 혁명아 손문의 짧은 홍콩 방문을 그린다. 손문은 이미 몇 차례 중국에서의 무력혁명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유럽과 미국, 동남아를 떠돌며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였다. 1905년에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10월 15일 홍콩으로 잠입하여 중국 각지의 혁명세력과 규합, 또 다른 봉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중국 청조(서태후)는 심복 장군을 홍콩으로 보내 손문을 처단하고자 한다.  아편전쟁, 그리고 남경조약에 의해 1842년부터 홍콩을 차지하고 있던 영국정부는 유력인사의 암살이라는 골치 아픈 외교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야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문을 암살자의 손아귀에서 막아내기 위해 홍콩의 열혈애국지사들이 목숨을 내걸고 보위전쟁-손문선생 경호작전-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다. 건국 이후 60년 휘황찬란한 발전도상의 중국인으로서는 중국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손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 매료될 만할 것이다.

홍콩 영화인의 영화夢

 이 영화는 홍콩의 진덕삼 감독이 10년을 준비한 작품이다. 진덕삼은 <신투첩영>,<엑시덴탈 스파이> 등의 액션영화감독으로 알려진 홍콩영화인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손문과 홍콩의 인연을 다룬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역시 같은 홍콩출신의 진가신 감독도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1905년 손문이 일본에서 잠시 홍콩에 들렀을 때 어떤 암살 작전이 진행되었다면 그 양상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손문은 중국과 대만에서 동시에 존경받는 ‘국부’이다. 그의 혁명노력으로 결국 수천 년의 중국왕조는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건국된 것이다. (물론, 그 뒤에는 일본의 침략, 국민당과 공산당의 건곤일척의 대결이 이어진다) 진덕삼은 장대한 역사드라마보다는 역사상 한 순간에 펼쳐지는 특별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바로 1905년 10월 15일 몇 시간에 걸친 손문의 홍콩 입항과 잠입, 비밀 아지트에서의 혁명 전략회의, 그리고 무사히 배를 타고 홍콩 부두를 떠나는 숨 막히는 일련의 움직임에 관심을 쏟은 것이다. 진덕삼의 프로젝트는 한 차례 좌절되기도 한다. 제작자(물주)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과 홍콩 간에는 CEPA협정이 체결되어 더욱 경제적으로 밀착된 관계가 되었고 영화판에서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여기에 홍콩영화계의 거물이며 재주꾼이 진가신이 본격합류하며 영화제작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진가신의 <명장>이 대성공을 거두며 중국영화와 홍콩영화는 결국 ‘중국영화’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905년 홍콩 부두와 그 일대를 고스란히 세트로 만든다. 4,300만 위안을 쏟아 부으며 상해 근처에 ‘올드 홍콩’거리를 재건한 것이다.

중국스타들의 향연

[시월위성]은 기대작답게 출연진들도 초호화판이다. 영화 시작하면 곧바로 홍콩의 근대학당의 스승이 혁명불가피론을 설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가 바로 홍콩의 장학우이다. 이 영화에는 여명, 사정봉, 임달화 등 홍콩스타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년 중국영화계에서 최고의 출연수익을 올렸다는 견자단이 심중양이라는 역할로 나온다. 그는 도박에 빠져 아내와 헤어지고 청조를 위해 심부름꾼을 하다 나중에 손문 보위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장엄한 역할을 맡는다. 청조 왕조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는 염효국 역으로는 중국의 연기파 배우 호군이 출연한다. 여명은 거지 분장으로 등장하여 가장 충격을 준다. 몰락한 가문의 인사이다. 그의 회상 씬에서 그의 연인 역으로 잠깐 등장하는 배우는 홍콩스타 이가흔이다. 가장 중요한 손문 역은 중국의 장함여가 맡았다. ‘진짜’ 손문 역보다 더 중요한 ‘가짜’ 손문 역을 맡은 배우 왕백걸은 대만의 신예배우이다. 한국영화팬에게는 낯선 인물이지만 경극반의 방홍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이우춘이다. 한때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인 노래대결’ 프로그램의 우승자이다. 이 영화 개봉 후 그의 팬클럽들이 극장흥행을 주도한다는 뉴스가 나올 만큼 캐스팅 기획력도 수준급이다. 소림사 스님으로 나온 거한은 바특이라는 NBA활약 농구선수이다.



