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무문 = 끝없는 용기=정무문2] 성룡의 정무문 (나유 羅維 감독 新精武門 New Fist of Fury 1976)

2008. 2. 14. 22:13홍콩영화리뷰

(박재환 2002/5/7)  전설이 되어버린 홍콩 쿵후의 왕별 이소룡은 1973년 7월 20일 홍콩에서 갑작스레 숨졌다. 공식 사인(死因)은 brain edema(뇌수종)이라고 한다. 그의 걸작 쿵후물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 바로 72년도 작품 <정무문>이다. <정무문>은 <황비홍>만큼이나 중요하다.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중국인의 웅혼한 기상을 펼쳤던 무예인 진진(陳眞)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에 유학가 있던 진진은 사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귀국한다. 사부는 상하이에서 쿵후도장인 정무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세력이 민족혼을 심어주는 이 도장을 폐쇄하기 위해 사부를 독살한 것이었다. 진진은 사부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차례로 일본 무술 고단자와 대결을 펼쳐 그들을 꺾는다. 마지막 장면은 정무관 밖에서 총을 들고 그를 기다리는 일본군을 향해 분노의 발차기를 하는 스톱 모션으로 끝난다. <정무문>에서 다룬 진진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픽션이다. 정무도장의 사범 곽원갑은 실존인물로 일제치하의 중국에서 무술을 전수했었다. 그의 가문에서 내려오던 무술비기가 바로 '미종권(迷踪拳)'이었다.

  곽원갑의 비기(秘技) 미종권과 그의 수제자 진진의 이야기는 이소룡에 의해 찬란하게 부활한 이래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이연걸도, 주성치도, 그리고 홍콩에서는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성룡은 이소룡의 <정무문>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이소룡은 미국에서 돌아와 최고의 액션스타로 등극하였고 성룡은 대역배우, 엑스트라로 홍콩영화계 바닥생활을 할 때였다. <정무문>에서 성룡은 이소룡 대역도 했고, 이소룡의 발차기에 저만치 나가 떨어지는 스턴트도 했었다.

그런 성룡이 이소룡의 사후에 <정무문>의 후속편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이다. 성룡의 필모그라피에서 최초로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신정무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끝없는 용기>라는 타이틀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아마 정철 감독이나 호금전 감독의 출시작처럼 꽤나 비싸게 거래될 것이다. 아니면, '성룡 초창기영화'나 '정무문'의 가치를 몰라서 먼저 뒤집어선 채 구석에 처박혀 있던지.   

  영화는 <정무문>의 뒷이야기이다. 물론, 픽션이다. <정무문>의 마지막 스톱 모션에서 '진진'은 죽는 모양이다. 상하이에서 더이상 무도관을 운영하지 못하게된 정무문의 사범과 사제는 밤에 배를 타고 대만으로 밀항한다. 하지만 대만에도 이미 일본군 세력이 들어왔고 일본무도관(大和)이 세력을 확장하며 토착 쿵푸 무관들을 하나씩 접수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정무문>에 나왔던 '묘가수'는 진진의 무도정신과 중국인의 자긍심을 살리기 위해 정무관을 연다. 좀도둑에 불과한 아룡(성룡)은 무술을 배우는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침략자 일본인이 무척 싫다. 정무관의 사부가 급사하고 정무관이 일본 무술고단자에게 쑥대밭이 되는 것을 본 후 성룡은 비로소 무술을 배우기로 한다. 그의 뛰어난 무술실력에 묘가수는 정무문의 정통비기인 '미종권'을 가르쳐준다.

  마침내 결전의 날. 모든 쿵후도장의 사범들을 집합시킨 자리에서 일본 고수는, 대화도장의 세력으로 들어오든지 죽음을 택하라고 협박한다. 성룡은 처철한 격투 끝에 이들을 물리치고, 일본놈을 쳐부수자고 문을 나선다. 이때 밖에서 기다리던 일본군들이 총탄을 쏟아 붓는다. 아룡은 장렬하게 산화한다. THE END..

최근 위성TV 스카이라이프의 영화채널에서 흥미로운 영화가 방영되었다.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의 초기작품들-그러니까 영국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무성영화들이 차례로 방영되고 있고, 성룡의 초기 영화들-그러니까 <취권>이전의 작품들이 방영되었다. 아쉬운 것은 성룡 영화가 모두 영어더빙 버전으로 방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 <신정무문>도 영어 더빙이다. '미종권'은 'Fist of Fury'로 소개된다.

  성룡의 자서전 <<我是誰 成龍自述>>>을 보면, 성룡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이소룡의 스타일로 연기한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당시 최고의 쿵후스타였던 묘가수와 공연한 것에 대해서는 즐거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에서 성룡이 부서진 <정무도장>의 간판을 어깨에 들쳐매고 사제를 이끌고 도장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오는 것 같은 비장미가 있다. 그런 성룡을 바라보던 묘가수의 눈에 이소룡의 모습이 두어번 인서트된다.

<신정무문>은 <정무문>의 로 웨이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성룡은 <취권>으로 스타가 될때까지 로웨이 감독의 <소림목인방>, <신권> 등 여러 영화를 찍었었지만 그와의 작업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복잡한 계약에 의해 로웨이에게 묶여있었던 모양이다.

 성룡 나이, 스무 둘!

  작년에 국내에 출판된 <<중국무협영화>>(오현리지음/한숲출판사)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 성룡의 성형수술 받기 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스물을 갓 넘긴 성룡의 모습은 지금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정말 더벅머리 선머슴 형상이다. 이후 수많은 액션영화를 찍으면서 수많은 부상을 입은 그는 조금씩 얼굴을 '뜯어'고친 모양이다. 성룡의 진지하고도 박력있는 액션을 볼 수 있다.

   이소룡의 <정무문>도 그러하지만 당시 중국인들이 일본놈을 얼마나 미워하고 깨부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박재환 2002.5.7) 

 

 

新精武门 (1976年电影)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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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精武门(1976年成龙主演电影)_百度百科

摄影 陈荣树Chen Jung Shu、陈朝镛Chan Chiu Yung、陈钟源Chan Chung Yu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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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2019.12.28 22:54

    배우만 강조하고싶은 대중심리에 의해 저평가된 영화같군요 라유감독의 역량으로 본래정무문 버금가는 훌륭한영화였고 성룡도 이 배역을 맡음으로써 출세의 실마리를 얻은것같습니다 성룡이 그랬을것같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출연을 폄하할수는 없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