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영화 한 편이 곧 극장에서 개봉된다. 요즘은 전주나 부산국제영화제 등 영화제를 통해 헝가리 영화를 가끔 만나 볼 수는 있다. 벨라 타르나 미클로시 얀초 감독 작품이 그런 식으로 영화팬에게 소개되었다. 물론 그런 특별한 자리가 아니어도 <글루미 선데이>, <사울의 아들>, <화이트 갓> 같은 헝가리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며 신선함을 더한다. 10일 개봉되는 <살아남은 사람들>(영어제목:Those Who Remained)은 <사울의 아들>처럼 홀로코스트를 다룬다. 히틀러의 나치가 유럽을 유린했을 때 헝가리 사람 56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비극을 다루면서 조금은 다른 접근법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인간의 비애를 담고 있다.
버르너바시 토트(Barnabás Tóth) 감독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서 끌려갔을 때, 전쟁이 끝났지만 그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을 때 남겨진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바로 그런 충격과 공포, 절망의 연약한 인간 이야기를 전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수용소로 끌려간 16살 소녀 클라라(아비겔 소크)의 부모는 돌아오지 않는다. 클라라는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할 나이의 소녀.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를 만난다. 42살의 알도는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모든 잃은 사람. 이제 둘은 운명적으로 서로를 의지한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가족으로 말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였던 둘은 이제 친구가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딸과 아빠가 되어간다. 오랫동안 잊었던 가족의 느낌, 집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여기는 헝가리. 소련 스탈린의 압제 하의 헝가리는 경직된 공산국가였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도청하고, 의심하고, 고발하던 시절. 중년의 남자와 조금은 맹랑한 사춘기 소녀의 ‘동거’를 불온한 눈으로 지켜본다.
영화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사람의 삶을 다룬다. 끌려가서 죽은 사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월이 지나도 인류에게 인간의 사악함과 구원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헝가리의 버르너바시 토트 감독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각자 트라우마를 겪었고, 1948년에서 1953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고통을 나누며 치유와 극복을 갈구한다. 이 당시, 소련 스탈린 철권통치 아래, ‘스탈린의 충실한 제자’였던 라코시 마차시(Mátyás Rákosi)의 압제에 시달렸던 시절이다. 나찌의 홀로코스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스틸린의 폭압이 채워진 것이다.
영화는 수용소의 가스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찌의 공포심도 등장하지 않는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 남겨진 사람의 두려움과 절망이 지배한다. 그 와중에 소녀와 아저씨는 유사 가족이 되어 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아마 공원 벤치에서 아저씨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운 소녀의 모습일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는 알도, 세상의 평온함과 겨우 찾은 마음의 안정을 누리는 찰니의 순간일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그들을 볼지는 시대의 무게일 뿐이다.
영화는 헝가리의 작가이자 심리학자 F.바르코니 주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의 제목이 [남자들의 세계의 여자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정서는 짐작이 간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은 공포와 광기의 역사가 지나가고, 또 다른 광기의 시대에 겨우 마음을 추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감독은 성인남자와 10대 여자와의 관계를 다룬 민감성에 대한 질문에 “그(알도 의사)도 한 인간이고 소녀가 예쁘니까 감정적인 갈등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유혹도 있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2021년 2월 10일 개봉/15세 관람가 (나, KBS미디어 박재환 2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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