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마 ‘해변의 자마, 밀림의 비쿠냐 포르토’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2017)

2021. 10. 31. 14:483세계영화 (아시아,아프리카,러시아,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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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마] 스틸

(2021년 8월) 25일 개봉하는 아르헨티나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자마](원제:ZAMA)는 우리에겐 낯선 공간, 잘 알지 못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다. 그 남자의 고통은 시대적 상황에서 기인한다. 18세기 말, 스페인에서 왕에 의해 저 먼 남미 땅, 식민지에 왕실관리로 근무하고 있는 관리는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에서 발버둥 친다. 영화는 1956년 안토니오 베네디토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겼단다. 

 영화는 따라잡기 힘들만큼 느릿느릿, 띄엄띄엄 서서를 이어간다. 식민지 작은 마을에 근무하는 디에고 데 자마(다니엘 지메네스 카초)는 치안판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그다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거나 원주민을 수탈하는 제국주의 충실한 종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쩌며 영화 [자산어보]에서 보았던 말단 관리 조우진의 처지와 비슷해 보인다. 자마는 이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가족은 저 멀리 있고 아마도 가끔 오가는 편지로 보아 관계는 소원하다. 식민지 원주민 틈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은 고통스럽다. 좀 나은 곳 레르마로 옮겨가고 싶어 하지만 거의 생사여탈권을 쥔 듯한 상사(총독)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자마가 그 지위에 오르기까지 그 어떤 지성도, 정치력도, 그렇다고 상사와의 교감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왕의 전근명령서가 도착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자마의 삶은 끝없이 추락한다. 

영화 [자마] 스틸

왕의 관료로서, 치안판사인 그가 다루는 송사도 수준 높은 게 못된다. 그나마 노예나 이권문제에 대한 재판도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뿐인 보조판사도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게 전근의 꿈은 무산되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는 뜻밖의 선택을 한다.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도적떼 두목인 비쿠냐 포르토를 잡으려는 토벌대에 합류한다. 군인이 되어 공을 세우려는 그의 뜻은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화 [자마]는 식민지, 제국주의 왕의 관료라는 막강한 권위에 어울리지 않는 허망한 관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라는 거대담론을 꺼낼 것도 없이 아이러니한 관계를 조금씩, 거칠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이에 낀 중년 남성의 꺼져가는 욕망이 우선 눈길을 끈다. 자마는 원주민 여자들을 훔쳐보고, 끝없이 백작부인을 유혹해 보려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송사에 참여한 혼혈 원주민 여자에게 눈길을 보내지만 무시당하기까지 한다. 허망하게 뭔가를 기대해보지만 절망적 상황이 더해질 뿐. 

영화 [자마] 스틸

 영화의 첫 장면에서 자마가 입은 옷은 그런대로 관리의 위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거의 버려진 식민지 땅에서의 ‘삼류의 삶’이 계속되면서 관리의 빈약한 건강상태만큼 입은 옷은 남루해 간다. 영화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죽을 때까지 앞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는 자기를 육지로 떠미는 물과 싸운다. 인내심 강한 물고기는 자기를 쫓아내려는 물속에서 계속 머무르려 한다.” 물고기는 자마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자마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운명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저 멀리 자신을 파견한 스페인의 높으신 왕에게는 이미 잊힌 존재일 뿐인데 말이다. 마치 그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한 대사도 나온다. “법 집행자이자 원주민 조정관, 국왕의 대리인인 그는 겁이 없고 정의를 행한다”고. 하지만 “늙어서 태어나 죽지 못하는 신이며,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란다. 

영화 [자마] 스틸

18세기 말, 스페인에서, 부에노아이레스에서 저 멀리 떨어진 남미 대륙 어느 오지에서 관리 자마는 정의롭지도, 신사도 아니다. 비쿠냐 포르토를 잡으려 나서는 길에서도 용맹함을 찾을 수 없다. 영화는 [아귀레, 신의 분노]의 길을 따라 가지만 커츠 대령 같은 카리스마를 결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느릿느릿 이어지는 자마의 무거운 발걸음에서 식민지 관리의 명백히 잘못된 삶과 예정된 죽음의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누가 이 영화를, 이 소설을, 이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으리오. 식민지 관리나 원주민이나, 관리나 노예나 다 멈춰선 역사의 NG컷으로만 보인다. 마치 테렌스 말릭이라도 된 듯, 10년 만에 작품 하나를 발표한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은 옛 제국주의 나라의 감독들이 그릴 수 없는 그들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심한 지옥도를 펼친 것이다. ▶2021년 8월 26일 개봉 15세관람가

 

[리뷰] 자마 ‘해변의 자마, 밀림의 비쿠냐 포르토’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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