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정원] 그 할아버지의 오래된 비밀 (소마이 신지 감독,1994)

2025. 9. 8. 07:52일본영화리뷰


 <이사>, <여름정원>, <태풍클럽> 등 소마이 신지(相米慎二, 1948~2001) 감독의 영화가 잇따라 개봉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80~90년대 작가주의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후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시네마테크 등을 통해 소개되었던 그의 작품을 극장에서 온전히 감상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여름정원>은 1994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었고, 작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DVD와 해외영화제에서 리바이블 상영되었다. 영화는 1994년의 일본 고베의 한적한 주택가, 고즈넉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키야마, 카와베, 야마시타는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죽마고우, 영혼의 단짝친구들이다. 할머니의 장례에 다녀온 야마시타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호기롭게 이야기해준다. “2시간 동안 화장하고 나면 뼈만 남아.” 그러자 카와베가 동네의 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혼자 사는 그 할아버지 오래 못 살 것 같대. 그러니 우리가 할아버지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보자”고. 이 호기심 많고, 엉뚱한 친구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안마당엔 잡초만이 무성한 할아버지의 단독주택을 기웃거린다. 한바탕 혼이 날 것 같았지만 의외로 할아버지와 세 꼬맹이는 이내 친해진다. 같이 마당의 잡초도 뽑고, 꽃씨도 뿌리고, 집안 청소도 하고, 문도 고치고, 빨래도 같이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집은 세 친구들의 놀이동산과 휴식공간이 된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 할아버지가 걱정이 된 아이들이 그 집을 찾는다. 아이들은 평소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어본다. 왜 혼자 사는지, 결혼은 했는지, 자녀는 있는지. 할아버지는 그제야 오래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야기는 따분한 학교생활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괴소문의 진상을 직접 밝히려고 모험을 떠나는 구조이다. 마치 스티븐 킹의 <스탠드 바이 미>처럼. 예상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도깨비도 아니고, 비밀의 정원도 아니다. 그런데, 평화롭고, 아름다운 인생의 이야기는 태풍과 함께 ‘태평양전쟁’의 트라우마에 내던져진다. ‘덴포 키하치’ 할아버지는 전쟁 때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잔혹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 끔찍한 기억이 결국 가족과의 이별과 끔찍하게 고독한 노후를 만들었는지 전해준다. 

 ‘삼인조 친구’ 중에 카와베는 가족해체의 아픔을 혼자서 속으로 삭이는 아이이다. 그 아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그런 카와베 때문에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덴포 할아버지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할아버지의 집에는 이미 말라버린 깊은 우물이 있고, 마당에는 죽은 나비가 있다. 아이와 할아버지는 여름의 푸르른 코스모스와 함께 언제나 죽음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드라마인 셈이다. 

 어쩌면 <여름정원>은 <키쿠지로의 여름> 같은 목가적인 풍경이 아니라,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참전군인의 죄책감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것인지 모른다. 

▶여름정원 (원제: 夏の庭/ The Friends) ▶감독:소마이 신지(相米慎二) ▶출연: 미쿠니 렌타로(덴포 할아버지), 사카타 나오키(키야마), 오 타이키(카와베), 마키노 겐이치(야마시타) 나호 토다(콘도 선생님) ▶수입:찬란 ▶배급:에이유앤씨 ▶개봉: 2025년 8월 6일/114분/12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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