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성] 홍콩인의 초상

2008. 2. 16. 11:2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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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1999/4/23]    영화는 재미있게 잘 보았다. 원래 '여명+서기' 나온다기에 '여명+장만옥'이랑은 다를 것은 분명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여명은 여명이고, 장완정은 장완정(주윤발 나온 홍콩멜로물의 명작<가을날의 동화>감독임)인 것이다. 그러니 그저그런 멜로물로 접어두기엔 좀 아까운 구석이 있는 영화이다. 그것은 아마도 홍콩인의 정체성을 다룬 또하나의 역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이 중국에 넘어간 후 그 홍콩인들이 어떻게 될지는 우리보다 그 사람들이 더 고민하고, 고뇌하고, 방황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그랬을 것이다. <첨밀밀>의 경우는 그들은 미국으로 도망간다. 홍콩-중국의 못 이룬 사랑을 미국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첨밀밀>의 감독 진가신도 미국 헐리우드로 진출한다. 그의 첫 헐리우드 작품은 <러브레터>이다. 물론 이와이 슈운지의 잉글리시 버전이 아니다. 케이트 캡쇼 나오는 드림웍스작품이다. 이 영화 개봉일이 <스타워즈 팬텀 메너스> 주여서 좀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모두들 스타워즈 보러갈때 표 못 구한 사람이 어쩔수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나)

이 영화는 깔끔한 멜로드라마이다. 여명과 서기는 1960년대 말 홍콩의 한 기숙사 딸린 학교의 학생신분으로 처음 만난다. 그들의 첫 만남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한해 한두번 겨우 겪게 되는 그런 행사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대학 기숙사에선 오픈 하우스란게 있는데 이 나라에선 여자 기숙사 꼭대기에 있는 종(댕~땡~ 울리는 종루의 종)을 용감한 남자 기숙사생이 저지선을 뚫고 쟁취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접근을 불허하기 위해 호스를 이용하여 물대포- 적극 저지한다. 하지만 우리의 용감한 여명은 물벼락을 뚫고 그 종을 차지한다. 그때, 여학생중 한 여자를 보게 되는 데 바로 서기이다. 여학생동 403호, 최고 미녀 서기란다. 우와 그럼, 다음 이야기는 둘의 로멘스, 연애담을 보게 되겠네.뭐.

사실 그렇다. 여명은 학내에서 뭐든지 잘 하는 남자다. 욕도 잘한단다. 50개 단어의 욕으로 한 문장을 만드는 대회에서 1등했단다. (음. 이 장면이 재미있다. 여명이 식탁 테이블에 올라가서 연신 손가락질을 해대며 - 물론 아무 소리도 안 나온다. 하지만, 여명이 끝내주는 욕을 하여 1등 했단다. 외국어배울때 호기심 자극을 위해 사용하는 몇가지 교수법중에 이런게 있다. 오성식처럼 노래를 가르친다거나, 첨밀밀의 도일 선생처럼 욕을 가르친다. 내 주위에도 중국어 욕부터 배우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둘의 연애에서 아름다운 장면이 많다. 아니 좀 있었다. 서기가 한 밤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다가 여명이 그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분위기있는 기숙사 길을 올라갈 때. (중동에선 자전거를 같이 타면 결혼해야 된다는 속담이 있다고 <내일을 향해 쏴라> 영화보면 그런 대사 나온다!) 어느 기숙사 축제하던 날. 둘은 달밤이 교교히('교'字가 어느 자인지는 몰라도 정말 그 말에 딱 맞는 분위기 만점의) 비치는 홍콩의 기숙사의 뒷뜰에서 처음... 처음... 처음... 처음... 처음... 서기가 그런다.. 안돼. 정식으로 할때까진 기다려.. 그랬단다. 키스조차 못한 이 불쌍한 연인은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모양이다. 그리고, 홍콩의 혼란의 한 시절을 보내며 남자와 여자는 헤어지게 되고. 둘의 가슴아픈 기다림과 절망의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여자가 그런다. "둘이 헤어져 있을때 가장 사랑했었던 것 같았어.."라고. 그리고 각자 유부남, 유부녀가 되었고, 다시 만나서 다시 옛사랑이 되살아나고... 뭐 그런 식이다.

