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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리뷰

[화이트 온 화이트] 백인들이 행한 또 하나의 원주민 학살극

by 내이름은★박재환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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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2021.6.10) 개봉된 테오 코트 감독의 스페인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원제: Blanco en Blanco/ White on White)는 우리가 잘 몰랐던 지구촌 어느 곳의 어두운 역사를 전해준다. 남미 대륙 끝단을 떠올려보라. ‘티에라 델 푸에고’라는 제도가 있다. 왼쪽은 칠레 땅이고 오른 쪽은 아르헨티나 영토이다. 100여 년 전,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준다. 이미 훨씬 전에 유럽의 백인들은 왕과 신의 영광을 위해 미지의 대륙을 침략해 들어와서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짓밟고 멸족시켰고, 뒤이어 북미대륙의 인디언도 학살하고 땅을 차지한다.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벌어진 끔찍한 이야기는 역사서에는 ‘셀크남 학살’(Selk'nam genocide)이라고 일컫는다. 


 영화는 춥고, 황량한 ‘티에라 델 푸에고’를 보여준다. 산에는 눈이 쌓였고 들판에선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에 중년의 사진사 페드로가 온다. 그는 이곳을 지배하는 실력자 포터 씨의 결혼식 사진을 찍기로 되어 있었단다. 그런데 포터는 끝까지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결혼식이 정확히 언제 열리는지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던 어느 날 신부 ‘사라’의 사진만 찍기로 한다. 황량하고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날 페드로가 마주친 ‘새 신부’는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어린 여자애였다. 페드로는 마치 ‘소아성애자’라도 되는 듯이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사진 찍을 포즈를 취해달라고 한다. 그러고도 결혼식은 열리지 않고, 페드로는 또다시 마냥 기다려야한다. 추위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을 찍는다. 총을 든 사냥꾼과 집사, 사냥개들. 그리고 ‘사라’를. 그 일로 페드로는 죽도록 맞는다. 그리고 또다시 기다림. 결국 돌아갈 배편을 구하기 위해 페드로는 포터의 사냥꾼 무리에 합류한다. 그들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원주민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리고 확인을 위해 귀를 자른다. 마지막 장면은 페드로가 사냥당한 원주민이 너부러진 들판에서 한껏 멋부린 사냥꾼을 카메라에 담는다. 해는 기울어 가고 흑백의 영상은 한 종족의 멸족을 애도하는 듯하다.

이 영화가 1900년대 말에 남미대륙 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벌어진 셀크남 학살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는 없다. 특히 현장에서, 역사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의 관객에게는 말이다. 당시 이곳에는 수천의 셀크남 족이 살았단다. 이곳을 차지한 유럽의 백인들이 이곳에서 양들을 방목했다. 원주민들은 그 양을 사냥했다. 백인들은 사냥꾼을 동원하여 원주민들을 처단하기 시작한다. 죽였다는 징표로 귀를 잘라오면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페드로(알프레도 카스트로)는 삼각대와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다게레오타입의 사진기이다. 황량한 곳에 초청된 사진가라는 의미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렸지만 영화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무거워진다. 극한의 상황에서 예술혼이라도 불태우는 듯하지만 어느새 어린 신부 사라를 대상으로 한 불온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하지만 사진사 페드로도, 신부 사라도, 등장하지 않지만 화면을 짓누르는 지주 포터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얼핏 등장하는 원주민들이다. 그들은 대사도 없고, 역사에 남을 몸짓도 하나 남기지 않는다. 언제인가, 어디선가 이 땅에 나타나서 집을 짓고, 울타리를 세우던 그들에게 내쫓기더니 결국 사냥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페드로는 마치 ‘라이프’ 잡지에 커버스토리로 쓰일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사진’을 찍는다.

 영화 제목 ‘화이트 온 화이트’는 ‘순결한 땅 위를 점령한 백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보다 한 걸음 더 나가야할 것이다. 그들은 온통 하얀 색이었던 세상을 덧칠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잔혹한 행동을, 끔찍한 역사를. 그렇다고 백인의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페드로가 환상처럼 보는 원주민의 모습은 셀크남족의 성인식 ‘하인’(Hain)의 모습인 듯하다. 그런 오래된 사진이 남아있다. 슬픈 영화이다. <화이트 온 화이트>는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감독상을 수상했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뒤 지난 10일 개봉되었다. 12세관람가 ⓒ박재환 2021

 

[리뷰] 화이트 온 화이트, 백인들이 행한 또 하나의 원주민 학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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