애국의 방식, 신념의 방식

  홍콩 액션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오락영화의 전범을 보여준다. 정해진 시간 내에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청조 암살범과 그에 맞서는 애국지사의 대결구도는 관객의 긴장감을 줄곧 붙잡아둔다. 청조 암살범의 수뇌는 염효국 장국(호군)이다. 그도 한때는 서구에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이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충정이 있다. (당시의) 국제정세와 혁명추이로 보아 청 왕조를 보위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손문 같은 불순세력 처단에 거리낌 없이 나서는 것이다. 그와 맞서는 세력 중에는 혁명의식과는 상관없는 존재도 있다.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복수로 보위전쟁에 나선 방홍(이우춘)이나 자기가 모시는 도련님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인력거꾼(사정봉)처럼 말이다. 혁명과 반혁명의 대척점에서, 도도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임무가 정확히 어떤 여파를 남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역사와 영화

  그럼, 1905년 10월 15일 손문은 홍콩을 비밀리에 방문했나? 물론 아니다. 손문은 1895년 이래 줄곧 중국을 떠나 외지를 떠돌아다녀야했다. 곳곳을 돌면 화교사회에서 유세를 펼치며 왕조의 몰락과 민국의 수립을 설파했다.(그는 1896년 영국 런던의 청나라 공사관에서 납치되기도 한다. 이때의 일을 <<런던 조난기>>로 남긴다. 이 영화에도 이 책이 잠깐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떠돌며 혁명의 불길을 키우던 손문은 1905년에 일본에서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혁명회를 세운다. 손문의 이러한 ‘광폭행적’에 대해서는 이후 많은 비평이 따른다. 실제 그가 손잡은 일본세력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양심적인 민주세력’은 아니고 일본에서 보자면 극우보수주의 세력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손문의 혁명노력 때문에 중국각지에서는 혁명/봉기가 잇달아 일어난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 처형이 이어졌지만 결국 1911년 11월 무창기의의 성공으로 청조 왕조는 막을 내린다. (자금성의 황제자리에서 물러날 인물은 5살짜리 마지막황제 푸의였다!) 이듬해 1912년이 바로 민국 원년인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자유민주국가 중국이 들어선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야심가와 더 위험한 군벌들, 그리고 그 끔찍한 외세가 중국을 호심탐탐 노리며 갈기갈기 쪼개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모택동이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이 영화 첫 장면에서 손문 이전에 혁명을 설파하다 암살당하는 장학우가 연기하는 인물 양구운(楊衢雲)은 실존인물이다. 홍콩에서 첫 혁명조직인 보인문사(輔仁文社)를 조직했던 인물이다. 영화처럼 청정부에 의해 암살당한다. 양가휘가 연기하는 인물 진소백(陳少白)도 실존인물이다. 그는 홍콩에서 <<중국일보>>를 발행하며 손문의 혁명정신을 선전하였기에 청정부로서는 손문 등과 함께 눈의 가시였다.  영화에서 진소백(양가휘)의 신문사와 혁명자금을 대는 부호로 등장하는 인물 이옥당(왕학기 분)과 그의 아들 이중광(왕백걸 분)도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이욱당(李煜堂)-이자중(李自重)부자이다. 이욱당은 홍콩에서 큰돈을 번 실업가로 친구인 진소백에게 혁명자금줄 역할을 했다. 영화에서는 아들이 예일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 이자중은 일본에 유학 갔다가 손문의 혁명정신에 빠져들어 동맹회활동을 이끌었다. 영화에서처럼 처절한 죽음은 아니다.

영화의 대성공


이 영화는 개봉 전에 이미 대성공이 예상되었다. 지난 연말 중국의 영화당국은 당 고위인사와 중국주재 외교관을 초청하여 시사회를 가졌다. 중국이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며 최고작품으로 선정한 것이 바로 이 영화였다. 이 영화는 지난 12월 18일 중국에서 개봉되어 이미 2억 7천만 위안을 벌어들이며 흥행대성공을 거두었다. 중국에서는 대박영화의 기준이 1억 위안이었는데.. 작년부터는 1억 위안을 훌쩍 뛰어넘는 영화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주 중국에서 개봉된 <아바타>는 아마 5억 위안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영화 /극장산업의 폭발적 성장세와 관련하여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아바타>가 개봉되며 일부 극장에서 입장료가 올랐다. 중국의 경우 180위안짜리도 등장했다. 우리 돈으로 ‘3만원’이다. 중국의 영화시장은 그네들 경제 상황만큼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 특히 민국사(民國史)에 관심이 많은 사학도라면 이 영화 필견의 작품이다. 또한 중국영화산업에 관심이 있는 영화인이라면 이 영화제작방식에 관심을 기울일만할 것이다.   (박재환, 20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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