중간에 몇 가지 장면이 남는다. 우선 데모 장면. <조어대는 우리편?> 뭐 그런 플래카드가 잠시 나온다. 釣魚臺는 중국북경의 고위관리들이 일하는 곳이다. 쉽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청와대, 혹은 여의도는 우리 편.. 이런 이미지이다. 여기서 그저 여명 팬이라면 여명이 민주투사쯤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홍콩은 영국 치하일테니 무슨 민주람? 때는 1968년도쯤이다. 물론 1968년이라면 프랑스에서부터 좌파의 열풍이 불던 때였고, 홍콩 또한 마찬가지였다. 홍콩에서는 폭동이 있었던 해이다. 이 당시의 역사는 사실 가려진 것이 많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와중이었고, 지금 당장이라도 영국의 제국주의 놈들을 쫓아내고 홍콩을 접수하자 라는 홍위병의 혁명열기로 들끓던 때였다. 이러한 과격홍위병을 막았던 것이 주은래였다나. 만약 1968년에 홍위병이 홍콩에 들이닥쳤더라면- 당시에 영국이 홍콩을 보존하기 위해, 중국에 군함을 파견하고 어쩌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미국은 당시 중국과는 국교조차 맺고 있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홍콩 다음이 대만일 터이니 이 사태는 사실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주은래는 이들을 막았고, 어쨌든 인류역사상 가장 처참한 사태는 모면하였다. 그때 홍콩이 중국 밑에 갔다면, 주윤발도 장국영도 왕가위도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중국대륙의 혁명 열기는 곧장 홍콩에도 전해진다. 특히 캠퍼스엔 말이다. 이건 우리나라 1980년대 대학가에서 쉽게 김일성 이야기가 전해지듯 말이다. 젊은 사람들은 혁명의 흡입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좌파지식인과 무산계급을 충동하던 어수선한 때였다. 여명이 시위도중 입고 있는 티셔츠를 잘보면, 바로 '체게바라'얼굴이 그려져 있다. 남미에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그 체 게바라말이다. 체 게바라는 또한 마오주의자(모택동주의자)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명은 공산주의 운동까지는 안 갔더라도 어떤 혁명의식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물론, 이 영화는 멜로물이고, 우리가 홍콩의 1960년대를 이해못하니, 그가 어떤 데모를 했는지는 사실 몰라도 된다.

이 영화에서 이데올로기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더욱 맥 빠지는 것은 훌쩍 커버린 이후, 둘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서기는 홍콩에서 비교적 성공했고, 여명은 유럽유학후, 미국에서 성공하여 홍콩으로 잠시 돌아온다. 두 사람이 만나서 옛 일을 기억할때 여명이 그런다.
"사상이란 바람 같은 거야. 열병같았다고나 할까. 한번은 치러야할 열병." 서기가 그런다.
"혁명이란 젊음에 비유할 수 있어.그 나이에 따라 궤를 같이 하지."

물론 여기서 영국의 정치 격언 "젊어서 공산주의에 경도되지 않으면 절망적이고, 늙어서도 공산주의에 남아있다면 그건 멍청한 짓거리이다" 뭐 이런 말을 옮길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도 적어도 요즘와서 다시 신문지상에서라도 찾아지는 386세대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래도 지난 10여 년동안 우리나라 캠퍼스에서도 그만큼 고뇌와 갈등으로 방황하던 학생, 젊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그 또래들이 교정에서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통일? 혁명? 민주? 인권? 우하하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취업때문에 제 코가 석자일텐데 말이다.

