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극장가에 인도영화가 한 편 개봉된다. 인도영화라면 아주 오래 전 TV에서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신상’(神象,1971)이라는 영화를 내보냈었다. [춤추는 무뚜] 이후 소개되는 영화는 대부분 신나는 음악과 활달한 군무, 유쾌한 스토리가 주를 이뤘다. ‘볼리우드’라고 불릴 만큼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한국에 소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산영화제 아니면 만나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5일 개봉하는 리조 호세 펠리세리 감독의 인도영화 [잘리카투](원제: Jallikattu,2020)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도가 국제영화상(이전의 외국어영화상)후보로 올렸던 작품이다. 위키를 잠깐 찾아보니 인도에는 총 780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이중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216개, 헌법이 인정한 지정 언어는 22개란다. [잘리카투]는 이중 인구비율 3.6퍼센트 남짓의 켈라라주에서 사용되는 말라얄람어(Malyalam)로 제작되었다.
인도 서남부 케랄라(Kerala)의 한 작은 마을. 이 마을의 유일한 푸줏간 주인 바르키는 조수 안소니와 함께 물소(버팔로)를 잡고, 고기를 준비한다. 아침마다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기를 사간다. 그런데 어느 날 줄이 풀린 물소가 산으로 도망간다. 물소는 미친 듯이 마을과 밭과, 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피해를 주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다함께 물소 사냥에 나선다. 손에 몽둥이와 칼과 횃불을 들고 산으로 몰려간다. 결국 총잡이까지 동참한다. 우물에 빠졌던 물소가 건져지고, 물소와 마을 사람이 엎치락뒤치락 다시 한 번 질주와 포획, 미친 듯한 육박전이 시작되더니, 인산인해의 장엄한 라스트를 완성시킨다.
‘말라얄람어’로 진행되는 인도의 작은 시골마을의 소동극은 관객을 금세 몰입하게 만든다. 무슨 일인지 이 곳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계급, 빈부, 종교의 갈등을 생각할 틈도 없이 고삐 풀린 물소마냥 내달린다. 이미 그 사람들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물소 한 마리를 잡는 일이 동물원을 탈출한 호랑이 잡는 것보다 더한 호들갑과 난리로 발전한다.
‘잘리카쿠’는 인도 켈라라 출신의 작가 S. 하레시의 단편 ‘마오주의자’를 각색한 작품이란다. ‘도망간 물소를 잡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소동극’이라는 단순한 스토리는 얼핏 보아도 상징이 가득하다. 켈라라의 상황을 몰라도 이곳 사람들의 욕망과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무질서하게 뒤엉켜 엉망진창의 추적을 펼치는 이들은 전리품을 노리는 전사이기 이전에, 원시 시대의 생존본능이 꿈틀거리는 인간이다. 그 결과 마지막에 보게 되는 것은 선사시대로의 회귀인지도 모른다.
‘잘리카투’는 인도 남부지방에서 진행되는 전통 민속 풍습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 황소가 던져지고 남자들은 저마다의 용기를 뽐내기 위해 맨손으로 황소를 제압하는 ‘인도식 투우’이다. 당연히 위험한 일이고, 동물학대이다. 스페인 투우처럼 ‘잘리카투’를 둘러싼 존폐 논쟁이 오래 되었다. 물론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전통 놀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인도라도 이곳에서 태어난 소의 운명은 애처롭다. 물론, 그 소를 잡으려고 안달이 난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2021년 8월 5일 15세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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