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집도 없다

2021. 4. 15. 14:38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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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평소보다 두 달 늦게 열리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최우수작품상 후보에는 ‘노매드랜드’, ‘맹크’, ‘미나리’ 등 모두 8편의 작품이 후보에 올랐다. 이중 <노매드랜드>(원제:NOMADLAND)는 작품상과 함께 감독, 여우주연, 각본, 편집, 촬영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클로이 자오는 감독/각본/편집/작품(제작) 등 4개에 이름을 올렸다. 이 작품은 이미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평론의 일치된 호평을 받았다. 특히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연기에 대해서는 상찬이 쏟아졌다. 영화팬으로 기대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노매드(Nomad)’는 유목민을 말한다. 고정된 거주지/거처 없이 계절 등의 요인에 따라 이동하는 수렵채집인, 목축유목민, 상인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게 문학적으로 변용되면 정치사회학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방랑하게 되는 일군의 무리를 일컫기도 한다. 중국 베이징 출신의 영화감독 클로이 자오 감독이 지켜보는 ‘노매드’는 어떤 부류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61살의 미국백인여성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이라는 여자의 형편을 보여준다. 펀이 살던 네바다 엠파이어의 오래된 주석 광산이 88년 만에 문을 닫자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되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남편을 잃은 펀은 남은 재산, 그래봤자 가재집기를 처분하고 낡은 밴 한 대만 남는다. 이제 자의반 타의반의 ‘노매드’ 인생이 시작된다. 밴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밴을 몰고 인근 마을로 간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손이 필요한 아마존에서 물류 처리 일을 한다. 시즌이 끝나면, 또다시 밴을 타고,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다. 

광활한 미국 국토 어딘가 넓은 터에는 그런 밴들이 모인다.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 주로 경제난, 실직, 은행 빚에 떠밀러 노매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오다가다 모인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자신들의 경험을 교류한다. 펀은 다시 아마존 컨베이어 벨트 앞으로, 식당 알바로, 사우스다코다의 배드랜드 내셔널파크의 시급제 직원으로 일한다. ‘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 펀은 이곳에서 린다를 만나고, 스웽키를 만나고, 데이비드를 알게 된다. 얼굴엔 주름이 늘고, 일자리는 멀어져만 가지만 그렇게 펀은 차 안에서, 길 위에서 미국인의 삶을 살아간다.

펀은 원래 ‘US Gypsum’ 공장의 노동자였다. ‘기브스’할 때 사용되는 석고, 건축자재로 쓰이는 석고보드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80년 동안 이 도시를 지탱했던 광산이 문을 닫고, 공장이 폐쇄되자 그 노동자의 운명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브루더가 2017년 쓴 논픽션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2008년) 글로벌 경기불황 이후 수많은 고령의 미국인들이 계절적 일자리를 찾아 미국 전역을 이동하는 것이 일상화된 모습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전에 ‘하퍼’ 매거진에 아마존 같은 회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노인들의 곤경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썼단다. 은퇴 후 자산소득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는 실버세대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는 임시 저임금을 전전하는 사람들을 취재한다. 브루더의 책을 읽은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영화화 판권을 샀고, 클로이 자오 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한 것이다. 

영화는 경제난, 주택난과 함께 고달픈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집도 없다니. 펀의 커리어에는 학교 임시 교사직도 있었다. 마트에서 만난 학생이 물어본다. “선생님 정말 홈리스(homeless)에요?”라고. 펀의 대답은 ”홈리스가 아냐. 단지 집이 없을 뿐(houseless)이야. 노숙자완 다른 거야.“라고 말한다. 펀은 일할 의지도, 일해야 할 이유도 있다. ‘양질의 고정적 일자리’가 없고 ‘괜찮은 지붕 있는 거처’가 없을 뿐이다.

이들의 삶은 고달프다. ‘차박’이니 ‘#VANLIFE'니 하는 여유로운 인생 즐기기와는 180도 다른 삶인 것이다. 영화는 감독의 용의주도함으로 영화의 근간이 되는 문제에 대해 탈정치적 접근을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허공에 뜬다. 이게 주지사의 문제인지, 아마존의 문제인지, LH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만약 현실의 고통을 잊고, 작금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존재라면 감독의 말에 공감할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정의하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란다. 그것이 ‘우정과 사랑’이라면 그 삶이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마동석이 출연하는 마블 히어로 무비 ‘이터널스(Eternals)를 끝내고 드라큘라-뱀파이어 신화와 연결되는 SF서부극을 준비하고 있단다. 재능 있는 감독과 배우의 우울한 미국 자화상을 담은 <노매드랜드>는 오늘(15일) 개봉한다. ⓒ박재환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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