영화는 1996년과 1997년이 교차된다. 아버지 세대-여명과 서기-가 죽는 것은 1996년 12월 31일이다. 그들이 최후를 맞는 것은 영국 런던이다. 남들은 빅벤이 보이고, 홍교(런던 브릿지)에서 신년맞이 카운터다운을 할때 그들의 차가 뒤집어져서 죽는 것이다. <첨밀밀>에서 홍콩의 자유가 미국에서 이루어진다면, <유리의 성>에선 홍콩의 민주가 영국런던에서 전복되는 것이다. 이는 뭐 심각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딱 1년뒤. 1997년 7월 1일 20세기 전 지구 인류가 지켜보는 마지막이며 최고의 축제가 홍콩에서 있었다. 정확히 00:00 영국측 찰스황태자와 중국의 강택민이 차례로 대형화면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그것을 배경으로 그들의 아들세대가 아버지세대를 분장한다. 여명과 서기를 화장한 재를 축포에 담아 함께 밤하늘에 불꽃으로 수를 놓는 것이다. 이 영화 포스터의 불꽃놀이장면은 바로 그 장면이다. 꽤나 멋있다.

음. 내가 여명을 처음 안 것은 이전에 여명이 아주아주 착하다는 기사를 중국어로 읽었을 때이다. (요즘와서는 아마 그때 내가 해석을 잘못했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된다) 그러니까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뭐 이렇게 차례로 우리나라에 소개될때 비교적 늦게 나타나서는 각종 자선사업에 적극 나서는 착한 배우라는 것이었다. 그는 깔끔한 생김새에 호감을 가질만했다. 그런데 이게 지난달 자살헤프닝(오보인 셈인데 어쨌든 그 일로 더욱더 까발라진) 이 배우는 여명은 워낙 바람둥이 배우이다. 뭐, 결혼 안한 젊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뭐. 게다가 연예계에 있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비디오로 안 찍힌게 어디야. 얼마전 상해에서 여명 전기(자서전은 아니고, 연예부기자가 쓴 여명이야기)를 한권 구했는데 요즘 보고있다. 다 보고 여명 이야기 해 줄께.

그런데 서기는 누구인가. 이번 일로 좀 알아보니, 이 여자 정말 굉장한 여자였다. 아마, 메리만큼 특별한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대만출신으로 홍콩에서 이런 저런 비디오급 영화에 출연해서는 현재 확실히 인기 스타로 자리잡았다. 여명과의 말도 안되는 스캔들이 있고 나서 그의 사진첩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말이다. (인터넷에는 이미 그의 올 누드 사진 수십 장이 나돌아다닌다. 이전에 우리나라 이승희보다 더 인기있다. 적어도 중국어권에선 말이다)

에... 그리고, 사실 여명, 서기가 지는 해라면 뜨는 해로서 두 사람을 주목할만 했다. 바로 그들의 아들 딸로 나오는 수지와 마이클 이라는 애들. 수지는 니콜라 청(Nicola Cheung)이다. 중국어로는 張신悅이다. 이 영화에서 그 배우는 꽤나 깔끔한 인상을 남겼다. 홍콩대 법학과를 나온 재원이란다. 그녀가 나온 영화는 <유리의 성>이전에 세 편이 있었다. <完全結婚手冊(96年)>袁詠儀, 양채니 진소춘주연, <求戀期(96年)> 雷頌德, 古巨基주연, <戇星先生 (97年)> 袁詠儀,葛文煇주연 영화였다.

그리고, <트라이 투 리멤버> 노래가 좋았다는 것을 끝으로 이야기 마친다. 영화는 원래 이미지로 남는 것이 많다. 이 영화로 몇몇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특히 빨간 우체통이나, 마치 핸드폰 CF같은 빗속의 두 연인 장면들이 말이다

City of Glass (1998)
감독: 장완정
주연: 여명, 서기
한국개봉: 1999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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