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영화 중 이런 영화가 있다. <戀戰沖繩>(연전충승). ‘충승’(沖繩)은 일본 열도 남쪽 저~ 밑에 있는 그림 같은 섬 ‘오키나와’이다. 제목을 보자면 ‘오키나와에서의 사랑전쟁’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장국영과 몇몇이 오키나와까지 가서 와당탕탕 소동을 펼치고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사랑을 확인한다는 그런 내용이리라. 누가 나오나. 장국영과 함께 왕비(왕페이), 양가휘가 나오고, 일본에서 찍으니 일본배우도 나온다. 기대된다. 감독은 진가상 감독이다. 사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홍콩의 한 호텔에서 뛰어나 삶을 마감했다. 죽기 몇 해 전까지 그가 출연했던 영화는(홍콩개봉일 중심) <성월동화>(99.4.1), <유성어>(99.10.14), <창왕>(2000 .5.27), <연전충승>(2000.7.28), 그리고 유작이 되어버린 <이도공간>(2002.3.28)이다. 이인항 감독의 <성월동화>는 홍콩의 명소를 예쁜 그림엽서처럼 뽑아내었기에 한 동안 장국영 팬들에게 성소(聖所) 혹은, 홍콩 관광코스로 만들었다. 아마 그 영화이미지 영향인지 <연전충승>도 <성월동화2>라는 뜻밖의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하등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멋진 제복의 장국영을 보여준다. 장국영은 은행 보안요원(경비원)으로 분장하여 은행의 비밀 금고에서 뭔가를 훔쳐낸다. 그가 훔쳐낸 것은 일본 야쿠자 보스 사토의 비밀일기. 그것을 미끼로 큰돈을 뜯어낼 생각이다. 사토는 자신의 애정행각이 적나라하게 기록된 ‘다이어리’를 인터넷으로 공개한다는 협박에 거액을 지불하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토의 가장 최근 애인 왕비가 돈을 들고 사라진 것이다. 사토는 도망간 애인과 사라진 돈을 찾아 오키나와 일대를 뒤지기 시작한다.
한편 홍콩 경찰에서 보잘 것 없는 문서처리 업무를 맡고 있는 양가휘는 여친과 여친의 친구와 함께 오키나와에 휴가 온다. 그런데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위험에 처한 여자를 도와준다. 그 여자? 야쿠자에게서 도망 나온 왕비이다. 양가휘는 첫눈에 왕비에게 반한다. 왕비는 홍콩 갱스터 무비를 좋아하는 여사장의 호의로 그림 같은 오키나와의 한산한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게 된다. 이곳에 손님으로 온 장국영 역시 첫눈에 왕비에게 맘을 빼앗긴다. 양가휘, 한 번 슬쩍 장국영을 보는 순간 그가 유명한 범인이란 것을 알아챈다. 그리곤 일거양득의 작전을 펼친다. 장국영을 꼬셔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우고, 현장에서 그를 체포하겠다는 작전. 원래 목적은 왕비를 독차지하는 것.
왕비에게 홀딱 빠져 같이 온 여친은 내팽개치는 양가휘. 양가휘에게 버림받은 여친은 바에서 술을 마시다 그만 야쿠자 보스 사토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바람둥이 기질이 있던 장국영 또한 왕비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고... 아 어찌 될거나.. 이 얽히고설킨 사연과 사모와 사랑의 난장판을. 오키나와 바다는 변함없이 눈이 부시도록 푸른데 말이다...
홍콩영화계는 예나 지금이나 외국과의 합작, 외국 로케이션 등에 열성적이었다. <성월동화>에서는 토카코 토키와(常盤貴子)가 출연했었고 <성월동화2>, 즉 <연전충승>에도 일본배우가 출연한다. 로맨틱(?) 야쿠자 보스 사토 역을 맡은 배우는 가토 마사야(加藤雅也)이다. 이 배우는 양동근의 <바람의 파이터>에도 나왔고 최근 성룡의 <신주쿠 사건>에도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왕비에게 카페 일자리를 주는 조금 황당한 여자는 아스카 히구치(通口明日嘉)이다. 이 여자는 그 후 많은 홍콩 액션 영화에 등장한다.
사실 <오키나와 랑데부> 이 영화는 그 영화의 완성도나 배우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해졌다. 장국영이 죽은 이후로는 말이다. 그냥 장국영의 숨소리와 눈빛만 보아도 행복해지는 그런 불가사의한 영상물로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장국영은 여전히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남자이고, 영화란 것이, 연애란 것이, 삶이란 것이 결국 장난스러운 일장춘몽이란 걸 아는 모양이다. 그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오키나와의 태양과 눈부신 바다에서 행복감을 느꼈기를 기대할 뿐이다.
왕비는 <중경삼림>에서의 연기랄 수도 없는 기이한 연기로 꽤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짜 연기랄 수도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구석이 있는 여배우임을 확인시켜준다. 양가휘는 역시 드라마면 드라마, 코믹이면 코믹 등 천의 얼굴을 보여주는 매력덩어리임에 분명하다. 양가휘의 여친으로 나오는 여자(黎姿)와 차완완(車婉婉)도 조연으로서는 딱 제격이었다. 극중에서 건들거리며 “이놈 그냥 확~ 죽여 버릴까?”라고 말하는 장국영의 단짝 곡덕소도 코믹 영화감독답게 코믹연기를 잘 해낸다.
영화에서 장국영과 왕비가 듣는 올드 팝은 플래터( The Platters)의 명곡 “The Great Pretender”이다.
극중에서 그림 같은 오키나와 섬에서 그들이 묵는 호텔은 ANA 만자호텔이다. ‘만자’는 ‘万座毛’로 현지말(?)로 ‘만 명이 앉을 수 있는 널따란 초원’이란다. 안 가봐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장국영이 처음 야쿠자 사토에게 돈 만나는 그 초원인 모양이다. 저 멀리 호텔이 보인다. 구글 맵에서 바로 확인이 된다. 박재환 (200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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