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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리뷰

[리뷰] 마이 미씽 발렌타인 ' 빠른 여자, 느린 남자'

by 내이름은★박재환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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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코로나 방역 우수국가는 단연 대만이다. 적절한 대응으로 남다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모든 대형 행사가 취소되거나 비대면 방식으로 축소되는 와중에 지난 11월 열린 대만 금마장 영화시상식은 예년과 다름없이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최고의 승자는 대만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이었다. 다행히 후효현이나 양덕창 감독 작품 말고도 대만영화는 우리나라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나의 소녀소대> 같은 말랑말랑한 영화에서 알고 보면 끔찍한 <반교:디텐션>에 이르기까지. 금마장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5개 부문을 휩쓴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나이 서른에, ‘발렌타인데이’에도 혼자 집에서 국수를 말아먹으며 라디오의 남들 사연을 들으며 한숨을 쉬는 여자(샤오치)와 시내버스를 몰며 이것저것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자(아타이)의 이야기이다. 로맨스일까? ‘발렌타인’이 등장하지만 정통 로맨스는 절대 아니다. 


이 여자와 이 남자는 심각하게 다르다. 여자는 남들보다 적어도 한 박자 빠르다. 초등시절부터 합창을 해도 한 템포 빠르게 노래 부르고, 달리기를 해도 출발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내달린다. 남들보다 1초씩, 2초씩, 어쩌면 한참 빠른 삶을 살아가는지 모른다. 지금은 우체국에서 일한다. 남자는 정반대이다. 느리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도 남들 다 내고 나서 손을 내민다. 천생연분일까?

 올해도 발렌타인을 외롭게 보낼 운명인 샤오치에게 행운이 온 듯하다. 근사하게 생긴 남자가 다가온 것이다. 이번 발렌타인은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느린 남자’는 이 ‘근사하게 생긴 남자’가 엉터리 사기꾼이란 것을 안다. 이제 이 남자가 저 여자의 삶의 공간에 끼어든다. 시간을 넘어, 아니 시간을 조정하여. 물론, ‘테넷’은 아니다! 대만영화는 그럴 영화 만들 형편이 못 된다!!!


감독 진옥훈(천위쉰 陳玉勳)은 젊은 시절 이것저것 해보다가 영화 쪽에 자질, 혹은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채명량 감독의 TV작품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영화 일을 시작한다. 1994년에 <열대어>라는 작품으로 감독으로 데뷔하고 이어 <사랑이 온다>를 내놓으며 주목받았지만 그때가 바로 대만영화 최악의 시기. ‘스크린쿼터’ 같은 안전판이 전혀 없는 대만영화계는 이후 누가 대만영화를 보냐?‘라는 시대로 급전직하한다. 영화판에 실망한 그는 광고일로 생업을 찾다 10여년이 흐른 뒤 다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그가 오래 전에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다. 원래는 <어느 날>이란 제목이었는데 그 동안 그런 제목의 영화가 나와버렸고, 몇몇 설정이 너무 ’올드‘해져버렸다. (남자주인공은 화가였다가 버스기사로 바뀌는 식으로) 


 감독은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한 것은. ‘영화판’에서 실의한 뒤 스포츠 경기관람에 빠졌는데 그때 떠오른 생각이 ‘선수가 공을 놓치는 것은 공이 빨랐거나, 사람이 빨라서’라는 것이었다고. 그래서 그런 ‘불균형한 운명’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은 여자주인공이 ‘발렌타인데이’ 하루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 남자는 어떻게 저런 환상적인 세상의 나 홀로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감독의 생각은 항상 빠른 삶을 사는 여자는 그 ‘1초, 1분, 1시간’이 모여 결국 그 총합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똑같이 남자는 남들보다 느린 삶을 저축한 셈. 남들에게 없는 ‘시간의 공간’(?)을 향유하는 것이다. 

 영화는 신박한 세상에서 펼쳐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 뚱하니 옆에 있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사라진 사람 등등. 언젠가는 그들의 빈자리, 소중함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발렌타인이라고,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자기 생일이라고 특별히 외롭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작은 위로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모른다.

 여주인공 양샤오치를 연기한 이패유(리페이위 李霈瑜)는 모델, TV진행자이다. 이번 영화에서 NG를 무척 많이 내 감독 속을 썩였다고. 하지만 늘 보아오던 ‘전형적인 대만 학원/로코’의 여주인공과는 많이 다른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남자주인공 유관정(류관팅)은 초등학교 체육교사를 하다가 연예계로 진출한 케이스. 영화에 ‘녹두를 넣은 또우장’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단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유관정 집안이 대만 핑둥(屏東)에서 또우장 가게를 하는데 아주 유명한 맛집이라고 한다. 촬영장에 자주 ‘또우장’을 돌렸다고 한다. (유관정이 출연한 대만영화 <아호, 나의 아들>(원제:陽光普照)도 훌륭하다.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눈이 가는 배우는 우체국 옆자리에서 “오~오”라는 귀여운 추임새를 넣은 배우. 흑가가(헤이자자 黑嘉嘉/Joanne Missingham)라는 독특한 이름의 배우이다. 아버지가 호주 사람이고, 놀라운 것은 대만 국가대표 프로 바둑기사. 자료를 찾아보면 한국기원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이쪽에선 나름 유명한 인물. CF모델,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었고 영화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바닷가 마을은 우리가 흔히 아는 ‘야류’쪽이 아니다. 서쪽 자이현의 동스(東石)이다. 이곳은 굴이 유명하다고 한다. 영화에도 등장한다! 

 대만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세상이 힘들고, 세상사가 내 뜻대로 안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굳세게 희망적으로 살자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교훈을 전해준다. ‘자신을 사랑하라.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참,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발렌타인데이’는 2월 14일이 아니다. 중화권에서는 ‘칠월칠석 날’(음력)을 ‘정인절’(연인의 날)로 취급한다. 영어로 옮기면서 제목마저 ‘이상한 시간여행’이 된 셈이다. 원제:消失的情人節 (사라진 정인절) 2021년 1월 14일 개봉/12세 관람가  ⓒ박재환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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